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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상(隨想)

흑백 TV시대 이야기

작성자동초|작성시간17.03.05|조회수142 목록 댓글 0

텔레비전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정보매체로 자리잡은 오늘날에는 이를 대하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다양하지만 텔레비전이 단지 생활활력소 역할을 했던 옛날에는 특정한 프로그램에 흠뻑 빠져 그 방영시간만을 기다리던 사람이 많았다. 이런 모습은 도시와 시골 구분없이 차이가 없었다.

무성영화가 문화매개자의 역할을 마감하자 이어 등장한 텔레비전 방송은 시골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현상과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텔러비전은 시골 사람들이 도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했지만 보급율이 낮아 귀중한 자산목록의 하나였다.  

이처럼 세인들이 텔레비전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았았기에 텔레비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만인의 선망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농촌사람들에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라는 노래가 펴져나간 적이 있었고, 1950년대 후반 청소년시절을 보냈던 내 나이또레아이들에게 이 노래는 노래가 아닌 동요로 즐겨 불려졌다. 이 동요에 담긴 의미가 어른과 아이들에게 모두 같을 수 없었겠지만 어른들은 텔레비전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출연해 보고 싶은 기대와 희망을, 아이들은 그저 따라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아이들이 그저 동요로 부르고 다녔던 까닭은. 순수가 마음이 바탕이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에 자기 얼굴이  비춰지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당시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이었고 악을 물리치는 전사였으며 또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자들이었기에 자신들도 그런 모습으로 자랐으면 하는 기대를 표현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풀이해 본다. 그래서 장차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바탕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지만 나처럼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껏 뛰놀고 자랐다. 공부에 시달리고 유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다른 생각과 희망을 어릴적부터 가졌다고나 할까?

그런 시절,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역도산, 김일, 천규덕, 장영철과 같은 프로레슬링 선수들이었다. 단 한번의 주먹으로 상대를 쓰려뜨리는가 하면 날쌘 몸짓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과 남성다움은 우리들에게 우상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도 되면 동네 아이들은 텔레비전이 있는 만화가게나 이장 집으로 떼를 지어 가 보면서 그런 꿈을 키우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가진 집이 드물었던 그 옛날, 경기가 있는 날엔 동네 꼬마들을 위해 대청마루 문지방 앞에 텔레비전을 갖다 놓은 이웃집 아저씨가 고마웠던 것은 당연했다. 텔레비전 앞에 바짝 당겨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선생님의 학교수업 시간보다 더 진지하고 조용한 가은데 레슬링 경기를 한껏 즐겼던 것이다.

지금은 흑백 텔레비전이 사라졌지만 60년초에는 국산 흑백텔레비전도 없어 일본제품이나 귀국 파월장병과 미군부대 등에서 흘러 나온 것들이었다. 이 땅에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지 10년만인 1966년에 와서야 지금의 LG전신인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을 선보였으니까... 당시 가격이 쌀 몇가마 값을 웃도는 고가품이었지만 물량이 달려 추첨을 통해 판매할 정도로 텔러비전은 귀한 물건이었다. 

그 후 흑백 텔레비전 보급이 활성화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는데, 1968년에는 멕시코올림픽 개막식과 경기 장면을 인도양 상공에 떠 있는 인공위성을 통해 지켜 보았고, 이듬 해인 1969에는 미국의 아폴로 인공위성Ⅱ을 탄 '닐 암스토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역사적인 순간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당시의 프로그램 꽃은 지금의 연속극인 드라마였다. 지금도 인기 연속극이 방영되면 밥 숫가락을 놓고 TV앞에 앉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도 그랬다.

기억해 보면, 당시 연속극의 백미는 단연 TBC의 ‘아씨'와 KBS의 '여로'였다. 1970년에 방영된 ’아씨'는 요즘처럼 성형한 얼굴에다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여인, 인간성이 메마르고 어려움을 태산처럼 무겁게 느끼는 여인상이 아니라, 역경을 참고 견디며 자기 희생으로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한국 여인의 일대기를 밀도 있게 그린 드라마였다. '아씨' 역을 맡은 김희준씨는 인정을 미덕으로 아는 한국 여인상을 실감있게 연기함으로써 시청자들로부터 인기를 독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KBS의 ‘여로’도 통속극으로 많은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지금은 영화계 원로인 태현실씨가 젊은 아내역을 맡아 바보 남편인 장욱제와 살면서 일제시대부터 6.25 피난시절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는데, 서민들의 공감을 많이 받았기에 저잣거리마다 장욱제의 ‘여보야 여보야 .....’이 대사를 흉내내는 바보 신랑들로 넘쳐날 정도였다. 당시 최대의 인기 연속극인 ‘여로’를 보려면 웬만한 볼 일도 미루었고 저녁 설거지가 끝나기 무섭게 안방에 모이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였다. 이 연속극들이 방영될 시간에는 온 동네 인적이 끊길 정도였으니 그 인기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걸핏하면 "이혼합시다"라는 말이 아네들의 입에서 불쑥불쑥 나오는 요즈음, 과연 지금도 '아씨'와 '여로'에 등장했던 여인의 모습의 아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그리고 당시 코메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도 단연 인기 절정이었다. 비실비실 배삼룡, 땅딸이 이기동, 막동이 구봉서 등이 펼치는 이상한 몸짓과 우스갯소리는 서민들의 배꼽을 다 뽑아놓았고 피로 회복제였다. 1980년대의 컬러 텔레비전시대를 거쳐 지금은 와이드 디지털위성 텔레비전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넋을 잃고 몰두하기에 ‘바보상자’라고 불렀던 흑백 텔레비전세대는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 시대라는 거대한 문명의 물결에 넋을 빼앗긴 아들딸의 부모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과학 발전에 따른 문화 장치들의 지속적인 발전은 사람들의 정신 나이 먹음을 가속화시키는 촉진제가 되고 환경생태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이자 인간다움을 빼았아가므로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과학의 진전없이 이 수준에서 머물렀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다.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과연 흑백 텔레비전시대보다 더 행복하고 또 인간다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성찰해 보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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