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항상 오륜(五倫)을 말하지만 붕당(朋黨)의 화(禍)가 끊이지 않고 반역을 꾀하는 옥사(獄事)가 자주 일어나니 이는 군신(君臣)의 의리가 무너진 것이며, 양자(養子)를 세우는 의리가 분명치 못해서 지손(支孫)과 서얼(庶孼)이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으니 이는 부자(父子)의 친(親)함이 무너진 것이며, 창기(娼妓)를 금하지 않고 관장(官長)이 서로 미혹(迷惑)되어 있으니 이는 부부의 분별이 어지러워진 것이며, 노인을 봉양하지 아니하고 신분이 귀하다 하여 교만을 부리고 있으니 이는 장유(長幼)의 질서가 무너진 것이며, 과거(科擧)만을 위주로 해서 도의(道義)를 강론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붕우(朋友)의 신의(信義)가 어그러진 것이다. 이 다섯 가지의 폐해(弊害)는 성인(聖人)이 나와서 반드시 고쳐야 할 바이다.
《주역》에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는다.’고 하였는데 점치는 사람들은 노음(老陰)ㆍ소음(少陰)ㆍ노양(老陽)ㆍ소양(少陽)을 사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老)ㆍ소(少)의 설은 경전(經典)에 보이지 않는다. 우번(虞飜)은 사시(四時)를 사상이라 하였다. 그러나 사시가 팔괘를 낳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상이 형상한 것은 천(天)ㆍ지(地)ㆍ수(水)ㆍ화(火)이고, 천ㆍ지ㆍ수ㆍ화는 스스로 형상을 이루었을 뿐, 다른 물건이 섞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천(天)이 화(火)를 추탁(推托)해서 풍(風)이 되고 화(火)가 천(天)에 분결(奮決)해서 우뢰[雷]가 되며, 수(水)가 지(地)를 깎아서 산(山)이 되고, 지(地)가 수(水)를 가두어 못[澤]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는 것이다.
양의(兩儀)는 천(天)ㆍ지(地)이다. 천(天)과 화(火)가 합해져서 천(天)이란 이름이 있게 되고, 지(地)와 수(水)가 합쳐져서 지(地)란 이름이 있게 되었다. 유성(流星)과 혜성(彗星)이 생기는 것은 화(火)가 천(天)과 합하였다는 증거요, 조수(潮水)가 밀려오는 것은 물이 땅에 차 있기 때문이다. 태극(太極)이란 선천(先天)의 배태(胚胎)이다. 태극이 분리되어 천ㆍ지가 되고, 천지가 펴져서 천ㆍ지ㆍ수ㆍ화가 되고, 천과 화가 서로 교접해서 풍(風)과 뇌(雷)가 되고, 지와 수가 어울려서 산(山)과 택(澤)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고 말한 것이다.
오전(五典)과 오교(五敎.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사랑하고 형은 우애하고 동생은 공손하고 아들은 효도함)를 요약하면 효도[孝]ㆍ공경[弟]ㆍ사랑[慈]이다. 군신(君臣)ㆍ부부(夫婦)ㆍ장유(長幼)ㆍ붕우(朋友)는 오전ㆍ오교에 끼지 않는데, 끼지 않는 것은 등한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효도를 하면 반드시 충성스럽게 되고 공경을 하면 반드시 공손하게 되며, 부부의 화합과 친구간의 신의는 굳이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기 때문이다. 유자(有子.공자의 제자 有若)가 요약해서 효도와 공경이라고 한 것은, 사랑[慈]은 짐승들도 할 수 있는 바이기 때문이며, 증자(曾子)가 요약해서《효경(孝經)》을 지은 것은, 효도를 하는 사람치고서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효도 하나만 제대로 하면 모든 선(善)이 다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부부가 분별이 있다는 것은 각자가 그 짝을 배필로 삼고 서로 남의 배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가 분별이 있은 뒤에 부자가 친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창부의 자식은 그 아비를 알지 못한다. 가령 부부간에 분별은 없고 다만 서로 공경하여 손님처럼 대하기만 한다면 부자의 친함에 무슨 도움이 있겠느냐. 경전 가운데에 부부유별(夫婦有別)에 대한 증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네가 한번 모아 보아라.
인의예지(仁義禮智)는 행사(行事)에 시행한 뒤에야 바야흐로 인의예지라 이름할 수 있다. 측은(惻隱)ㆍ수오(羞惡)는 바로 안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인데, 성리(性理)를 말하는 자들은 항상 인의예지를 가지고 네 낱의 물건이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라 하니, 이는 잘못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은 다만 측은이나 수오의 근본일 뿐이니, 이것을 인의예지라고 이름할 수는 없다. 옛날 명례방(明禮坊)에서 강학(講學)할 때에 이미 이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는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훈석(訓釋.알기쉽게 풀이함)이다.
퇴계(退溪)는 오로지 심성(心性)을 위주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이 있다고 하였고, 도심(道心)은 이발이고 인심(人心)은 기발이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도 마찬가지이다. 율곡은 도(道)와 기(氣)를 통틀어 논했기 때문에 기발(氣發)만 있고 이발(理發)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두 선현의 말씀은 가리킨 바가 각기 다르니, 그 말이 서로 같지 않다 해서 나쁠 것이 없다. 그런데도 동인(東人)의 선배들은 기(氣)를 성(性)으로 잘못 보았다고 배척하고 있으니, 이는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