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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낙동강 뱃놀이 詩 발문(洛江泛舟詩跋) - 유호인/속동문선17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0.09.04|조회수2,484 목록 댓글 0

 

나는 정미(1487)년 봄에 의성(義城)의 원(員.지방관)이 되어 오고, 용휴(用休.강구손)는 기유(1489)년 봄에 잇달아 상주목사(商州牧使)가 되어 삼손망창(三飱莽蒼. 장자 逍遙遊篇에,망창을 가는 자는 세 끼 먹을 양식만 가지고 가도 배가 든든하지만, 백 리를 가는 자는 한 방아 거리의 양식을 가져야 하고, 천 리를 가는 자는 석달 양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얼마 멀지 않은 거리를 말함)의 사이에 낙동강을 격(隔)하여 서로 바라고 있었으나, 각각 공무에 얽매어 한갓 편지로써 서로 물어온 적이 수년이었는데, 경술(1490)년 여름에 우연히 공무로 동도(東都.경주)에 모이게 되어 나란히 말을 타고 함께 신성(新城.군위 신성면)까지 와서 작별하였고, 또 금년 여름에 화산(花山.영천시 화산면)에서 시험을 치는 제생(諸生)들이 일을 끝마치는 날에 용휴을 강요하여 내가 관할하는 빙산(氷山.의성군 춘산면 빙계동)에서 노닐게 되어 반벽(半壁)의 등불아래 한 동이 술을 나누고 파(罷)하였으며, 그후 한 달이 채 못되어서 함께 겸선(兼善.홍귀달) 상공(相公)을 함녕(咸寧.고령)으로 방문하였는데, 나는 용휴에게 납치를 당하여 물구경하는 놀이를 이루게 되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지난날 빙산의 놀이를 보답하자는 뜻이었으리라.

아, 국내(國內)의 친우 둘이 별처럼 흩어져 천리에 있으니, 나가고 들앉고 떨어지고 합하는 것이 너무도 무상함은 비록 인사에서 나온 관계겠지만, 나는 역시 그 사이에도 운수(運數)가 끼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아침저녁으로 왕래하기는 쉽지 않다지만, 수년을 두고 겨우 한두 차례 회합을 얻었는데 오히려 천행(天幸)으로 생각하니, 하물며 저 하늘 가 땅 모퉁이 밖에 있어서랴. 그렇다면 오늘의 놀이가 우연(偶然)한 것이 아니다.

이날 밤에 강 안개는 몽롱하고 갈매기와 새들은 떼지어 나는데, 한 잔 술을 서로 나누니 온갖 형상이 더욱 색다르게 보인다. 용휴가 나에게 보답하는 것은 반드시 소란한 거문고나 피리에 있지 않을 것이니, 나 역시 지난날 먼저 베풀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무릇 아름다운 산수(山水)는 천지 사이에 하나의 무정(無情)한 물건이요, 또 금ㆍ옥에 비할 바 아닌데, 우리들이 무슨 관계라서 유독 가져다 제것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탐낸다 하지 않고, 조물(造物)도 역시 도적이라 하지 않으며 난초나 혜초처럼 귀하게 보아서 서로 주고 받으며, 다른 사람은 따라오지 못하는 바이니 비록 우리 두 사람의 청전(靑氈.대대로 전해오는 오래된 물건)이라 해도 가하다. 용휴는 내 말을 어떻게 여기는가. 우리와 함께 노닌 자는 통판(通判) 신현(申礥), 언옥(彦玉) 교수(敎授) 이인우(李仁祐), 공보(公輔) 전 정랑(正郞) 정륜(鄭倫), 중경(仲卿) 생원(生員) 박신형(朴信亨) 사륭(士隆)이었다. 신해(1491)년 6월 초10일 영천(靈川.고령) 유 아무개(兪好仁)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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