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문학,수상(隨想)

동문선 서문 [東文選序] - 서거정/四佳文集卷之四

작성자허현|작성시간19.12.13|조회수693 목록 댓글 0

 

하늘과 땅이 처음 나누어지자 문장이 생겨났으니, 해와 달과 별들이 위에 총총하게 늘어서 하늘의 문장이 되었고, 산악과 바다와 강이 아래에서 흐르고 솟아 땅의 문장이 되었다. 성인이 괘(卦)를 긋고 글자를 만드니 사람의 문장[人文]이 차츰 펴지게 되었다.

정일중극(精一中極)은 문장의 체(體)이고, 시서예악(詩書禮樂)은 문장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서로 다른 문장이 있고 문장마다 서로 다른 문체가 있다. 전모(典謨)를 읽으면 당우(唐虞) 시대의 문장을 알고, 훈고(訓誥)와 서명(誓命)을 읽으면 삼대(三代)의 문장을 안다. 진(秦)나라에서 한(漢)나라로, 한나라에서 위진(魏晉) 시대로, 위진 시대에서 수당(隋唐) 시대로, 수당 시대에서 송원(宋元) 시대로 내려오면서 그 시대를 논하고 그 문장을 상고해 보면, 《문선(文選)》, 《문수(文粹)》, 《문감(文鑑)》, 《문류(文類)》 등의 책으로써 또한 후세 문운(文運)의 높낮이를 대략 논할 수 있다.

근세에 문장을 논하는 자가, 송나라의 문장은 당나라의 문장이 아니고 당나라의 문장은 한나라의 문장이 아니고 한나라의 문장은 춘추전국 시대의 문장이 아니고 춘추전국 시대의 문장은 삼대와 당우 시대의 문장이 아니라 했는데, 참으로 식견이 있는 말이다.

우리 동방은 단군이 건국한 시대의 일은 아득하여 알 수가 없고, 기자(箕子)는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천양하고 팔조법금(八條法禁)을 펼쳤으니 그 당시에는 필시 숭상할 만한 문치(文治)가 있었을 것인데, 문적이 남아 있지 않다.

삼국이 정립한 시대에는 날마다 전쟁이 이어졌으니 어찌 시서(詩書)를 일삼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을지문덕 장군이 사명(辭命)을 잘하여 수(隋)나라 백만 대군을 막았으며, 신라에서는 당나라에 들어가 급제한 자가 50여 명이나 되었는데 최치원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니 언사(言辭)에 능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전하는 것이 거의 없으니, 참으로 탄식스럽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이래로 문치가 차츰 흥성하여, 광종(光宗)은 과거제도를 설치하여 인재를 뽑았고 예종(睿宗)은 문아(文雅)를 좋아하였다. 이어서 인종(仁宗)과 명종(明宗)도 유아(儒雅)를 숭상하여, 호걸스러운 선비들이 찬란히 배출되었다. 그리하여 북송(北宋), 남송, 요(遼)나라, 금(金)나라가 침략해 올 때에 누차 문사(文詞)로 나라의 근심을 풀 수 있었다. 원나라 때에는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중원(中原)의 인재와 우열을 다투는 이들이 계속 나왔다.

명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여 삼광(三光)과 오악(五岳)의 기운이 온전해지고, 우리나라 열성(列聖)들께서 서로 계승하며 인재를 길러 온 지가 100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난 인물들이 정수(精粹)를 반죽하여 문장을 지어서 역동적으로 발휘한 것이 또한 옛날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것은 우리 동방의 문장이다. 한나라나 당나라의 문장이 아니며 또한 송나라나 원나라의 문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문장이다. 당연히 역대의 문장과 더불어 천지 사이에 나란히 유행해야 한다. 어찌 민멸(泯滅)되어 전해지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태현(金台鉉)이 지은 《문감(文鑑)》은 소략함을 면치 못했고 최해(崔瀣)가 지은 《동인문(東人文)》은 빠뜨린 것이 많다. 어찌 문헌에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랴.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이 한량하지 아니하고 맡겨 놓은 성학(聖學)으로서,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오시어 경사(經史)를 즐겨 보시고, ‘우리나라 문인들의 문장 저술이 비록 육경(六經)에 견줄 수는 없으나 또한 문운(文運)의 성쇠를 볼 수 있다.’ 하시어, 영돈녕부사 노사신(盧思愼), 이조 판서 강희맹(姜希孟), 공조 판서 양성지(梁誠之), 이조 참판 이파(李坡) 및 거정에게 여러 문인의 작품을 모아 한 질의 책을 만들도록 명하셨다.

그리하여 신들이 우러러 성상(성종)의 말씀을 받들어, 삼국 시대로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사(辭), 부(賦), 시(詩), 문(文) 등 약간의 문체를 수집하였다. 그중에 사리(詞理)가 순정(醇正)하고 정치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취하여 문체에 따라 분류하고 130권으로 정리하여 책을 엮어 올리니, 성상께서 《동문선(東文選)》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거정이 삼가 생각건대, 《주역》에 “인문(人文)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한다.” 하였다. 대개 천지에는 자연(自然)의 문장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의 문장을 법으로 삼는 것이다. 시대의 운수는 성쇠의 다름이 있다. 그러므로 문장에 높고 낮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육경 이후로는 오직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와 명나라 문장만이 옛 문장에 가까우니, 그 당시에 천지의 기운이 왕성하여 큰 음향이 절로 완전해서, 다른 시대처럼 남북으로 분열되는 병폐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방의 문장은 삼국 시대에 시작하여 고려 때에 융성하였고, 조선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문장이 천지 기운의 성쇠에 관계됨은 여기에서도 상고할 수 있다.

더구나 문장이라는 것은 ‘도를 꿰는 도구[貫道之器]’이다. 육경의 문장은 문장을 잘 짓는 데에 뜻을 둔 것이 아니어서, 저절로 도에 합치하였다. 후세의 문장은 먼저 문장을 잘 짓는 데에 뜻을 두어서, 때로 도에 순수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오늘날의 학자들이 참으로 도에 마음을 두어, 문장을 꾸미는 데에 치중하지 않고 경문(經文)을 근본으로 삼으며, 제자(諸子)에 얽매이지 않아서, 아정(雅正)함을 숭상하고 부화(浮華)함을 물리쳐 고명하고 정대하게 한다면, 성경(聖經)을 돕는 데에 필시 그 길이 있을 것이다. 만약 문장을 꾸미는 데에 치중하고 도에 근본하지 않아서, 육경의 법도를 위배하고 제자의 한계 안에 떨어진다면, 그 문장은 도를 꿰는 문장이 아닐 것이며 오늘날 간곡히 깨우쳐 주시는 성상의 뜻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성상께서 위에 계시고 천지의 기운이 융성하니, 이 시기에 맞추어 태어나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인물이 필시 잇달아 나올 것이다. 또한 어찌 인물이 없을까를 걱정하랴. 거정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붓을 잡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무술년(1478, 성종9)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