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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상(隨想)

누에산과 떠나간 소

작성자동초|작성시간15.07.27|조회수110 목록 댓글 0

요즈음 산에 가 보면 등산인구가 확실히 많아 졌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즐겨 찾고 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즐거운 마음인지 얼굴은 해 맑고 웃음을 가득 뛰고 있다. 비록 현세를 살아가면서 어려움은 많지만 대자연의 품속에 안기면 위안을 받고 생명력을 충전시키는 즐거움에 마음은 더없이 행복한 모양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산을 찾게 되고 산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단순히 “산이 거기에 있어 산에 오른다.”라는 설명만으로 부족한 산 사연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 이면에는 좋은 인연이 자리하고  있듯이 산과 친숙하게 지내게 된 배경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법 나이가 든 나의 경우, 뜨거운 열정으로 산을 그리워하고 산행이 내 생활의 주요한 일과로 자리 잡고 있는 나의 산 사연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고, 그 산 사연이 나로 하여금 산과 사랑을 열심히 나누도록 이끌어 주는 힘이 되고 있다.

  내 고향 남해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인지라 어촌이 많았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바다에서 2키로나 떨어진 마을이다. 당시의 마을 뒤로는 대나무 밭이 병풍을 펴놓은 것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마을 앞으로는 바둑판 모습의 논들이 그림처럼 열려 있었으며, 흙먼지를 내 품던 신작로 너머에는 제법 높은 누에산이 누워 있었다. 소년 시절, 이 고향마을은 나에게 “자연 속에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란 그리움과 순수함을 가르쳐 주었고 그래서 지금도 “마을”이란 단어를 들면서 가슴 설렌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동반 산행에 끼이지 않는 한 산행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시골에서의 나의 소년 시절도 그러했다. 그래서 나의 산 사연은 누에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산의 정확한 山名을 그 당시에는 누구도 몰랐고 산이 마치 누에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누에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렇게 따랐다. 그 산은 동네에서 가깝고 온통 소먹이용의 쇠풀로 덮여있는 데다가 400여 미터의 적당한 높이여서 동네 아이들의 쇠풀 먹이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나와 동년배인 농촌 출신들은 어린 시절의 농촌생활을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논 농사와 소 농사를 중시하였다. 논 농사는 지금도 그렇지만 풍작을 앞두고 태풍이라도 만나면 1년 농사를 망치기가 일쑤였으므로 농부들은 소 기르기에 온갖 정성을 쏫았다. 농사에서 소의 역할도 컸지만 소가 잘 자라서 송아지를 잘도 낳아주면 1년 농사를 능가하는 농가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아지를 판돈은 생활비, 도시에 나가 공부하는 자식들의 학자금, 비료 구입비, 때로는 자식들의 혼사비에도 충당되었으니 소를 귀중히 여겼던 농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3년 시절이라고 기억되는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쇠풀 먹이러 가라는 말씀에 따라 암 송아지 한 마리를 이끌고 큰 소가 될 때까지 2년 가까이 동네 아이들과 매일처럼 누에산을 오르내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나의 첫 산 사연이다. 처음 그 암송아지는 어미 소를 떠난 외로움 때문에 밤만 되면 큰소리로 ‘움 메에~ 움 메에~“하고 울었고, 나를 경계도 했지만 며칠 지나자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반겼는데 그 순진한 송아지와 같이 산을 오르내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지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멸치 된장국에다 보리밥을 비벼 단숨에 먹은 후 송아지를 앞세우고 이 누에산을 오르면 옷은 비 맞은 듯이 땀에 젖고 숨은 목에 찼지만 그러한 산행 아닌 쇠풀먹이기는 어린 나에게 산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송아지를 풀어놓고 동화책을 읽거나 풀 위에 누워 숙제를 하기도 하고, 새끼로 만든 공으로 공차기도 하며, 하늘을 보면서 공상도 해 보았던 일들을 모두 내 어린 시절의 귀중한 추억이 되고 있다. 그리고 매일처럼 오르내리는 산길 주위에 수줍게 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얼마나 예쁘고 귀여웠으며 소리를 낼 듯 말듯 조용히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는 얼마나 정겨웠든지........

  이처럼 누에산에는 많은 추억들이 묻어져 있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다리에 힘도 올랐고 멸치가 몇 마리든 된장국과 김치가 고작이었지만 한숨에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는 식욕도 이때부터 발휘되었던 것이 아닌가 회상된다. 이 식욕은 지금까지도 유효하여 아내의 음식준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칭찬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쇠풀 먹이러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겨울을 빼고 계속되었고 송아지는 어미 소가 되어 새끼를 잘도 낳아 주어 할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손마디가 굵은 할아버지의 손길은 내 머리 위에 얹혀 졌고 칭찬의 마음을 따뜻하게 건네주시곤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도 할아버지를 기쁘게 만들었고 나와 정이 많이 들었던 소는 우리 집을 떠나가야만 했다. 소가 나이가 들고 소 값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된 어느 날, 소장수에게 팔려가게 된 것이다. 그날따라 소는 왜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소 장수를 따라갔으며 또 소장수의 손에 끌려가는 소의 커다란 눈에는 그렇게도 평소보다 많은 눈물이 고여 있었던지? 내 친구나 다름없었던 소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떠나갔고 나와 영원히 헤어졌다.

  그 일이 있은 뒤 어미소가 낳은 암 송아지의 쇠풀 먹이는 일은 집안 일을 도와 주던 아저씨의 손으로 넘어 갔고 내가 누에산을 찾는 일도 자연이 끊어지고 말았다. 고향 가는 길에 항상 바라다  보는 그 누에산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조용히 누워있지만 그곳에 서린 옛이야기들을 지금도 나에게 조용히 건내주고 있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에게 유독 그 누에산이 누구보다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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