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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유집중의 《명악록(溟嶽錄)》 발문 - 김창협/농암집25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18.09.05|조회수97 목록 댓글 0


나는 일찍이 산수(山水)를 구경하는 것은 성현 군자를 뵙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현 군자를 보지 못했을 때에는 한 번만 만나 봤으면 하고 바라다가, 직접 만나 그 용모를 보고 그 말씀을 듣고서 그가 애모(愛慕)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참으로 알게 되면 헤어지고 나서 생각할 때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잊지 못하여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애당초 보지 못했던 때보다 더 간절해지는 것이다. 나는 풍악산(楓嶽山.금강산)에 대해 실로 그러하다. 이제 유집중(柳集仲.호 成運)의 《명악록》을 얻어 읽어 보니, 모두 내가 지난날 유람했던 곳들이라 그 모든 광경이 눈앞에 또렷이 떠오른다. 이는 마치 지난날 한 번 보고 애모하게 되어 그리워하던 사람에 대해 다시 그 음성과 용모 및 행동거지 등을 상세히 듣게 된 것과 같으니, 마음이 얼마나 쏠리겠는가.
우리 동방(東邦)의 많은 명산 중에서도 풍악산이 으뜸이니, 이는 산수 중에 성인(聖人)이라 할 수 있다. 세상 사람 중에는 혹 늙어 죽도록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어찌 노(魯)나라에 태어나 중니(仲尼.공자)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나와 유집중은 그러한 경우는 면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을 잘 관찰하는 것은 옛사람도 어렵게 여겼던 것인데, 산수라 하여 어찌 다르겠는가. 처음 내가 이 산을 유람할 때는 한창 젊은 시절이라, 거친 마음으로 한갓 아름답고 진기하며 웅장하고 화려한 점만 좋아하여 오직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르내리며 마음껏 널리 구경함으로써 만족하려고 하였다. 그러니 한 곳에서 차분히 주위 경관을 둘러보고 여유롭게 음미하여 오묘한 도(道)의 견지에서 관찰하고 정신으로 이해함으로써 성정(性情)을 도야하고 흉금을 넓히는 기회로 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 어찌 산수를 제대로 구경했다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점이 유감스럽다.
지금 유집중이 이 산에 대해 얼마나 심도 있게 구경했는지는 사실 알 수가 없으나, 아마도 아직 깊이 구경하지 못한 곳이 있지 않을까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와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동쪽으로 가서 중향성(衆香城), 만폭동(萬瀑洞) 등의 명승을 다시 구경한 다음 동해의 해변에 가서 그 오묘한 경관을 깊이 살펴보고 참된 즐거움을 깊이 느껴 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마치 옛사람의 ‘전일에는 그의 얼굴을 보았고 오늘은 그의 마음을 알았네.’라는 말처럼 한다면, 전일에는 애당초 유람이란 걸 해 본 적이 없고 이제야 비로소 유람을 한다고 느끼게 될 것이니, 집중이 과연 그럴 뜻이 없을 수 있겠는가.
아, 그러나 나와 유집중은 더 이상 지난날처럼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다. 벼슬에 매여 궁궐 안에 깊이 들어앉아 있으면서 이처럼 세상 밖의 초연(超然)한 말을 하는 것은 앉아서 용 고기[龍肉] 맛을 논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이 점이 또 한탄스럽다. 갑자(1684)년 초여름 하순에 옥당(玉堂.홍문관)의 숙직소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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