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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상(隨想)

경주 십이영(慶州十二詠) - 서거정/사가시집보유3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19.11.22|조회수290 목록 댓글 1

 

계림(鷄林)의 영이(靈異)함

금계는 울어 대고 나무는 푸르디푸르더니 / 金鷄啁哳樹蒼蒼

구백 년이 지나서는 잎이 모두 노래졌네 / 九百年來葉盡黃

박조는 나라 열어 석씨에게 전하였고 / 朴祖開邦傳鵲祖

김왕은 국토 바친 게 전왕과 똑같았네 / 金王納土似錢王

상심스러워라 삼성이 모두 다 전복되어 / 傷心三姓皆顚蹶

눈 가득 여러 왕릉이 이미 황폐해졌구려 / 滿目諸陵已廢荒

천고 영웅의 끝없는 한스러움 있으니 / 千古英雄無限恨

엷은 연기 시든 풀 그리고 석양이로다 / 淡煙衰草更斜陽

 

오산(鼇山.금오산)의 기이한 경치

동해 가의 금오산은 조망이 참 좋건만 / 海上金鼇眺望宜

풍류와 문물이 예전과는 다르고말고 / 風流文物異前時

깨진 비석엔 간혹 김생의 글씨가 보이고 / 破碑或見金生字

옛 절엔 일찍이 최치원의 시를 남기었네 / 古寺曾留致遠詩

큰 저택은 터만 남아서 냉이 풀이 우거졌고 / 甲第有基荒薺合

이름난 동산은 주인 없이 담장만 위태롭네 / 名園無主短墻危

봄 시름이 이렇듯 바다보다 깊은 차에 / 春愁如許深於海

그 누구가 철적을 마음껏 불어 대는고 / 鐵笛何人滿意吹

 

포석정(鮑石亭)에 대한 감회

포석정 앞에 말을 막 세우자마자 / 鮑石亭前立馬時

깊은 생각에 잠겨 옛일을 그리워하네 / 沈吟懷古思依依

유상곡수 터는 아직 남아 있는데 / 流觴曲水基猶在

실컷 취해 가무하던 일은 이미 글렀네 / 醉舞狂歌事已非

황음하고도 안 망한 나라 없는 법이거니 / 未有荒淫不亡國

홀로 눈물져라 강개한 심정 어이 견딜꼬 / 那堪慷慨獨沾衣

걸어걸어 오릉 길을 읊조리며 가노라니 / 行行吟過五陵路

석보와 금성 여기저기 모두가 석양일세 / 石堡金城共落暉

 

문천(蚊川)에서 멀리 바라봄

가다가 문천을 건너서 별촌을 지나갈 제 / 行渡蚊川過別村

번화하던 옛 도읍 그리움을 감당 못하겠네 / 古都遐想不勝繁

까마귀 나무에서 울어라 금갑이 생각나고 / 烏啼深樹思金甲

개구리 못에서 울어라 옥문지가 생각나네 / 蛙吠寒塘憶玉門

흰 젖은 황당하여라 불교를 숭상했었고 / 白乳荒唐崇像敎

황동은 강개하여 임금의 원수 갚았었지 / 黃童慷慨報君冤

물이 흘러도 전조의 한을 씻을 수 없으니 / 水流不洗前朝恨

북해의 술 항아리로 깨끗이 씻어야겠네 / 蕩滌須憑北海樽

 

반월고성(半月古城)

반월성 머리에 해가 점차 저물어 가니 / 半月城頭日欲西

멀리 노닌 길손의 심정 더욱 처량하여라 / 遠遊情思轉凄凄

푸르른 양산 기슭엔 운연이 잠긴 지 오래요 / 靑浮楊麓雲煙老

노란 잎 떨어진 시림은 세월이 아득하구나 / 黃落始林歲月迷

명활촌 남쪽에는 구름이 아득하고 / 明活村南雲渺渺

흥륜사 북쪽에는 잡초가 무성하네 / 興輪寺北草萋萋

평생을 불우한 신세 장차 어디에 쓰랴 / 百年坎軻知何用

술이나 실컷 마시고 곤드레로 취해 볼까 / 嬴得尊前醉似泥

 

첨성노대(瞻星老臺)

옛 대가 우뚝 서 있어 그 이름은 첨성인데 / 古臺牢落號瞻星

유적이 예전 그대로 월성 가까이에 있네 / 遺跡依然近月城

천지가 시들도록 세월이 이미 오래이라 / 地悴天荒年已久

비바람에 꺾이고 깎여 형세가 기울었도다 / 風摧雨剝勢曾傾

외로운 산 지는 해에 금부처의 그림자요 / 孤山落日金仙影

옛 성루에 가을 슬퍼하는 옥적의 소리로다 / 故壘悲秋玉笛聲

삼성의 천년 세월이 고작 한 순간이어라 / 三姓千年曾一瞥

올라 바라보니 상심스러움을 못 견디겠네 / 不堪登眺更傷情

 

분황폐사(芬皇廢寺)

분황사가 황룡사와 서로 마주해 있어 / 芬皇寺對黃龍寺

천년 묵은 옛터에 풀만 절로 무성하구나 / 千載遺基草自新

흰 탑은 우뚝 서서 나그네를 부르는 듯 / 白塔亭亭如喚客

띄엄띄엄 푸른 산은 사람을 시름케 하네 / 靑山點點已愁人

능히 전삼의 말을 알 만한 중은 없는데 / 無僧能解前三語

부질없이 장륙 부처의 몸만 남아 있구려 / 有物空餘丈六身

여염이 반은 절이었음을 비로소 믿겠네 / 始信閭閻半佛宇

법흥왕 그 어느 대가 요진과 같았던고 / 法興何代似姚秦

 

영묘구찰(靈妙舊刹)

옛 절은 높다랗게 하늘에 가닿았는데 / 舊刹岧嶢接上蒼

천년의 지난 일들은 이미 처량해졌네 / 千年往事已凄涼

돌 감실은 퇴락하여 오솔길이 묻혀 버렸고 / 石龕零落埋幽徑

구리쇠 풍경은 댕그랑 석양을 울려 대누나 / 銅鐸丁當語夕陽

노인들은 지금까지 여주를 말하거니와 / 遺老至今談女主

옛 종에는 여전히 당황이 기록되어 있네 / 古鍾依舊記唐皇

짧은 비석 어루만지며 한참 동안 섰노라니 / 摩挲短碣移時立

벗겨지고 이끼 끼어 글자가 반은 이지러졌네 / 剝落莓龍字半荒

 

오릉비조(五陵悲弔)

서라벌 천년 세월에 왕기가 사라지니 / 徐伐千秋王氣銷

오릉 깊숙한 곳에 전조를 조상하노라 / 五陵深處弔前朝

말이 울고 용이 낳았단 말은 황당커니와 / 馬嘶龍誕曾荒怪

작포와 계림은 모두 적막하기만 하구려 / 鵲浦鷄林共寂寥

옥대의 보배는 금궤와 함께 사라졌고 / 玉帶寶隨金櫃盡

동타의 그림자는 석양 곁에서 흔들리네 / 銅駝影接石羊搖

다시 치병으로 왕위를 전할 수는 없고 / 更無齒餠能傳祚

해마다 봄 나무에 때까치만 울어 대누나 / 春樹年年語伯勞

 

남정청상(南亭淸賞)

성곽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옛사람 아니라 / 城郭人民是又非

난간 기대 휘파람 불며 돌아가길 잊고 있네 / 倚欄豪嘯淡忘歸

알영전 안에는 용이 응당 떠났으려니와 / 閼英殿裡龍應去

탈해가 나온 해변에는 까치도 사라졌구나 / 脫解海邊鵲不依

나정의 나무 그늘은 예전대로 어둑하고 / 蘿井樹陰依舊暗

죽릉의 죽순은 지금도 살이 통통 쪘도다 / 竹陵筍籜至今肥

가련도 하여라 당년에 그 번화했던 곳에 / 可憐當日繁華地

하늘땅은 무정하여 석양이 그 몇 번이었나 / 天地無情幾夕暉

 

옥젓대 소리를 듣다

고국의 흥망 생각하며 한번 웃음 짓노니 / 故國興亡一笑新

당시의 삼보가 이젠 다 티끌이 돼 버렸네 / 當時三寶盡成塵

금여 타고 스스로 항복한 게 어떤 임금이며 / 金輿自屈知何主

옥적이 그대로 전해 온 지는 또 몇 해이던고 / 玉笛仍傳又幾春

아까우니 옛 보물이나 보존할 뿐이요 / 愛惜只堪存古物

풍류는 굳이 옛사람 본받을 것 없어라 / 風流不必效前人

무너진 성 지는 해에 삼롱을 연주하여 / 殘城落日休三弄

영웅의 눈물이 건을 적시도록 말아 다오 / 長使英雄淚滿巾

 

김유신(金庾信)의 묘를 지나다

김로의 무덤 앞에 석수가 우뚝하여라 / 金老墳前石獸危

천년 뒤까지 검기는 아직도 뛰어나구려 / 千年劍氣尙奇奇

윤건 백우로 전현의 공업 이루었는데 / 綸巾白羽追前業

단려 황초는 후인의 그리움 일으키네 / 丹荔黃蕉起後思

시 지어 장렬함 과시해 준 길손은 있건만 / 有客題詩誇壯烈

요리 무덤 가까이 들어간 사람은 없구려 / 無人穿塚近要離

옛날의 천관사는 그 어드메에 있느뇨 / 天官寺古知何處

만고에 미인의 성명까지 따라 전하누나 / 萬古蛾眉姓字隨

 

 

: 금계는 곧 고호가 계림(鷄林)인 신라를 가리키고, 병록(丙鹿)은 여(麗) 자의 파자(破字)로, 즉 고려를 가리킨다. 그리고 잎이 노래졌다는 것은 곧 계림, 즉 신라가 멸망한 것을 이른 말이다. 박조는 바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를 가리키고, 작조(鵲祖)는 곧 신라의 제4대 임금인 석탈해왕(昔脫解王)을 가리킨 것으로 성(姓)은 석씨(昔氏)이다.  전왕(錢王)은 당나라 왕이다. 삼성(三姓)은 곧 신라 왕족의 세 성씨, 즉 박(朴), 석(昔), 김(金)을 말한다. 김생(金生)은 신라 시대 명필가로 예서(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모두 뛰어나 해동(海東)의 초성(草聖)으로까지 일컬어졌다. 최치원(崔致遠)은 신라의 학자로 특히 문장이 뛰어났고 만년에는 명산(名山) 대찰(大刹) 등지를 두루 유람하면서 지냈다. 포석정(鮑石亭)은 경주부(慶州府)의 남쪽 금오산(金鼇山) 서쪽 기슭에 있던 정자 이름인데, 돌을 다듬어 포어(鮑魚)의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여기에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유적이 완연히 남아 있다고 한다. 신라 경애왕(景哀王)이 비빈(妃嬪), 종척(宗戚)들과 함께 포석정에서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입을 받아 속수무책으로 당함으로써 끝내 신라가 멸망하고 말았다. 유상곡수란 곧 굽어 꺾여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마시며 흥겹게 놀던 풍류 놀이인데 진(晉)나라 때 왕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의 연회에서 시작되었다. 오릉(五陵)은 경주(慶州) 탑정동(塔亭洞)에 있는 신라의 다섯 능묘(陵墓)이다. 금성(金城)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 때에 경주(慶州) 동쪽에 쌓은 토성(土城)이라고 전해진다. 법흥왕(法興王) 때 내사사인(內史舍人) 이차돈(異次頓)이 불교를 매우 신봉했는데, 당시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삼고자 했으나 평소 무교(巫敎)에 젖어 온 조신(朝臣)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차돈이 홀로 불교의 숭상을 주장하다가 순교(殉敎)를 자청하여 마침내 주살(誅殺)당하게 되자, 그가 “부처님이 신령하다면 내가 죽은 뒤에 반드시 이적(異蹟)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의 목을 베자, 과연 머리는 멀리 날아가 금강산(金剛山.경주 북쪽의 산) 꼭대기에 떨어지고, 잘린 목에서 흰 젖이 수십 길[丈]이나 솟아올랐으며, 갑자기 캄캄해진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고 땅이 크게 진동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북해는 후한 때의 학자로 일찍이 북해 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시림(始林)은 경주부(慶州府) 남쪽에 있던 수풀 이름이다. 탈해왕(脫解王) 연간에 시림 속에서 닭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대보(大輔) 호공(瓠公)을 보내서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궤(金櫃)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으므로, 임금이 그 궤를 가져오게 하여 열어 보니 그 안에 한 사내아이가 있는지라, 임금이 기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훌륭한 아들을 보내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곧 그를 거두어 양육하면서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로 하였으며, 그 수풀 이름을 계림(鷄林)으로 바꾸었다. 전삼(前三)은 불가의 용어인 전삼삼 후삼삼(前三三後三三)에서 온 말이다. 전과 후는 피차(彼此)와 같은 뜻이고 삼삼은 무수무량(無數無量)의 뜻을 나타낸 말로서, 즉 피차가 똑같이 무수 무량함을 의미한다. 장륙(丈六)은 곧 불상의 높이가 일장 육척(一丈六尺)이라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불상을 가리킨다. 종(鐘)은 신라 혜공왕(惠恭王) 때에 주조(鑄造)한 봉덕사종(奉德寺鐘)을 가리키는데,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봉덕사로부터 이 종을 영묘사로 옮겨 달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서라벌(徐羅伐)은 신라의 고호이다. 석양(石羊)은 옛날 왕이나 귀인(貴人)의 능묘(陵墓) 앞에 세운 돌로 만든 양을 가리킨다. 치병(齒餠)은 신라 시대에 임금을 정할 때, 떡을 먹어 보아서 이[齒]의 자국을 보아 이의 숫자가 많은 사람을 임금으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나정(蘿井)은 소지왕(炤智王) 연간에 이 우물에 용이 나타났다고 한다.죽릉(竹陵)은 미추왕(味鄒王)의 능을 가리킨다. 석수(石獸)는 옛날 제왕(帝王)이나 고관(高官)의 능묘 앞에 흔히 세우는 짐승 모양의 석조물(石雕物)을 가리킨다. 단려와 황초는 곧 제사에 쓰는 제수를 의미한다. 천관사(天官寺)는 김유신(金庾信)이 일찍이 사랑했던 천관(天官)의 집을 절로 바꾸어 창건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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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2.02 사가 서거정(1420~1488)은 양촌 권근의 외손자이다. 신라(BC57~935)가 멸망한지 약 500년후에 서거정은 천년고도(古都)의 유적들을 보고 느낀 감흥을 읊었으며, 다시 우리는 그 약 500년후에 서거정이 남긴 글을 읽고있다. 문장(文章)은 영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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