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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창강 김택영에게 답함[答金滄江] - 조긍섭/암서집8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1.09.29|조회수128 목록 댓글 0

 

말씀하신 《연암집(燕巖集)》의 간행은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초의 제 뜻은, 다만 이 어른(박지원)의 문장은 평정(平正)함이 적고 휼궤(譎詭)함이 많아 결국 문장가의 이단(異端)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널리 취하고 많이 전하여 배우는 자들의 길을 그르치게 하지 않고자 했던 것입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소동파(蘇東坡)로 비유한 것은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소동파의 불교적인 깨달음이나 해학(諧謔)은 열에 두셋에 불과하지만, 연암(박지원)은 열에 여섯 일곱이나 됩니다. 또 사찰의 글을 지으면서 불가의 말을 쓰는 것도 방망계(方望溪.청나라 문장가 방포)는 오히려 그 전아하지 못함을 병통으로 여겼는데, 연암은 일상적인 제목에도 문득 불교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일상의 방도로 삼았으니, 비록 그 회포가 답답하고 막혀 기이함으로 스스로 드러내려고 생각한 것이겠지만, 세상을 우습게 보고 공손하지 못함이 또한 심한 것입니다.

〈허생전(許生傳)〉은 우언(寓言.우화)인 듯하니, 반드시 실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첫머리에 “어찌 도적질이라도 하지 않습니까?”라는 ‘何不盜賊’ 네 글자를 내 놓았으니, 이것이 큰 착오입니다. 일생을 독서하였으면서 처자로 하여금 이런 악담으로 대들게 하였으니, 어찌 지워버리지 않았단 말입니까. 한 명의 아내도 능히 교화시키지 못하면서 천하를 경륜하겠다고 자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면 망녕된 것입니다. 이런 등의 곳은 아마도 글을 짓는 법에 매우 장애가 있는 듯합니다. ‘허생각과(許生榷菓)’의 ‘각(榷)’ 자는 진실로 온당하지 못하고, ‘수(收)’ 자로 고쳐도 신기(神氣)가 갑자기 삭막해짐을 깨닫겠으니, 만약 ‘괄(括)’ 자로 바꾸면 조금 온당할 듯합니다.

지전설(地轉說.지구의 자전설)은 홍덕보(洪德保)로부터 나왔으니, 진실로 또한 하나의 기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홍덕보묘지명(洪德保墓誌銘.박지원이 지은 홍대용의 묘지명)〉에 이미 그 설을 드러내었고, 〈혹정필담(鵠汀筆談.열하일기의 편명)〉은 바로 그 나머지를 모아 가져다 놓은 것이니, 아마도 다시 수록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이곳에 이석곡(李石谷.이규준) 노인이 있는데, 상물(象物)에 넓고 지극하여 천문(天文)과 지리(地理), 예악(禮樂)과 의산(醫算)에 궁구하여 이르지 않음이 없었는데, 지전설에는 더욱 통렬하게 물리쳤으니, 그의 말이 확실하게 근거가 있습니다. 세계의 큰 공안(公案)은 곧 귀결될 날이 있을 것이니, 저 사람의 전도(顚倒)되고 불경(不經)한 의논을 어찌 족히 남겨 두어서 구실로 삼겠습니까.

번역: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註: 창강 김택영은 연암(燕巖)의 문집을 선집(選集)형태로 1900년,1901년,1917년 최초로 활자본으로 간행했다. 창강은 연암의 문장이 이단적이거나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하여 약간의 수정을 가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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