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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서당(以會書堂)

唐詩槪觀(당시 개관) - 宋載卲/동양고전종합DB

작성자허현|작성시간21.01.05|조회수612 목록 댓글 0

 

唐詩(당시)는 중국 당나라 시대(618~907)에 지어진 시의 총칭이다. 당시의 발전단계는 초당(初唐)·성당(盛唐)·중당(中唐)·만당(晩唐)의 4시기로 구분된다.

성당(713~765)의 시인은 유명한 사람이 많지만 왕유(王維)·이백(李白)·두보(杜甫)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상을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는데, 왕유는 불교, 이백은 도가, 두보는 유가의 신념을 지켰다. 그에 따라 이들 시의 품격도 달라졌다. 왕유는 '자연시'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오언(五言)이 중심이 되는 시를 썼으며 전원의 한적한 생활과 산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했다. 

중당(766~835)의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한유(韓愈)와 백거이(白居易)를 들 수 있다.

만당(836~907)에서는 경쾌한 필치로 시를 지었던 두목(杜牧)과, 연애를 주제로 상징수법을 사용했고 칠언고시에 뛰어났던 이상은(李商隱)이 걸출하다.  송재소 교수의 「唐詩槪觀(당시 개관)」을 《동양고전종합DB》에서 전재합니다.

 

중국문학을 역사적으로 개관할 때 흔히 ‘漢文, 唐詩, 宋詞, 元曲, 明淸小說’을 거론한다. 그만큼 唐나라는 시문학을 활짝 꽃피웠던 시대였다. 淸나라 康熙年間에 편찬된 《全唐詩》에는 2,300여 작가의 시 50,000여 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나라 이전까지 제작된 시의 총량을 훨씬 초과하는 편수이다. 과연 당나라 300여 년은 시의 황금시대라 할만하다.

중국의 시가는 멀리 B.C. 11세기에 저작된 《詩經》에서부터 시작된다. 북방의 黃河地域을 중심으로 형성된 《詩經》에 이어 B.C. 4세기경에는 남방의 양자강을 중심으로 《楚辭》가 형성되었다. 현실주의적 경향을 띠는 《詩經》과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는 《楚辭》의 전통을 바탕으로 중국 시는 漢, 魏‧晉, 南北朝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발전해 오다가 唐에서 화려하게 滿開한 것이다.

唐詩가 흥성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중국을 통일한 후 정국의 안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발전을 들 수 있다. 그리고 太宗, 高宗, 玄宗을 비롯한 역대 제왕들이 문학을 애호했고 또 과거시험에서 詩賦의 능력을 중시한 것도 唐詩의 발달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다 唐代에는 사상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어서 시인들은 폭넓은 思惟空間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유교적 이념에 투철하여 ‘詩聖’이라 일컬어진 杜甫와, 道敎에 경도되어 ‘詩仙’의 칭호를 얻은 李白과, 불교에 심취한 ‘詩佛’ 王維 등이 별다른 사상적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작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唐詩는 사상 내용이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형식과 기교면에서도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詩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律詩, 絶句, 排律 등의 근체시가 완성되었고 이에 따라 平仄, 押韻, 對仗 등의 形式美가 완비되었다. 그러나 唐詩를 중국문학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데에는 唐詩 자체의 높은 예술적 성취가 밑바탕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唐詩의 時期區分은 2分說, 3分說, 4分說 등 다양한 이론들이 있어 왔지만 明나라 高棅이 《唐詩品彙》에서 시도한 4分說이 지금까지도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물론 이 4시기가 기계적으로 획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겹쳐지는 시기도 있고 애매한 시기도 있다.

● 初唐(618~712)

沈佺期, 宋之問을 비롯하여 崔融, 李嶠, 蘇味道, 杜審言 등의 ‘文章四友’와 王勃, 盧照隣, 駱賓王, 楊炯 등의 이른바 ‘初唐四杰’, 賀知章, 張旭, 包融, 張若虛 등의 ‘吳中四士’ 그리고 王績과 陳子昻이 활동한 시기이다.

● 盛唐(713~765)

開元, 天寶 년간의 번영과 그 후 安‧史의 亂이 겹친 시기로 시대적 배경에 걸맞게 많은 시인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낸 중국시의 황금시대라 할 만하다. 이 시기에 활약한 李白과 杜甫의 존재만으로도 盛唐詩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거니와, 이 두 시인은 워낙 높은 一家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한 盛唐의 詩는 흔히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즉 王維, 孟浩然을 비롯한 儲光羲, 常建, 祖詠 등의 山水田園詩派와, 高適, 岑參을 비롯한 王昌齡, 李頎, 王翰, 王之渙 등의 邊塞詩派가 그것이다.

● 中唐(766~835)

高棅의 《唐詩品彙》에는 代宗 大曆 원년(766)에서 文宗 太和 末年(835)까지의 약 70년간을 中唐으로 분류하고 154명의 시인을 수록하고 있다. 중당은 前後 두 시기로 구분된다. 전기에는 安史의 亂이 초래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고 吐藩의 침입으로 왕조가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시기여서 詩壇 또한 별다른 성취를 보이지 않았다. 錢起, 李益, 盧綸 등 이른바 ‘大曆十才子’가 활동했으나, 그들은 대부분 失意한 중하층의 사대부들이어서 권문세가에 의탁하여 詩作活動을 했다.

● 晩唐(836~907)

文宗 太和 연간 이후부터 唐末까지 약 70년간을 晩唐이라 이른다. 이 시기에도 많은 시인들이 활동했으나 이미 唐王朝가 기울어지고 있던 시기여서 詩는 盛‧中唐의 健康性을 잃고 唯美主義에 빠졌다. 시인들은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추구한 나머지 練句 練字에만 집중하고 시 전체의 완성도나 품격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樂府歌行이나 古詩는 극히 적고 5, 7언 律詩가 대량으로 창작되었다. 후대에 ‘晩唐體’라 칭하는 시는 바로 이 5, 7언 율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만큼 晩唐의 詩는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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