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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상(隨想)

추사(秋史)가 사랑했던 수선화(水仙花)

작성자허현|작성시간16.01.30|조회수730 목록 댓글 0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겨울에 지천에 핀 수선화들을 보고 몇 수의 시를 남겼으며(완당전집10권), 또한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書牘]에서도 수선화를 언급하였다. 고전번역원의 역문를 싣습니다.
 
소치의 묵파초에 제하다 [題小癡墨芭蕉]
소치(허련) 화백 눈 속에 파초를 그려 내니 / 小癡雪裏作蕉圖
망천을 거슬러라 신운이 없을 수가 / 直溯輞川神韻無
연북에 피어 있는 삼백 송이 수선화는 / 硯北水仙三百朶
파초와 둘 아니다 문수에게 물어 보소 / 與蕉不二叩文殊
 
눈내리는 밤에 읊다 [雪夜偶吟]
술 푸르고 등 파랗다 낡아 빠진 띠집 속에 / 酒綠燈靑老屋中
수선화 중얼중얼 영롱한 옥이로세 / 水仙花發玉玲瓏
심상한 저 설의도 관계가 많이 되니 / 尋常雪意多關涉
시경은 공몽해라 화경도 마찬가지 / 詩境空濛畫境同
 
연전에 수선화를 금하다 [年前禁水仙花]
별시라 진작 신산에 가보지 못했지만 / 鼈廝曾未到神山
옥이 솟아 쭝긋쭝긋 옛얼굴 알겠구려 / 玉立亭亭識舊顔
천파 자체 모든 것에 물들지 않았는데 / 一切天葩元不染
세간이라 또 다시 온갖 곤경 다 겪누나 / 世間亦復歷千艱
 
수선화 (水仙花)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 一點冬心朶朶圓
그윽하고 담담하고 냉철하고 빼어났네 / 品於幽澹冷雋邊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 梅高猶未離庭砌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보겠구려 / 淸水眞看解脫仙
 
수선화가 여기저기 곡으로 헤아릴 만하고 밭두렁 사이에는 더욱 성한데 이곳 사람들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보리 갈 때면 다 파버린다 [水仙花在在處處可以谷量 田畝之間尤盛 土人不知爲何物 麥耕之時盡爲鋤去]
푸른 하늘 한바다에 낯같이 확 풀리니 / 碧海靑天一解顔
선연이란 끝내는 인색한 게 아니로세 / 仙緣到底未終慳
호미 끝에 버려진 심상한 이 물건을 / 鋤頭棄擲尋常物
창 밝고 궤 조촐한 그 사이에 공양하네 / 供養窓明几淨間

● 을미(乙未) 납월(臘月.음력 섣달) 오일 밤 거사는 이 편지를 쓰는데 이때 수선화가 만개하여 맑은 향기가 벼루에 뜨고 종이에 스며드네. -초의에게 주다 [與草衣]-
 
● 수선화를 홀로 대하니 아름다운 선비가 몹시 생각났는데 곧바로 값진 서한을 받으니 신의 어울림이 있는 듯하네. 하물며 눈내리는 추위에 문기(文祺)가 평안하시다니 마음이 흐뭇하구려. -오진사에게 주다[與吳進士]-
 
● 만일 이곳에 한둘이라도 이런 것을 얘기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소일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혹 유자(儒者)의 관(冠)을 쓴 사람이라도 와서 묻는 것은 고작 시부(詩賦)를 짓는 데 있어 항목 펼치는 법칙이나 통감절요(通鑑節要)의 언토(諺吐)에 관한 것뿐입니다. 대해(大海) 가운데 신산(神山)의 영숙(靈淑)한 기운이 고작 노란 등자[橙黃],푸른 귤[橘綠],수선화(水仙花),빙두른 푸른 바다[碧環]에만 있단 말입니까. 유주(柳州.유종원)가 이른바 ‘사람은 적고 돌은 많다[少人多石]’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일는지 모르겠습니다. -권이재에게 주다 [與權彝齋]-
 
● 수선화(水仙花)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강절(江浙.중국의 지역) 이남 지역에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곳에는 촌리(村里)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이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는데, 화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송이가 많게는 십수화(十數花),팔구악(八九萼),오륙악(五六萼)에 이르되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꽃은 겨울에 피어서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 합니다. 이 죄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문 동쪽,서쪽이 모두 그러하건만, 돌아보건대 굴속에 처박힌 초췌한 이 몸이야 어떻게 이것을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거니와, 눈을 뜨면 눈에 가득 들어오니, 어떻게 해야 눈을 차단하여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토착민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몰라서 우마(牛馬)에게 먹이고 또 따라서 짓밟아 버리며, 또한 그것이 보리밭에 많이 난 때문에 촌리(村里)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한결같이 호미로 파내어 버리는데, 호미로 파내도 다시 나곤 하기 때문에 또는 이것을 원수보듯 하고 있으니, 물(物)이 제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권이재에게 주다 [與權彝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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