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正宗) 9년(1785)의 일이다.
예전에 제주(濟州) 사람 김서경(金瑞鏡)이 고씨(高氏)에게 장가들었는데 내쫓을 만한 죄가 있다고 관가(官家)에 정문(呈文)해서 제결(題決)을 받은 다음, 다시 문씨(文氏)에게 장가들어서 아들 김진태(金鎭兌)를 낳았다. 그 뒤에 다시 고씨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으며, 김서경의 부모상에 고씨가 관례에 따라서 복상(服喪.상주가 됨)하였다. 그런데 고씨가 죽었을 때 김진태가 출모(黜母)의 상으로 복을 입어야 한다는 설을 가지고 관가에 소지(所志)를 내었는데, 관가에서 출모의 상으로 치를 것을 허락하였다. 그 뒤 여러 번 관청의 분변(分辨)을 거쳐서 병신년(1776, 영조52)에 어사 유강(柳焵)이 김진태를 형추(刑推)하였다.
그래서 이때 김진태의 아들 김윤옥(金潤玉)이 이는 적자로서 서자가 된 것이라 하여 아비를 위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에 비국(備局.관아의 하나)이 아뢰기를, “아내를 내쫓고 장가를 다시 드는 것은 나라의 법이 허락하지 않는 바이며, 한 집안에 두 아내를 둔 것은 곧 김서경의 죄입니다. 그런데 고씨의 상 때에 장가를 다시 들어 낳은 아들인 김진태가 출모의 복을 입었는데, 아비의 아내는 곧 자신에게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내쳤더라도 나중에 다시 받아들였다면 이를 일러 전모(前母)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고씨와 문씨 두 여자가 모두 김서경에 대하여 혼장(婚狀)을 가지고 있으며 또 모두 아내란 이름으로 장적(帳籍)에 실려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쪽도 아내이고 저쪽도 아내라고 할 수가 있으니, 전처와 후처를 막론하고 그 소생은 모두 적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진태에 대한 서자라는 명칭을 특별히 이치에 맞도록 처리하라는 뜻으로 본목(本牧.여기서는 제주관아)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멀리 떨어진 절역(絶域)에 사는 백성이 몽매하여 아내가 있는데도 또 아내를 얻었으니 이는 법으로 응당 금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관가에 정문하여 아내를 내쫓겠다고 하는데 이를 제결하여 허락하였으니, 해당 목사는 특별히 그 죄를 논하여 보고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씨 여인은 쫓겨났다가 다시 받아들여졌고 문씨 여인은 맞이함을 입어서 시집을 왔으니, 이를 일러 전처(前妻)라 하고 후처(後妻)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김진태는 자연 적모(嫡母)의 소산(所産)이 되는데, 예를 잃고 복상하였으니 이에 대한 죄는 해당 목사로 하여금 참작해서 징계하여 다스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의례문해(疑禮問解)》와 《의례유집(疑禮類輯)》 각 1질씩을 반사(頒賜)하여 본목을 시켜서 향교에 보관토록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이를 익히도록 하여 명교(名敎)를 부지(扶持)하고 미몽(迷蒙)을 깨우쳐 주려는 조정의 뜻을 알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