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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상(隨想)

우리 삶에서 속신은 - 문포(文浦)

작성자허현|작성시간15.05.04|조회수124 목록 댓글 1

 

옛날 시골 내 또래 어린이들은 '냇가 돌을 주워오면 어머니가 젖을 앓는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이 말의 참 뜻을 안 것은 나이가 제법 들었을 때였고 그 때 속신임을 처음 알았다. 이 속신 때문인지 사람들은 냇가 돌을 주워 집에 가져 오지 않았다. 아마도 후사가 두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속신이 가진 이런 미묘한 뜻을 생각해 보면, ‘돌맹이는 비록 하찮은 존재이지만 냇가 돌은 냇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을 이해한, 어머니 젖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앞으로 태어 날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냇가 돌을 귀중히 여겼다. 지금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애기들에게 젖 대신 분유를 먹이고 있지만, 당시 젖이 짧은 엄마들은 밥 뜨물을 떠서 먹였으니 아이들에게 어머니 젖에 대한 그리움과 정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냇가 돌을 주워오면 어머니들은 당장 본래 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꾸중을 했었다. 지금은 부자들이 냇가 돌을 주워다가 담장을 쌓기도 하지만 당시 어머니가 젖 앓이를 한다는 이 속신은 냇가 돌의 존재와 보호, 그리고 자연의 생명성을 인정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또 다른 생생한 속신 이야기는 제비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 농촌에서는 옛날 그렇게도 많았던 제비들이 농약 때문에 날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제비는 모기, 파리, 벼멸구 등을 잡아 먹기 때문에 귀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제비가 많이 날아 오는 마을은 복 받은 마을로, 또 처마에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치면 집안이 부귀해 진다', ' 떨어진 제비 알을 주워 제 집에 도로 넣어 주면 복 받는다'는 속신도 있었다. 이것들은 흥부와 놀부이야기가 아니라 옛날 시골에서 회자되던 것들이다.

제비가 처마에 집을 지으면 그 밑으로 제비 똥이 떨어졌기에 집을 못 짖게 하거나 뜯어내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이런 속신을 믿는 농촌 사람들은 똥 떨어지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제비집 밑에 받침대를 달아 똥을 받아내기도 했다. 나아가 제비 새끼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물 망을 쳐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농촌 사람들 모두가 '자연 생명을 잘 보살피면 은덕을 얻는다'는 속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속신의 예를 하나 더 들면 옛날에는 물이 부족했으므로 목욕물보다 매일 아침마다 쓰는 세숫물이 더 문제였으므로 물 절약은 세숫물부터 해야 했었다. 그래서 '세숫물을 많이 쓰면 죽을 때 물에 빠져 죽는다'거나 '세숫물을 많이 쓰면 저승에 가서 물을 구하지 못한다'고 해서 물 절약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심지어 물을 아껴 쓰는 방법을 권장한 것으로, '머리 감은 물로 발을 씻으면 저승에 가서 어머님을 뵙는다'는 속신도 있었을 정도이니.... 이것들은 요즘 말로 말하자면, 자원을 아껴 쓰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적인 속신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속신은 어느 것보다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삶을 실천하게 하는 교육적인 힘이 있고 그 내용도 명백히 긍정과 부정으로 구분되므로 금기와 행동 지침을 분명히 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을 유기적으로 읽는 공생적 세계관도 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속신들을 두고 혹자는 비과학적이라 비판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교도하고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과연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적인 합리성을 담보하고 있고 또 현대생활과 부합하는지를 묻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종교는 소용없다고 해서 마구 팽개쳐 버릴것인가? 결코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생활이 변하면 문화도 종교도 신앙도 변하고 새로운 민속신앙과 주술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동차 구입 고사(告祀), 상가의 개업 고사 등은 모두 생활변화에 따라 새롭게 고안된 고사문화의 전통이고, 다양한 입시 주술물들이 등장한 것도 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속신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입시철이 되면 왜 속신이 판을 치는가? 입시생과 부모의 두려움이 바위처럼 무겁고 커 마음의 위안을 받고 어떤 신력을 기대하는 인간의 미력함 때문이리라...

나는 실제로 속신의 신비를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이를 확신하고 있다. 50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첫 대학입시에 실패한 아들을 위해 신생아를 받을 때 처음 사용한 타올을 어디서 구했는지 나 몰래 내가 입고 시험장에 갈 옷 등에 보이지 않도록 실로 집어 입혀 보낸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그 옷을 입고 시험장으로 가 시험을 쳤고, 내 실력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한 것이다. 어머니는 그때 그렇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속신을 믿었고, 결과도 그렇게 나와 어머니와 나의 기원이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속신이 현실을 규정한 기막힌 어머님과 나의 경험담이었다.

참으로 입시와 관련된 속신은 많은 것 같다. 한 때 현대자동차의 구형인 소나타자를 뜯어 몸속에 지니고 공부하면 수능시험 300점대를 맞는다'는 것과 정답을 잘 찍기 위해 포크와 도끼’, 답이 잘 보이도록 하는거울등이 속신과 관계되는 주술물로 상품화되었던 경우이다. 이런 속신들의 발상은 모두 요즘 젊은이들의 것이므로 어찌 속신은 윗세대의 전유물로만 취급될 것인가? 청소년들도 속신을 멀리하지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한 갈래인 속신 속에 담겨있는 이런 자연관과 공생적 세계관은 비록 과학적인 지식은 아니나 사람들이 한번 들으면 쉽게 수용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저절로 되살아 나 실제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므로 살아 생동하는 앎이자 실천 지침이라 하겠다. 셍각컨대, 평소 아무리 좋은 가치관과 윤리관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 않는가?

따라서 삶 속에 반영되지 않는 가치나 일상적으로 실천되지 않는 윤리는 한갓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교육은 머리에 지식을 쓸어 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주고 일상 생활을 한층 바람직하게 변화시켜 주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에 속신은 ‘~이면 ~이다처럼 간단한 형식과 분명한 인과응보적 내용을 통해 삶의 구체적 일상 속에 직접 전달되므로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닌다. 따라서 이 속신은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생각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 믿는다.

우리 세대는 다행히 어른들로부터 그렇게 배웠지만 요즘의 부모들은 모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가르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속신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지 생각되지만 어른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것이다. 예로서, 과일을 둥성둥성 깎고 있는 딸에게 어머니가 "제발 과일 좀 예쁘게 깎아라"고 말하면 나무람이 되지만, “과일을 예쁘게 깎으면 시집 잘 간단다"고 일러주면 딸아이는 이를 쉽게 수용할 것이고 뒤에 과일을 깎을 때마다 그 속신을 기억하면서 과일을 예쁘게 깎으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첨 속신의 가치와 이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아이 어른 구분없이 얼마든지 현대생활에 맞는 속신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을 통한 생태학적 건강한 생활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속신이 생활지침이 되고 바람직한 생활 양식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앎과 삶이 겉도는 과학보다 앎과 삶이 함께 가는 문화를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존재와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생명력 있는 속신 문화가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에 뿌리 내리고 윤활유처럼 잘 활용되면 여유있고 웃음이 넘치는 삶, 웃음과 아름다움이 파도치는 인간관계, 그리고 따뜻하고 믿음이 넘치는 생활이 이루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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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04 속신(俗信.folk belief)은 과학적 입증여부와 상관없는 민간의 주술적 사고(믿음)이고 대개' ~이면 ~다'라는 언어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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