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天說」은 그가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있을때 한유(韓愈.)가 보내온 글을 반박한 것으로, 그의 유물주의(唯物主義) 사상이 드러난 작품이다.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한유(韓愈.)는 동중서(董仲舒)의 ‘하늘과 인간은 서로 통한다[天人相與]’는 관점을 찬성하고, 유종원(柳宗元)은 ‘하늘과 인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天人相分]’는 관점을 찬성하여 상반된 견해를 지녔다. 즉, 한유는 인간이 천지 만물을 해치는 존재이므로 인류를 번성시키는 자는 하늘의 원수이고 따라서 화를 당한다는 견해이고, 유종원은 하늘을 의지를 지니지 않은 자연물로 파악하여 한유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韓愈가 柳子(유종원)에게 말했다.
“그대는 하늘의 이치에 관해 아십니까? 내가 그대에게 하늘의 이치에 관해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지금 질병ㆍ굴욕ㆍ기아ㆍ추위를 심하게 겪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 합시다. 이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고함을 지르기를 ‘하늘이여, 어찌 백성을 해친 사람은 도리어 번창하고 백성을 보호한 사람은 도리어 재앙을 받는단 말입니까.’ 하고, 또 하늘을 우러러 고함을 지르기를 ‘하늘이여,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처럼 큰 고통과 큰 어려움을 겪게 한단 말입니까.’ 한다면, 이런 사람은 모두 하늘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대체로 열매와 음식이 부패하면 벌레가 생겨납니다. 사람의 혈기(血氣)가 막혀 통하지 못하면 종기ㆍ사마귀ㆍ혹ㆍ부스럼ㆍ치질 등이 되어 벌레가 생겨나고, 나무가 썩으면 굼벵이가 생기고 풀이 썩으면 반딧불이가 생겨 날아다닙니다. 이 벌레들은 어찌 생물이 먼저 부패한 뒤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물이 부패함으로 인해 벌레가 생겨나니, (이와 같은 이치로) 元氣와 陰陽이 파괴됨으로 인해서 인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벌레가 생겨나면 생물은 더 큰 손상을 입으니, 깨물어 먹고 갉아먹고 구멍을 뚫는 등 벌레가 생물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정도가 더욱 심해집니다. 이 때문에 만약 누가 그 벌레를 제거한다면 그는 생물에 대해 공이 있는 것이고, 누가 그 벌레를 번식시켜 많아지게 한다면 그는 곧 생물의 원수인 것입니다.
인간이 원기와 음양을 파괴하는 것 또한 자꾸 더 심해집니다. 들과 밭을 개간하고 산림을 채벌하며, 우물을 파 그 물을 마시며, 무덤을 파 장사를 지내는가 하면, 또 구덩이를 파서 변소를 만듭니다. 담ㆍ성곽ㆍ누대와 사당과 유흥을 즐길 장소를 쌓으며, 냇물ㆍ도랑ㆍ못을 파고,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고, 금속을 제련하여 기물(器物)을 만들며, 질그릇과 기와를 빚고 옥과 돌을 조각하고 다듬습니다.
이처럼 氣力을 다해 천지만물로 하여금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들은 노기등등하여 이리저리 훼손하고 무너뜨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니 원기와 음양에 끼치는 피해가 벌레의 소행보다 심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생각건대, 이런 인간을 죽여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줄어들게 하면 원기와 음양에 대해 피해를 끼치는 자가 줄어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면 그는 곧 천지(天地)에 공이 있는 자입니다. (이와 반대로 원기와 음양을 해치는 사람이) 늘어나게 하는 자는 천지의 원수입니다.
지금 보면 사람들은 모두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그처럼 외쳐대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나는 생각건대, 하늘이 그 외침과 원망을 듣는다면 공이 있는 자가 받을 상은 필시 클 것이고, 화를 끼치는 자가 받을 벌 또한 클 것입니다. 그대는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柳子가 말했다.
“그대는 진정 뭔가 의분에 겨워 이런 말을 하신 것입니까? 말씀이 정말 조리가 있고 또 아름답습니다. 내가 그대의 말을 보충하여 마무리해보겠습니다. 저 위의 높은 곳에서 검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을 세상에서는 하늘이라 부르고, 아래의 낮은 곳에서 누런 빛을 띠고 있는 것을 세상에서는 땅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혼돈상태로 그 중간에 충만해 있는 것을 세상에서는 원기(元氣)라 부르고, 춥고 더운 것을 세상에서는 음양(陰陽)이라 부릅니다.
이들은 비록 크기는 대단하지만 열매ㆍ종기ㆍ초목 등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만약 이 열매 등을 공격하고 구멍을 내는 벌레를 없애주는 자가 있다면 이것들이 그 공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天地는 큰 과일이고, 元氣는 큰 종기이며, 陰陽은 큰 초목입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고 피해를 끼친 자에게 벌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공은 공 그 자체일 뿐이고, 화는 화 그 자체일 뿐이니, (하늘에다) 상과 벌을 내리기를 바란다면 큰 착오이며, 외치고 원망하여 불쌍히 여겨주고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바란다면 더 큰 착오입니다.
그대가 만약 그대 본연의 인의(仁義)를 견지하여 천지자연 속에서 붙여 산다면 살아 있더라도 죽고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니, 어찌 生死와 得失의 원인을 열매, 종기, 초목 등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에다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동양고전종합DB)
천설에 대한 변론 [天說辯] - 신익성/낙전당집8권
하늘은 밝게 아래를 굽어보아 한 사물도 빠뜨림이 없다고 하고, 하늘은 무지하여 전혀 관섭함이 없다고도 한다. 유종원(柳宗元)은 이 두 설을 참작하여 천설(天說)을 지었는데, 한유(韓愈.한퇴지.한창려)의 말을 반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지는 큰 열매이고, 원기는 큰 종기이고, 음양은 큰 초목이다. 공이란 스스로 세우는 것이고, 화라는 것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天地大果蓏也。元氣大癰痔也。陰陽大草木也。功者自功。禍者自禍].”
유종원의 설을 가지고 본다면, 밝은 하늘이란 도리어 어두운 것인가? 공이 과연 스스로 세우는 것이고, 화가 과연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라면 화복(禍福)을 주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하늘은 고요하여 조짐이 없지만 만상(萬象)의 이치가 빼곡하게 갖추어 있으니, 아직 감응하지 않았다 해서 앞의 일도 아니며 이미 감응했다고 해서 뒤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미 감응한 것을 보고 한 물건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하고, 아직 감응하지 않은 것을 보고 전혀 관섭이 없다고 한 것이다. 한유의 말이 참으로 흥분한 바가 있어 나온 것임은 여러 말할 필요 없이 분명한데, 유종원의 설 또한 근본을 보지 못한 견해이다.
하늘은 바로 이치이다. 이치에는 애초 하늘과 사람의 구별이 없으니 사람이 능히 하늘과 덕을 함께 할 수 있다. 하늘의 명을 받들어 하늘의 도를 행한다면 이 또한 하늘인 것이다. 천작(天爵)이라 하고 천토(天討.천명에 따라 죄인을 응징하고 다스림)라 하였으니, 성인이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밝은 하늘을 어둡다 할 수 있겠는가. 천지와 원기와 음양은 열매와 종기와 초목일 뿐이요, 공은 스스로 세우는 것이며 화는 스스로 초래할 뿐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아! 유종원은 대도(大道)를 듣지 못하고서 사설(私說)을 세운 자일 것이니, 또한 스스로 흥분한 바가 있어 분발한 것이리라. 슬프구나! (역문: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