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병술(1766)년 연성(燕城.북경)에 있을 때 그대(홍대용이 의형제를 맺고 교유했던 청나라 학자 엄성의 아들 엄앙)의 나이 10세란 말을 들으매, 아름다운 그 모습이 눈에 선하였었고, 무자년 부고(訃告)를 받았을 때는 그대의 나이 12세인지라 여위고 파리한 그 형상을 차마 상상조차 못하였다네. 경인년 섣달에는 이미 두 살을 더 먹었는데도 백부(伯父.엄성)의 서신에, ‘아직도 어리다.’고 하였고, 다음 서찰을 본 것은 갑오년에 있었으니, 즉 그대의 나이 18세 되던 해였으며, 지금 서신을 개봉하는 것 역시 5년이 경과된 후이니, 그대의 나이 이미 22세이겠지. 이번 답서가 또 어느 때 전달될 지 알 수 없으니, 그때는 이미 그대는 장성하였겠지, 한 번 슬프고 한번 기쁨에 나의 회포가 어떻겠는가.
편지의 글씨 단정하고 글뜻 해석이 교묘하여 완연하게 선장(先丈.죽은 남의 아버지 칭함)의 유택(遺澤)이 있구려. 슬프도다! 선장께서 이와 같은 아들을 두었으니,저승에서도 반드시 만족히 웃고 계실 것일세. 중외(中外.중국과 외국이란 말)의 공령(功令.과거 볼 때 쓰는 詩體)은 내려오며 그 시격(詩格)이 다름으로 이제 감히 망령되이 평을 하지 못하겠거니와 다만 그 조어(造語.말 만듬)가 경쾌(輕快)하고 재치가 넘쳐흘러 비유컨대 봉황의 새끼가 처음 나자 벌써 구포의 장(九苞之章.봉황의 9개 종류의 날개색)을 갖춘 것 같고, 하원(河源.강의 근원)의 맑은 웅덩이가 이미 만 리를 내달을 형세를 안고 있는 것과 같으니 구구한 공문서 법식이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무자년의 거상(居喪) 중에 이웃 학생 몇 명이 찾아와 글을 묻기에, 어록(語錄) 10여 조항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는데, 이것을 스스로 독서부결(讀書符訣)이라고 불렀네. 말이 비록 평이하고 얕으나 잘 따라 실행하면 자못 기묘한 진리가 들어 있으므로 이제 보내주니, 혹 학문에 나아가 닦는데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네.
사람이 타고난 재주와 천성은 그 자체가 스스로 할 일이 있으니, 관환(官宦)의 영화와 공리 같은 것은 나머지 일에 불과한 것이네. 바라건대, 현질(賢侄.조카 즉 엄앙)은 한 가지 재예(才藝)에 국한하지 말고,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지도 말고, 선장의 마치지 못한 뜻과 일을 마침내 아들의 대(代)에서 이어받아 이루게 하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벼슬아치로 지방으로 나돌아, 이제는 눈도 어둡고 머리 터럭도 희어져, 문득 노쇠한 꼴이 되어, 뜻한 사업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지기(知己)로 사랑하여 주던 옛 친우의 뜻을 저버림이 되었다네. 오직 때때로 영상(影像)을 펼쳐 놓고 고요히 앉아 향을 태우며, 마음을 잡고 성을 안정[攝心定性]하여, 영원히 귀의(歸依)하기를 맹서할 뿐이니, 다른 것을 더 말할 것이 무엇이랴? 만리 길에 소식을 부치니, 이 다음 편을 기약할 수 없구려. 오직 때를 따라 스스로 애중(愛重)하며 이만 그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