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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경주와 운문사 여행 - 권상일/淸臺日記

작성자허현|작성시간18.01.13|조회수352 목록 댓글 1

 
1737년 3월 3일
경주 부윤을 만나보고, 그 길로 영천(永川)·연일(延日) 두 수령과 함께 봉황대(鳳凰臺.경주 황남대총 맞은편의 대형 고분)에 올라 고도(古都)의 형세를 관망하였다.
표암(瓢嵒)은 경주부 동북방 몇 리쯤에 있는데, 외가의 시조 이알평(李謁平)이 출생한 땅이다. 김후직(金后稷)의 묘는 북문 밖 들판에 있는데, 밭 가운데 짧은 비석이 있어서 ‘신라직신김후직지묘(新羅直臣金后稷之墓)’라고 쓰여 있다. 김유신(金庾信)의 묘는 서악정사(西岳精舍) 옆에 있는데, 봉분이 아주 높고 커서 왕릉과 같았으며, 석물(石物)도 웅장하였다. 반월성(半月城) 아래는 곧 행궁(行宮)의 옛터인데, 궁궐의 본 터가 그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말에 경주부 동쪽 들판 가운데 있다고 한다. 집경전(集經殿) 옛터는 현재의 객사 뒤에 있고, 나정(蘿井)은 현재의 시조전(始祖殿) 옆에 있는데 큰 돌로 덮어 두었다. 이와 같은 곳들을 영천 군수(永川郡守)는 전에 직접 보았다고 한다.
금오산(金鰲山)은 경주부의 남산(南山)이다. 산 아래에는 최고운(崔孤雲.최치원)의 상서장(上書莊)이 있고, 산 위에는 금송정(琴松亭)이 있다. 산 남쪽 7리 쯤에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살던 곳이 있는데, 지금은 작은 암자가 있어서 몇 명의 중들이 지키고 있다. 벽에는 김공(金公)의 화상(畵像)을 걸어 두었는데, 치의(緇衣.승복)를 입고 굴관(屈冠)을 쓰고 있다. 뜰 앞에는 손수 심었다는 북향화(北向花)가 있는데, 나무는 거의 너덧 길이 되었으며, 삼사월에 꽃이 피면 꽃이 모두 북쪽을 향한다(숙부 수양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저물녘에 바람이 심해졌다. 각자 흩어져 돌아갔다. 해가 진 뒤에 병마절도사가 비로소 당도하여 들어가 만나보고 돌아왔다.
 
5월 6일
감영(監營)으로 길을 나서 언양(彦陽)에서 점심밥을 먹고, 언양 현감과 비근당(卑近堂)에 자리 하였다. 경치가 그윽하고 한갓졌다. 북쪽 지게문을 여니 작은 연못이 있는데, 갓 피어난 연꽃이 푸른 물 위에 떠 있어 아름다웠다. 석남사(碩南寺)에서 잤다. 절은 운문산(雲門山.지금의 가지산) 아래에 있다. 산골짜기는 그윽하고 깊었으며, 물 밑에는 모두 돌이었다. 서쪽 위로 몇 리쯤이 다 그러하였다. 또 옛날 석조(石槽)가 있었는데, 넓고 평평하며 깨끗하여 물을 받아두고 썼다.
 
5월 7일
가랑비가 내렸다. 견여(肩輿)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길이 몹시 험준하여 견여를 멘 중들이 번갈아가며 메었으나 모두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렸다. 마음이 너무 애달팠다. 주부자(朱夫子.주희)의 ‘이때 소식이 아주 분명타[此時消息甚分明]’라는 구절을 묵송하였다. 말을 타고 싶으나 그럴 수 없으니 한스럽다. 산 아래 숙사에서 머물렀다. 얼마 있다가 운문사(雲門寺) 중들이 견여를 가지고 왔기에 곧바로 타고 동구로 내려왔다 (註: 석남사 북쪽 산을 넘어 운문령,생금비리,삼계리를 거쳐 운문사가 있는 마을 입구에 닿았던것 같음). 말먹이를 먹이고, 운문사에서 잤다. 절은 청도군(淸道郡) 동쪽 호거산(虎踞山.지금의 운문산) 아래에 있다. 계곡 이름은 약야(若耶)인데 물이 아주 맑았으며, 암석이 기이하였다.
 
▼ Google 위성사진. 사진의 왼쪽 언양 석남사에서 지금의 운문령을 넘어 사진 오른쪽 운문사에 도착한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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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13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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