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벗 문가화(文可化.문덕교) 군이 동호(東湖) 가에 별장 터를 새로 잡아 놓고 나서 나에게 주위 십경(十景)에 대한 시를 지어 달라고 부탁한 다음 또 기를 써 달라고 요청하며 말하기를,
“나는 북해(北海) 사람으로 함흥(咸興)을 관향으로 삼았다. 함흥은 큰 고을로서 지역이 넓고 인구가 많아서 옛날의 집을 확장할 수 없기에 넓고 한가한 곳으로 나갔는데, 그곳이 평탄하고 높기 때문이다. 고을의 동쪽에 고인 호수가 폭이 60리 정도 되고 푸른 물결이 일렁이며 밑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해맑아 마치 오(吳) 지역의 태호(太湖)와도 같아서 이것을 동호라 부르기도 하며, 또 호수가 넓고 멀다고 하여 광호(廣湖)라고도 한다. 호수 가운데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바위가 우뚝 솟아나와 있는데, 구름을 일으키고 우레와 비를 만들어 내며 정성껏 기도하면 감응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용암(龍巖)이라고 부른다. 호수의 밖은 바로 큰 바다이다. 바다 가운데 솥발처럼 우뚝 솟은 것을 삼도(三島)라고 하고, 또 벽처럼 천 길이나 우뚝 선 두 산봉우리가 높은 지주(砥柱)처럼 마주 선 것을 형제암(兄弟巖)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백산(鼻白山)으로부터 시작한 산이 서쪽에서 뻗어와 구름처럼 달리고 비단처럼 찬란하다가 그 꼬리가 호수에서 다하여 뚝 끊어진 절벽이 되었는데, 그 위에 지어진 조그만 집이 바로 나의 거처이다. 뒤에 있는 어지러운 산에는 수많은 푸른 소나무가 서 있고 동쪽으로는 태호를 임하였는데, 태호 밖은 평평한 백사장까지 펼쳐져 있다. 그 사이에 있는 갈대가 우거진 섬과 해당화가 핀 물가가 내가 노니는 곳인데, 섬 기러기와 물가의 새들이 스스로 찾아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 거처의 남쪽에 남은 땅을 파서 조그만 연못을 만든 다음 연꽃을 심었고 정원의 가를 따라 심어 놓은 대나무는 싱싱하게 푸르렀다. 동쪽 울타리에는 국화가 죽 늘어서 있고 대(臺)의 곁에는 오동나무가 있는데, 이는 모두 내가 손수 심은 것이다. 어선(漁船)과 상선(商船)이 풍랑을 헤쳐 나가는 광경이 모두 침석(枕席)의 아래에 있는가 하면 희녀(曦女)가 해를 목욕시키고 망서(望舒)가 마차에 달을 태우고 가는 것도 책상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호수에서 낚시질을 하고 바다에서 그물질을 하는 등 모두 주위에서 만족을 취하고 산에서 나물을 캐고 들에서 농사를 지으면 또한 넉넉히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니, 고인이 이른바 ‘하늘이 생산하는 것을 훔치면 재앙이 없다.’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구름의 변화와 고래의 출몰은 매우 기괴한 장관인 데다 사시의 물상이 제각기 뽐내는 기교는 어느 하나도 내가 사는 곳의 승경(勝景)이 아님이 없다. 그대는 나를 위해 기록해 주었으면 한다.” 라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그대의 거처가 그처럼 아름답고 웅장하단 말인가? 대체로 산수(山水)는 인자(仁者)와 지자(智者)가 좋아하지만 조물주가 이것을 만들 적에 반드시 인자와 지자를 위해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반드시 인자와 지자만이 이것을 좋아한다면 조물주가 인자와 지자를 위해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대지의 아름다운 경관은 반드시 사람이 있어야만 더욱더 기특해지기 때문에 인자나 지자가 살면 산은 보다 더 높아진것 같고 물은 보다 더 넓어진것 같다. 그런데 더구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넓은 호수와 큰 바다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대가 이곳에다 자리를 잡은것은 또한 이점을 보았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 가운데 그윽한 곳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드넓은 곳을 좋아하는 이도 있는데, 그윽한 곳은 심원하고 드넓은 곳은 시원스러워 심원한것은 인자(仁者)에게 알맞고 시원스러운 것은 지자(智者)에게 알맞으니, 비록 동정(動靜)의 체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바는 같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 그대가 사는 곳이 호해(湖海)와 가까우니, 드넓어 시원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보는 것은 밖에 있고 함양(涵養)하는 것은 안에 있으므로 내가 함양한 바가 크면 보는 바도 따라서 크게 되고 보는 바가 크면 천지의 만물이 모두 다 나의 마음속에 포용될 수 있다. 이에 산이 아니라도 높아질 수 있고 물이 아니라도 커질 수 있으므로 외부의 경관이 필요하지 않건만 내부에 힘쓰지 않고 외부만 힘쓴다면 장주(莊周)가 이른 바 자신의 부족한 바를 보충하지 못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산수의 낙(樂)은 세상을 떠나 명예를 버린 사람이 아니면 누릴 수 없다. 그런데 더구나 그윽하고 광원한 호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나는 그대가 감호(鑑湖) 일곡(一曲)을 얻은 하계진(賀季眞.하지장)처럼 되지 못할까 염려된다.” 라고 하니, 문군이 말하기를 “그러겠네. 그대의 말씀으로 뜻을 삼겠네.”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그 설(說)을 써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