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는 우리 정재(定齋) 박 선생이 죽음에 임박해 남긴 필적이다 (정재 박태보 朴泰輔 1654~1689는 박세당의 아들로 인현왕후 폐위를 반대하며 상소문을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유배 도중 젊은 나이에 죽었다). 바야흐로 그 형화(刑禍)가 참독(慘毒)한 여지의 한 실오라기의 위험한 목숨에도 늠름했으니 그 신기(神氣)의 편안함과 필세(筆勢)의 굳셈이 평소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삼엄하여 범할 수 없는 기상이 자연히 필묵 밖으로 나타났으니 그것을 열람함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송연히 공경심이 일어났다. 오천(烏川.연일의 옛 이름) 정공(鄭公.鄭榦 1692~1757)의 발문에서도 이미 나타내어 소중히 다루어서 다시는 미진한 점이 없을 것이요, 그 논의한 주정(主定)의 견해는 뜻이 매우 정밀하여 오히려 마땅히 일깨워줌이 있었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뜻이 있는 선비와 덕을 이룬 인자는 살기 위해 인을 해침은 없고 자신을 희생하여 인을 이룸은 있다[志士與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하였다(논어 위령공 8장). 정자(程子)가 이를 위해 말하기를, “실리(實理)를 마음에 터득하여 스스로 분별한 것이다. 실리란 옳은 것은 실제로 보아 터득하고, 그른 것을 실제로 보아 터득한 것이다. 삶이 의리보다 소중하지 않고 삶이 죽음보다 편안치 않음을 실제로 보아 깨달아서 다만 이 하나의 옳음만 성취할 뿐이다.”라고 했으니, 이것이 바로 주정(主定)의 의미이다.
대개 충효(忠孝) 대절(大節)은 그 가문(家門)에 대대로 내려온 업(業)이다. 그리고 일찍이 도가 있는 집안에서 학문에 종사하여 도를 보는 것이 밝고, 도를 믿는 것이 독실하여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실리에 대하여 이미 스스로 마음에서 터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 웅어(熊魚)의 취사(取舍)에서 스스로 옳은 것을 실제로 보아 얻어서 스스로 하나의 옳은 것만을 성취할 뿐이었다. 그 조용하고 여유로운 것은 바로 증자(曾子)의 계수족(啓手足)과 그 기상이 같아서 한때의 힘써 동경하고 감개(感慨)함에서 나온 것과 같지 않으니, 학문의 힘은 속일 수가 없다. 이를 또 몰라서는 안 된다.
번역: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ㆍ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
註: 웅어(熊魚)의 취사란, 취하고 버릴 바에 대해 판단할 줄 안다는 의미로, 주로 의리를 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생선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바이며 곰 발바닥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 [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하였다.
증자(曾子)의 계수족(啓手足)이란, 《논어》 〈태백(泰伯)〉에 증자가 병이 위중하자,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하고 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면한 것을 알겠구나 제자들아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