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고, 곤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현달하여 찾아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고, 홀로 외롭게 지나가던 땅을 좋은 손님들과 맘에 맞는 친구들을 이끌고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다. 내가 옛날 아이 적에 처음으로 수종사(水鐘寺.다산의 고향마을에 가까운 경기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에 있는 절)에 놀러 간 적이 있었고, 그 후에 다시 찾은 것은 독서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늘 몇 사람과 짝이 되어 쓸쓸하고 적막하게 지내다가 돌아갔다.
계묘년(1783, 정조7) 봄에 내가 경의(經義)로 진사(進士)가 되어 초천(苕川.소내라고도 하는데 다산의 고향마을 이름)으로 돌아가려 할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번 길에는 초라해서는 안 된다. 두루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가거라.”
하셨다. 이리하여 좌랑(佐郞) 목만중(睦萬中)ㆍ승지(承旨) 오대익(吳大益)ㆍ장령(掌令) 윤필병(尹弼秉)ㆍ교리(校理) 이정운(李鼎運) 등이 모두 와서 함께 배를 탔고 광주 윤(廣州尹)이 세악(細樂.군대에서 장구ㆍ북ㆍ피리ㆍ저ㆍ깡깡이로 편성한 음악)을 보내어 흥취를 도왔다. 초천(苕川)에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나 수종사(水鐘寺)에 놀러 가려고 하는데, 젊은이 10여 명이 또 따라나섰다. 나이 든 사람은 소나 노새를 탔으며 젊은 사람들은 모두 걸어갔다. 절에 도착하니 오후 3~4시가 되었다. 동남쪽의 여러 봉우리들이 때마침 석양빛을 받아 빨갛게 물들었고, 강(북한강을 말함) 위에서 햇빛이 반짝여 창문으로 비쳐 들어왔다. 여러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즐기는 동안 달이 대낮처럼 밝아왔다. 서로 이리저리 거닐며 바라보면서 술을 가져오게 하고 시를 읊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나는 이 세 가지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여러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 수종사(水鐘寺)는 신라(新羅) 때 지은 고사(古寺)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틈으로 흘러 나와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를 내므로 수종사라 한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