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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서암(西巖) 별장에 대한 기문 - 차천로/오산집5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16.12.08|조회수127 목록 댓글 0

 

나의 벗 이생(李生)이 한 폭의 그림을 가지고 나에게 찾아와 보이며 말하기를,

“나의 별장이 광주목(廣州牧) 경내 동쪽 40리에 있는데, 새로 잡은 터이다. 난립한 산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 에워싸고 그 안에 울퉁불퉁한 것이 없어서 별도로 한 구역을 이루어 겨우 8, 9가(家)가 사는 마을이 있는데, 내가 그 가운데다 만년(晩年)에 은거할 별장을 지었다. 왕씨 고려 말엽에 유 진사(柳進士)라는 사람이 세상을 피해 이곳에서 살다가 어디에서 죽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후세의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며 말하기를 ‘유 처사가 변화하여 바위가 되었는가? 어찌하여 한번 떠난 뒤 우리가 자취를 찾을 수 없는가?’ 하였으니, 이로 인해 성암(成巖)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이 풍속에 전해 오다가 성아지(成牙旨)로 와전된 것을 내가 지금 서암(西巖)으로 개정하였는데, 그 바위가 그 구역의 서쪽에 있기 때문이다. 동서남북이 모두 산이고 산의 정상은 모두 정자를 지을 수 있으며 사방 산 너머로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산이다. 서쪽은 검단산(黔丹山)인데 벽처럼 천 길이나 우뚝 선 유학봉(留鶴峯)이 있다. 구불구불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군월라산(軍月羅山)ㆍ가두령(佳斗嶺)이 생겼고, 그중 가장 높이 우뚝 솟은 것은 봉익산(鳳翼山)이다. 남쪽은 현산(見山)인데 이 산을 따라 동쪽으로 가 불쑥 솟은 산이 무갑산(無甲山)이다. 동쪽은 월운봉(月雲峯)으로 속칭 망월봉(望月峯)이라 한다. 옛날 한 상서(韓尙書)와 백 상서(白尙書) 두 분이 조정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휴식하였는데, 그분들이 저녁마다 달을 보고 절을 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그 아래가 바로 퇴촌(退村)이다. 북쪽은 드넓은 들이고 들 가운데에 큰 시냇물이 있다. 이 시냇물이 이천(利川) 대해산(大海山)에서 나와 검단산과 현산을 거치고 또 월운산을 지나 쌍암(雙巖) 아래로 흘러들어 두미연(斗未淵)이 되었는데, 이 시냇물의 좌우에 농지가 몇만 평이나 된다. 검단산의 아래에서 쌍암 아래로 흘러드는 시냇물을 상번천(上樊川)과 후번천(後樊川)으로 부르고 그 밑에 탁영계(濯纓溪)가 있는데, 조운흘(趙云仡) 공이 재차 은둔한 곳과 가깝다. 또 그 아래로 내려가면 상국(相國)을 지낸 퇴우정(退憂亭) 유홍(兪泓) 공이 터를 잡으려고 하였다가 그만둔 곳이 있다. 이렇게 산천의 좋은 경관이 하나도 빠짐없이 서암을 향해 모여들면서 기교를 부리므로 원근과 고하가 모두 침상 가에 있고 지팡이와 짚신을 끌고 소요하던 사이에 있다. 우선 큰 것만 기록하고 자잘한 것은 생략해도 되니, 이 그림을 보고서 나를 위해 기문을 써 주고 정자에 이름을 붙여 주었으면 한다.”

라고 하였다. 내가 그 그림을 펼쳐 놓고 점검해 보니, 모두 이생(李生)이 이야기한 것과 같았다. 이에 거처하는 집을 낙지당(樂志堂)으로 이름 붙였는데, 중장통(仲長統)이 저술한 《낙지론(樂志論)》의 뜻을 취한 것이다. 남쪽의 정자는 적취정(積翠亭)으로 이름을 붙이고 동쪽의 정자는 압청정(壓淸亭)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쌓일 적(積) 자는 형상을 말한 것이고 누를 압(壓) 자는 기세를 말한 것이다. 북쪽의 정자는 망원정(望遠亭)으로 이름을 붙이고 서쪽의 정자는 읍호정(挹灝亭)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바라볼 망(望) 자는 색(色)을 말한 것이고 뜰 읍(挹) 자는 기(氣)를 말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고 나서 다시 설(說)을 지어 대답하기를,

“옛날 바위 사이에서 살거나 시냇물을 보고 살았던 사람들 또한 저마다 뜻을 두었으나 혹은 이름을 숨기거나 혹은 세상을 피해 은거했던 것은 대체로 부득이해서였다. 혹은 영원히 떠나 돌아오지 않은 채 세상에 뜻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강산을 꾸미고 지주은(蜘跦隱)을 의탁한 사람도 있거니와 지금 그대가 이곳에 별장의 자리를 잡은 것은 어찌 이러한 의도가 있었겠는가. 강산을 싫어하지 않아 전지와 집을 마련하려고 하는 계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답이 있어서 경작할 수 있고 산이 있어서 땔나무를 할 수 있고 물이 있어서 낚시질을 할 수 있으니, 그대가 만족을 취하는 것은 또한 ‘하늘이 생산하는 것을 훔치면 재앙이 없다.’라고 한 경우와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깊은 산속 외진 골짜기 가운데서 도깨비와 이웃을 삼고 있으므로 호랑이나 시랑이가 멀리 떠났다고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증(盜憎.간악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을 미워함)도 경계해야 할 것이니, 그대는 조심하라.” 하고, 이어 그 설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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