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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작성자허현|작성시간19.07.29|조회수261 목록 댓글 0

 
『서포만필(西浦漫筆)』은 조선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비평적 수필집이다. 불가(佛家)·유가(儒家)·도가(道家)·산수(算數)·율려(律呂)·천문(天文)·지리(地理) 등의 구류(九流)의 학에 대한 견해가 점철되어 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 국어를 버리고 남의 말을 배우고 있음을 개탄하고, 한문 문장에 비하여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정세로 비추어볼 때 진보적이며 주체적인 탁견(卓見)이었다. 특히 여항(閭巷)의 나무하는 아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 비록 저속하다 하지만, 그 참값을 논한다면 사대부들의 시부(詩賦)보다 낫다고 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사대부들의 시문이 중국 한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를 앵무새의 노래와 같다며, 조선 사람은 조선의 말로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포만필(西浦漫筆)』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송강(松江.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전후 사미인가(前後思美人歌)'는 우리나라의 이소(離騷.굴원이 지은 장편 詩)라 할만한데, 그것은 문자(文字)로서는 쓸 수가 없기때문에 오직 악인(樂人)들이 구전(口傳)하여 서로 이어받아 전해지고 혹은 한글로 써서 전해질 뿐이다. 어떤 사람이 칠언시(七言詩)로써 관동별곡을 번역하였지만, 아름답게 될 수가 없었다. 혹은 택당(澤堂.이식)이 소시(少時)에 지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옳지 않다.
구마라집이 말하기를,
"천축인(天竺人.인도인)의 풍속은 가장 문채(文彩)를 숭상하여 그들의 찬불사(讚佛詞)는 극히 아름답다. 이제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단지 그 뜻만 알 수 있지, 그 말씨는 알 수 없다."
하였다. 이치가 정녕 그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의 가락에 있는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이다. 사방(四方)의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 가락을 맞춘다면, 다같이 천지를 감동시키고 귀신을 통할 수가 있는것은 유독 중국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詩文)은 자기말을 버려 두고 다른 나라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뭇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에야디야 하며 서로 주고 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하다 하여도 그 진가(眞價)를 따진다면, 정녕 학사대부(學士大夫)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고 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논할 수는 없다.
하물며 송강이 지은 이 삼별곡(三別曲)은 천기(天機)의 자발(自發)함이 있고, 이속(夷俗)의 비리(鄙俚)함도 없으니, 자고로 좌해(左海.조선)의 진문장(眞文章)은 이 세 편뿐이다. 그러나 세 편을 가지고 논한다면, 後미인곡이 가장 높고 관동별곡과 前미인곡은 그래도 한자어를 빌려서 수식(修飾)을 했다. (홍인표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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