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먼 옛날 기자(箕子)가 주(周)나라에 의해 처음으로 조선(朝鮮) 땅에 봉해진 뒤부터 사람들이 중국(中國)이라는 존귀한 나라가 있음을 알았다. 예전 신라(新羅)의 전성기에는 항상 당(唐)나라에 젊은이들을 유학 보내고 숙위원(宿衛院)을 두어 그곳에서 학업을 익히게 하였다. 그러므로 당나라 진사시(進士試)의 빈공과(賓貢科) 방문(榜文)에 그 이름이 빠진 적이 없었다. 신성왕(神聖王.고려 태조)이 나라를 건국하여 삼한(三韓)이 통일되고 나서도 의관(衣冠)과 전례(典禮)는 신라의 옛 제도를 답습하였으며, 열예닐곱 대(代)왕에 전해지도록 대대로 인의(仁義)의 정치를 닦고 중국의 문화를 더욱더 사모하였다. 서쪽으로 송(宋)나라에 조회하고 북쪽으로 요(遼)나라와 금(金)나라를 섬겨 그 문화에 흠뻑 젖어들었고 인재가 날로 번성하여 그들이 지은 찬란한 문장(文章)이 모두 볼 만하였다.
그러나 풍속이 순후(純厚)하여 집안에 소장된 문집(文集) 가운데 손으로 필사(筆寫)한 것이 대부분이고 판본(板本)으로 간행한 것이 적었다. 그런 까닭에 세월이 지나면서 유실되어 널리 전해지기가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중엽에 무인(武人)들을 제어하지 못하여 소홀한 틈을 타고 변란이 일어나 곤륜산(昆侖山)의 옥석(玉石)이 갑자기 함께 다 타버리는 화(훌륭한 문장과 조잡한 문장이 무인의 난으로 모두 화를 당한 것을 말함)를 겪고 말았다. 그 후 3, 4대를 지나 비록 중흥(中興)을 이룩했다고 말은 하지만 예법과 문물이 인습(因襲)하기에 부족했고, 이어 권신(權臣)이 국정을 휘어잡아 임금을 협박하고 백성을 속이다가 도성을 버리고 섬으로 도망쳐 숨느라(몽고의 침입으로 최씨 무신 정권이 강화도로 천도함) 다른 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 국가의 서적들이 진흙탕 속에 내팽겨진 채로 수습되지 못하고 말았다. 이 이후로 학자들은 사우(師友)의 연원(淵源)을 잃게 되었고 또 중국과도 전혀 통하지 않았으므로 모두가 보고 듣는 것이 부족하여 경망한 풍조로 흐르게 되었다. 당시에 어찌 문필가가 없었다고 하리오마는 태평 시대의 작자(作者)들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같지 않다.
다행히 하늘이 황원(皇元)의 시대를 여시어 훌륭한 황제들이 연이어 출현하여 천하에 문명의 시대를 열었고, 과거(科擧)를 설치하여 인재를 선발한 것이 벌써 일곱 차례나 된다. 덕화가 크게 미치고 천하를 차별없이 대우하여 나처럼 천박한 재능으로도 일찍이 과거에 응시하여 금방(金牓)에 이름을 내걸고 중원(中原)의 뛰어난 선비들과도 서로 접촉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간혹 우리나라 사람의 문장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단지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없다고만 대답을 하고는 물러나와 부끄러워하였다. 이때에 처음으로 나는 시문을 분류하여 책으로 편찬하려는 뜻을 두게 되었고, 고국으로 돌아온 지 10년이 되도록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 집에 소장된 문집에서 찾아내고 집에 없는 것은 널리 남들에게 빌려와 시문을 죄다 모아다 놓고 각각의 차이를 교감(校勘)하였다. 그리하여 신라 최고운(崔孤雲.최치원)에서부터 충렬왕 때까지 명가(名家)들의 작품들 가운데 시(詩) 약간 수(首)를 얻어 ‘오칠(五七)’이라 제목을 달고, 문(文) 약간 수를 얻어 ‘천백(千百)’이라 제목을 달고, 변려문(騈儷文) 약간 수를 얻어 ‘사륙(四六)’이라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총칭하여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아, 이 책은 본디 병란으로 타다 남은 것과 좀먹은 간책(簡冊)에서 초록(抄錄)한 것으로서 우리나라 시문을 집대성(集大成)한 책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으나, 우리 동방의 글 짓는 체제를 보려고 한다면 이 책 말고 다른 데서는 구할 길이 없다. 나는 일찍이
“언어(言語)는 입에서 나와 문장(文章)을 이룬다. 중국 사람들의 학문은 그들이 본디 가지고 있는 언어를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정신(精神)을 많이 소비하지 않고도 특출한 인재가 쉽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는 언어가 이미 중국과 다르니, 천부적으로 총명한 자질에다 천 배 백 배 노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의 학문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심(一心)의 오묘함이란 천지 사방을 통틀어 조금의 차이도 없으니, 득의(得意)한 문장에 있어서야 어찌 스스로 굴복하여 저들에게 많이 양보하겠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보는 사람은 먼저 이런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