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여행이 불가했을때 먼 거리 여행은 어떠했을까. 옛날 미국과 유럽대륙간 대서양을 횡단하려면 대형 기선(汽船)을 이용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했던 조선의 밀사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육로 시베리아를 거치는 긴 여정 끝에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려 같은 분단국 독일의 동정을 기대하며 장도에 올랐을때는 독일정부가 주선한 루프트한자 민간비행기를 일반승객들과 함께 타고 갔다.
지금이야 너무나 편리하고 흔한 해외여행이지만 내가 직장의 일로 해외출장때 비행기를 타기 시작할때는 지금과 같이 흔하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당시 기술연수나 업무협의를 위해 출장갔었던 이야기를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들 무용담처럼 들려주기도 했다.
유럽까지의 긴 비행시간도 처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다닌다는 자부심과 설레임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냉전시대 민간항공기들은 소련이나 중공의 영공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럽을 가려면 서울에서 일본을 거쳐 알라스카에서 재급유한후 김포공항을 출발한지 19-20시간후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의식이 몽롱해져 심하게 말하면 걸어다니는 송장이였다. 그런 상태에서 바로 업무를 봐야했던 것이다. 업무출장은 회사의 명령에 의하고 임무가 있다. 혼자 가는 해외출장이 가족,친구들과 떠나는 지금의 여행과는 다르다. 그런 출장이 빈번하다보니 유럽과 같은 장거리 해외출장은 부담스러웠고,유럽 공항에 내리면 돌아올때 비행기안에서 무료하게 보내야할 걱정부터 되었다.
기내에서 시계를 봐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기 때문이였다. 앞날 잠을 적게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업무서류,재미있는 책,닌텐도를 가져가 보기도 했다. 한번은 《조선왕조실록》을 한 권 사서 읽었는데 김포를 떠날 때에 태조가 건국한 조선은 다시 김포에 도착할 즈음에는 순종이 일본에게 통치권을 넘겨주며 패망하였다.
동행한 연로한 부부들을 보면서,자식들이 부모들을 유럽 효도여행을 보내주더라는 장거리 여행은 젊었을 때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내에서 지루해하는 모습,언어소통등의 문제를 생각하니 그러했다.
긴 비행시간의 지루함외에도 가끔 튜블런스(turbulence)에 의한 심한 기체동요는 비행기 여행의 정나미를 떨어지게 한다. 그렇지만 창밖에 보이는 창공,망망대해,북극의 얼음,알프스산맥,사막,광활한 대지,일출,백야(白夜),구름위의 비행,가까이를 지나치는 비행기의 비행운,와인이나 맥주를 식사 반주로 마신후의 편안함등 비행기속의 낭만도 있다.
업무출장이란 것은 갑자기 생긴다. 여름휴가를 들어가는 앞날 허겁지겁 준비하여 떠나는 출장도 있었는데 일정에 맞게 도착될 비행기 표를 구하기 어려운때도 있었다. 한번은 현지 약속 때문에 어떻든 도쿄를 거쳐 가는 심야 비행기라도 타야했는데 타고보니 smoking flight,즉 비즈니스맨을 위해 흡연이 허용되었다. 내 옆 일본친구가 비행시간내내 여러 갑의 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서는 고문과 다름없었다.
비행기에는 다른 항로 운항을 위하여 이동하는 기장과 승무원,어느 항구에서 배를 타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송출 선원,크루즈 여행를 위해 어느 지역까지 가는 단체여행객들도 있었다. 요즘 말하는 Fly and sail, Fly and cruise인 셈이다. 폴란드 선원들과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 그들은 식사후에 비행기 복도에 20-30명이 긴 줄을 서서 맥주나 와인을 더 배급받았다.
198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정도가 해외관광을 다녔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이전에 해외관광을 가는것은 까다로운 조건으로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것이 수출로 번 아까운 외화를 국민들이 해외여행에 쓰게 할 수 없었던 정부의 정책과 국민적 컨센서스(consensus)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당시 유럽의 도시들을 활보하는 일본 관광객들을 보면 부러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본 정명훈의 연주회 포스터,가끔 만나게 되는 한국인을 보면 반갑기 짝이 없었다.
북극항로 이외에 중동을 거치는 남쪽항로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중동에 나가있던 우리 해외근로자들이 계약된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사우디의 제다공항에서 도중에 탑승했다. 많은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비행기 속으로 들어올 때 느끼는 열기,그들이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는것이 고향집 문을 들어서는 그런 기쁨임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가족들을 만나는 설레임으로 어둠속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족을 위해 이역 먼 땅에 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였고 여러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가졌다.
그 수년후에 나는 김포에 아침일찍 도착하는 귀국 비행기속에서 시커먼 얼굴에 목이 긴 회교국 남성이 초조한 모습으로 한국입국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니 두고온 가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것이 틀림없었다.
3등(Economy Class) 좌석은 비좁다. 그래서 체크인 할때 넓은 좌석을 이야기하면 비상구옆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좌석을 주는데 비상시 탈출을 도우겠다는 구두동의를 하고 신체도 작아서는 안된다.
때로는 현지 공항에 도착하여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짐을 맡기지 말고 휴대(hand carry)해야 하는데 비즈니스맨은 수트케이스(suitcase)뿐이니 가능하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청사(platform)로 가는 첫 공항버스의 맨 마지막에 타야하고 청사로 들어와서는 느린 에스컬레이터를 타지말고 빨리 걸어야 한다. 그래야 입국심사를 빨리 마치고 나갈 수 있다. 한번은 영국 히드로공항에 내려 먼저 빠져 나왔었지만 입국심사대에서 유럽연합 국민[EU passport holder]들은 그냥 통과하고 나와 일본인 몇사람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섞여서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었다.
요즘 직장다니는 젊은이들은 ‘도쿄 올빼미여행’을 즐긴다는데 주말을 일본 도쿄시내를 관광하는 1박3일의 알찬 여행이다. 금요일 오후 직장을 마치고 서울에서 전세기로 한밤중에 출발하여 도쿄 하네다 공항에 새벽에 내려서 여행한후 서울에 월요일 새벽에 도착하여 직장에 출근하는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여행하기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