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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명론(名論) - 박지원/연암집3권 (발췌)

작성자허현|작성시간13.12.05|조회수293 목록 댓글 0

 

천하(天下)라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그릇이다. 그 그릇을 무엇으로써 유지하는가. 그것은 "이름(名)"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써 이름을 유도할 것인가. 그것은 "욕심(欲)"이다. 무엇으로써 욕심을 양성할 것인가. 그것은 "부끄러움(恥)"이다.

만물은 흩어지기 십상이어서 아무것도 연속할 수 없는데 이름으로써 붙잡아 둔것이요, 오륜(五倫)은 어그러지기 쉬워서 아무도 서로 친할 수 없는데 이름(명분)으로써 묶어 놓은것이다. 무릇 이렇게 한 뒤라야 저 큰 그릇이 충실하고 완전할 수 있어, 기울어지거나 엎어지거나 무너지거나 이지러질 걱정이 없게 될것이다. 온 세상의 작록(爵祿)으로도 선(善)을 행하는 자에게 두루 다 상을 줄 수는 없으니, 군자는 이름(명예)으로써 선을 행하도록 권장할 수가 있다. 온 세상의 형벌로도 악(惡)을 행하는 자를 두루 다 징계할 수는 없으니, 소인은 이름으로써 부끄럽게 할 수가 있다.

한결같이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날줄 모른다면, 천하의 재앙 중에 또한 태연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것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선왕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왕이나 천자가 덕있는 군자를 초빙할 때) 속백(束帛)에다 벽옥(璧玉)을 추가함으로써 고상한 품성을 양성하고, 위로하고 타이르며 힘써 노력하도록 함으로써 사양하고 물러나는 미덕을 양성하였다. 위엄과 무력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는 것(《孟子》에서 대장부를 일컫기를,부귀도 그를 방탕하게 할 수 없고, 빈천도 그를 변절하게 할 수 없으며, 위엄과 무력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다 하였다)은 절개를 양성한 때문이요, 형벌이 위로 대부(大夫)에게 까지 미치게 하지 않는 것은 염치를 기르고자 한 때문이다 (《禮記》에서, 예절은 아래로 서민에게 까지 미치게 하지 않으며, 형벌은 위로 대부에게 까지 미치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형벌이 대부에게 까지 미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부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의 형벌을 별도로 정해 놓지 않았다는 뜻으로 대부를 이처럼 예우함으로써 스스로 염치를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신체에 형벌을 가하거나 유배의 형을 내린 뒤에 또한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뜻을 표시하는 것은, 천하의 대중들로 하여금 곧은 절개로써 자신을 지키고, 장차 아무 짓이나 다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때문이다. 이는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인가? 이른바 이름(명예)이 아니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형벌과 포상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는법이요, 이름(명예)을 장려하여 정치를 하는것은 어디서든 제한이 없는 법이다. 왜 그런가. 사람 중에 혹 선행을 하면서도 포상을 기다리지 않는 자가 있으니, 이는 작록이 그가 한 선행을 능가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형벌을 꺼리지 않는 자가 있으니, 이는 매질과 회초리로는 그가 저지르는 악행을 억제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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