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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上秦皇逐客書 [객을 쫓아내려는 진시황에게 올리다] - 李斯(이사)

작성자허현|작성시간22.05.20|조회수301 목록 댓글 0

臣聞吏議逐客이라하니 竊以爲過矣라하노이다 昔者에 繆公은 求士하여 西取由余於戎하고 東得百里奚於宛하고 迎蹇叔於宋하고 來邳豹公孫支於晉하니 此五子者는 不産於秦이로되 而繆公用之하여 幷國二十하여 遂霸西戎하니이다.

신이 듣건대 관리들이 객을 쫓아낼 것을 헌의하였다 하니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옛날 목공이 선비들을 구하여 서쪽 융에서 유여를 취하고 동쪽 완에서 백리해를 얻고 송나라에서 건숫을 맞아들이고 진(晉)나라에서 비표와 공손지를 오게 하였으나, 이 다섯 사람은 진(秦)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목공이 그들을 등용하여 20개국을 겸병하여 마침내 서융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 孝公은 用商鞅之法하여 移風易俗하여 民以殷盛하고 國以富强하며 百姓樂用하고 諸侯親服하며 獲楚魏之師하고 擧地千里하여 至今治强하니이다.

효공은 상앙의 법을 써서 풍속을 바꾸었으니, 백성들이 이로써 번성하고 나라가 이로써 부강해져서 백성들은 기꺼이 명령을 따르고 제후들은 친애하고 복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초나라·위나라의 군대를 사로잡고 천리 땅을 차지하여 지금까지도 잘 다스려지고 강합니다.

 

惠王은 用張儀之計하여 拔三川之地하고 西幷巴蜀하고 北收上郡하고 南取漢中하며 包九夷하고 制鄢郢하며 東據成皐之險하고 割膏腴之壤하여 遂散六國之從하여 使之西面事秦하여 功施到今하니이다.

혜왕은 장의의 계책을 써서 삼천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는 파촉을 겸병하였으며 북쪽으로는 상군을 거두어들이고 남쪽으로는 한중을 취하였으며 구이를 차지하고 언·영을 제압하였으며 동쪽으로는 험요한 성고를 점거하고 기름진 땅을 할거하여 마침내 육국의 합종을 해산시켜 그들로 하여금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여 공을 지금까지 끼치고 있습니다.

 

昭王은 得范睢하여 廢穰侯逐華陽하여 彊公室杜私門하며 蠶食諸侯하여 使秦成帝業하시니 此四君者는 皆以客之功하니 由此觀之컨대 客何負於秦哉잇가. 向使四君이 卻客而不納하고 疏士而不用이런들 是는 使國無富利之實이요 而秦無彊大之名也리이다

소왕은 범휴를 얻어 양후(위염)를 폐출하고 화양군을 쫓아내 공실을 강화하고 사문을 막아서 제후들을 잠식하여 진나라로 하여금 제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들 네 임금은 모두 객의 공으로 일을 이루었으니,이로써 보건대 객이 진나라에 무엇을 저버렸습니까. 가령 네 임금이 객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선비를 멀리하고 등용하지 않았더라면 이는 나라로 하여금 부유해지고 이로워지는 실질이 없고 진나라로 하여금 강대하다는 명성이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今陛下 致昆山之玉하고 有隨和之寶하고 垂明月之珠하고 服太阿之劍하고 乘纖離之馬하고 建翠鳳之旗하고 樹靈鼉之鼓하시니 此數寶者는 秦不生一焉이어늘 而陛下說之는 何也잇고.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옥을 구해 얻고 수후와 화씨의 보배를 가지고 있으며 명월주를 드리우고 태아검을 차며 섬리마를 타고 취봉으로 장식한 깃발을 세우고 영타 가죽으로 만든 북을 세워두시니, 이 몇 가지 보배는 진나라에서는 하나도 나지 않는데도 폐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必秦國之所生然後可인댄 則是는 夜光之璧이 不飾朝廷이요 犀象之器不爲玩好요 鄭衛之女不充後宮이요 而駿良駃騠가 不實外廐요 江南金錫이 不爲用이요 西蜀丹靑이 不爲采며 所以飾後宮充下陳하고 娛心意說耳目者가 必出於秦然後可인댄 則是는 宛珠之簪과 傅璣之珥와 阿縞之衣와 錦繡之飾이 不進於前이요 而隨俗雅化하여 佳冶窈窕趙女가 不立於側也리이다.

반드시 진나라에서 난 것이라야 된다면, 야광벽이 조정을 꾸미지 못하고 무소뿔과 상아로 만든 기물이 완호물이 되지 못하고 정나라·위나라 여인이 후궁에 채워지지 못하며, 결제같은 준마가 외구에 채워지지 못하고, 강남의 금과 주석이 쓰이지 못하고 서촉의 단청이 채색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후궁을 꾸미고 하진을 채우며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기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난 것이라야 된다면, 완주로 꾸민 비녀와 전기로 만든 귀걸이와 아호로 만든 옷과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장식이 앞에 올라오지 못할 것이며, 세상 유행을 따라 맵시있게 변화하여 예쁘게 꾸민 정숙한 조(趙)나라 여인이 곁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夫擊甕叩缶하고 彈箏搏髀而歌呼嗚嗚하여 快耳目者는 眞秦之聲也요 鄭衛桑間昭虞象武者는 異國之樂也니이다 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하며 退彈箏而取昭虞하니 若是者는 何也오 快意當前하여 適觀而已矣니이다 今取人則不然하여 不問可否하며 不論曲直하고 非秦者去하며 爲客者逐하니 然則是所重者는 在乎色樂珠玉이요 而所輕者는 在乎人民也니 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니이다.

물동이를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며 쟁을 타고 넓적다리를 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참으로 진나라의 음악이요, 정나라·위나라의 상간과 소우와 상무는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그런데 이제 물동이를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는 것을 버리고 정나라·위나라의 음악으로 나아가며 쟁을 타는 것을 물리고 소우를 취하니,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눈앞에서 마음에 즐거워 보기에 적합하기 때문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을 취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서, 가부를 묻지 않으며 곡직을 따지지 않고 진나라 사람이 아닌 자를 제거하고 객으로 와 있는 자를 쫓아내십니다. 그렇다면 이는 중시하는 것이 여색과 음악과 주옥에 있고 경시하는 것이 백성에 있는 것이니, 이는 해내를 차지하여 제후를 제어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臣聞地廣者粟多하고 國大者人衆하고 兵强則士勇이라하니 是以로 泰山은 不讓土壤이라 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는 不擇細流라 故로 能就其深하고 王者는 不卻衆庶라 故로 能明其德이니이다 是以로 地無四方하고 民無異國하여 四時充美하고 鬼神降福하나니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니이다. 今乃棄黔首以資敵國하고 卻賓客以業諸侯하여 使天下之士로 退而不敢西向하여 裹足不入秦하니 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니이다. 夫物不産於秦이로되 可寶者多하고 士不産於秦이로되 願忠者衆이어늘 今逐客以資敵國하고 損民以益讐하여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하니 求國無危라도 不可得也리이다.

신이 듣기로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사가 용맹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태산은 어떠한 흙도 마다하지 않으므로 큰 산을 이룰 수 있고, 하해는 아무리 작은 물도 가리지 않으므로 깊은 물을 이룰 수 있으며, 왕자는뭇사람을 물리치지 않으므로 그 덕을 밝힐 수 있는 법입니다. 이런 까닭에 땅은 사방을 따질 것이 없으며 백성은 이국을 따질 것이 없이 사시에 좋은 물산이 가득하고 귀신이 복을 내리는 법이니, 이것이 오제와 삼왕에게 적수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이제 도리어 백성을 버려 적국을 돕고 빈객을 물리쳐 다른 제후에게 가서 일하도록 하여 천하의 선비가 물러나 감히 서쪽을 향하지 못하며 발을 싸매고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이른바 도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물건은 진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지만 보배로 여길 만한 것이 많고, 선비는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객을 쫓아내어 적국을 돕고 백성을 덜어내어 원수에게 보태주어, 안으로는 자신을 허약하게 하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원망을 심으니 나라가 위태로움이 없기를 바라더라도 그렇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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