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부터 11월 1일까지. 내가 금년에 과거 공부에 얽매여 옛사람의 시서(詩書)가 있어도, 보고 읽을 겨를이 없었다가 중양일(重陽日. 음력 9월9일)을 맞이하여 비로소 문자(文字)에 마음을 두어, 책들을 손질하고 필연(筆硯)을 씻은 다음《중용(中庸)》을 읽는 여가에 고금의 자집(子集)과 시문(詩文)도 곁들여 열람하기로 하였으며, 이날부터 마음에 얻어진 바를 날마다 기록하여 정양(靜養)하는 규칙으로 삼으려 한다. 갑신년(1764, 영조40) 중양일에 산사(散士)는 쓴다.
9월 9일(무오)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
○ 올해는 일기가 봄날처럼 따뜻하기는 하나 절후가 점차 늦어져 국화(菊花)가 만발하지 않았으니, 이른바 중구(重九.음력 9월9일)를 헛되이 맞이하는 셈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집에서는 화고(花餻)를 그 잎으로 대용하게 되었다. 화고는 속명(俗名)으로 화전(花煎)이다.
상고하건대, 갈치천(葛稚川. 치천은 晉나라 葛洪의 자)은 “한 무제(漢武帝) 때 궁인(宮人) 가패란(賈佩蘭)이 9월9일에 수유(茱萸)를 차고 흰 떡[餌]을 먹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셨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게 한다는 말은 대개 전설이었을 뿐, 예로부터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으며, 주관(周官) 변인직(籩人職)에 “대그릇에 담을 음식은 구이분자(糗餌粉餈)이다.” 하였고, 그 주(注)에는 ‘구이는 콩가루에다 대추를 넣어 찐 것이다.’ 하였으며, 방언(方言)에는 “이(餌)는 고(餻), 혹은 자(餈)이다.” 하였고 또《옥촉보전(玉燭寶典)》에는 “식이(食餌)는 그 당시에 기장과 찰벼를 수확했을 때 찹쌀을 가미해서 만들어 새 음식으로 올렸던 것[嘗新]이다.”고 하였으니, 아마 지금의 유전(油煎)은 아니더라도 그 유풍이기는 하다.
○ 먼저《중용(中庸)》 서문을 읽었다. 이 글은 한 자를 더하거나, 뺄 수도 없으니, 주자(朱子)는 참으로 만고의 사표(師表)이다.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한유(韓愈),구양수(歐陽脩),소식(蘇軾),증공(曾鞏)의 무리는 아무리 한평생 붓을 잡고 있어도 결국 주저하다가 도로 물러설 뿐, 이같은 글은 도저히 지어내지 못할 것이다.《중용》과《대학》 두 서문은 천지와 더불어 함께 보존된다 해도 옳을 것이다.
10일(기미)
○ 오정(午正)에 심방(尋訪)차 나갔었다.
○ 밤에 허씨(許氏.許穆을 이른다)《기언(記言)》에 기록된 강승지(姜承旨)와 조인의(趙引儀)의 유사(遺事)를 보았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강서 원경(姜緖遠卿 원경은 자이다)은 진양인(晉陽人)으로 선조(宣祖) 때 정승 정정공(貞靖公) 사상(士尙)의 아들이다. 하루는 임금을 모시고 있다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신(臣)의 수명이 다하여 전하를 길이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고는, 밖으로 나와서 한 동료에게 ‘장차 큰 난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조짐이 이미 전하의 기색에 나타나 있었다’고 하였는데, 과연 임진년(1592, 선조 25)에 이르러 왜구(倭寇)가 발발하여 나라가 크게 어지러웠다. 또한 사람을 잘 알아 보는 안목이 있어 평소에 술이 얼큰해지면 인품의 선악과 수명의 장단 및 길흉을 평론하곤 하였는데, 하나도 맞추지 못함이 없었다. 일찍이 오리(梧里) 이 문충공(李文忠公.李元翼)과 함께 괴원(槐院. 승문원의 별칭)에 있을 때 술이 취하여 다른 동료들을 꾸짖다가 오직 문충공만을 가리키면서 ‘너희들은 모두 이 사람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은 위태롭고 어지러운 시기에 정승이 되더라도 충성어린 눈물로써 대사를 담당해 낼 것이다’ 하였고, 또 동자(童子)들의 놀이를 구경하다가 한 동자를 불러 그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너는 동(動) 가운데 정(靜)이 있으니, 다음에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다’ 하였다. 그 동자는 바로 상국(相國) 신흠(申欽)이었다.
조충남(趙忠男)은, 조 문정공(趙文正公. 趙光祖) 형제(兄弟)의 자손으로 벙어리가 되었다고 핑계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고, 인품의 선악,사정(邪正) 및 득실(得失)을 모두 찡그리고 웃는 표정으로 나타냈는데, 찡그림을 받은 사람은 일일이 실패하였고, 웃음을 받은 사람은 다 아름다운 명성으로 일생을 마쳤으며, 강 승지,이 문충공과는 절친한 벗이었다.”
11일(경신)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
○ 이날 약간의 병이 있어 한나절 동안 누워 있었는데, 때때로 기운이 가라앉곤 하였다.
저녁에는 정송강(鄭松江. 鄭澈)의 사미인사(思美人詞)를 보았다. 여기에 대해 김북헌(金北軒. 金春澤)은 “그가 임금의 내침을 받고 가슴이 답답한 나머지, 군신(君臣)의 헤어지고 만나는 것을 남녀의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비유하였으니, 그 마음이 충성되고 그 뜻이 고결하다. 우리 서포옹(西浦翁. 金萬重)도 그 제목을 손수 쓰기를《언소(諺騷)》라 하였으니, 역시 일월(日月)과 더불어 그 빛을 다투어도 옳을 것이다.”고 하였다. 나도 그 끝 부분의,
아예 죽어 꽃나비가 되어 / 寧死爲花蝶
꽃나무 가지마다 앉아서 / 花樹枝枝坐
향긋한 날개로 그대 옷에 스치리 / 願以香翅掣君衣
님은 비록 날 모르는 체해도 / 君雖不知吾
난 길이 님의 뒤를 따르리 / 但願長隨君 라는 구절을 애송해 왔었는데, 북헌의 말이 거의 잘 표현되었다.
밤에 희미한 달빛이 은은히 비치자 여러 풀벌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요란해졌다. 등불은 가물거리는데 아무 말 없이 오똑이 앉아 있으니 강개(慷慨)한 마음이 자꾸 소용돌이치고 까닭 모를 슬픔이 일어났다. 이는 아마 가을의 정기(正氣)가 능히 장부(丈夫)의 굳센 창자를 더욱 단련시키려는 것인가 보다. 송옥(宋玉)의 구변(九辯. 楚辭의 편명)을 소리 높여 읽으니, 그의 구레나룻이며 기침소리와 웃음소리에 담긴 정령(精靈)이 글자 사이에 뚜렷이 나타나는 듯하였다. 이에 장률(長律) 한 편을 읊었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기러기 나니 가을 기운 쓸쓸하고 / 鴻流勁氣蕭森亙
달 뜬 갠 하늘 깨끗하고 푸르러라 / 月霽寥天灑落靑
세월은 누구인들 아끼지 않으랴만 / 歲色阿誰能不惜
회포 한 구석엔 후련하지 않누나 / 襟懷强半是難平
12일(신유) 신시(申時)에 날씨가 흐리며 따뜻하였다.
○ 오후 서너 시에 증약(曾若. 尹可基)의 하녀(下女)가 나에게 편지를 전해 오기를 “요즘 병이 잦아 늘 누워 있느라니 침상에는 먼지를 닦지 못하고 문 앞의 이끼를 쓸지 못하면서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한 손이 찾아 와서 단풍이 한창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기에 동자(童子)를 시켜 남쪽 창문을 열어 보니,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나무들은 노란빛이 태반이었고 붉은 빛도 빽빽하더군. 가만히 날짜를 헤아려 보니 중양(重陽)을 지난지가 이미 나흘째라 제(弟)의 병이 이처럼 오래되었나 하고 느껴지더군. 억지로 일어나 정원을 거닐으니 추기(秋氣)가 차갑게 얼굴에 스치고 추감(秋感)이 은은히 마음속에 움직여지더군. 들판의 소슬(蕭瑟)함과 초목의 요락(搖落)함과 풍색(風色)의 쟁영(崢嶸)함과 연광(煙光)의 담박함이 모두 사람의 비탄을 환기시키고 또 사람의 지기(志氣)를 발동시키었네. 서재로 돌아와 누웠으니 슬픔도 기쁨도 아니면서 마음이 어수선하고 생각이 흔들리어 누웠어도 앉았어도 불안하기만 하고, 글을 읽어도 시를 읊어도 불안하기만 하였네. 말하지도 웃지도 않고 망연히 도취되어 있는 사이에 일신의 병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니, 작비암(昨非菴)의 ‘일편의 가을 산이 능히 병객(病客)을 치료한다’는 기록이 바로 이 경지인가 보네. 삼청(三淸. 仙境을 이름)을 찾아 노닐자는 약속이 지금까지 지연된 것은 제의 신병 때문이었네. 가을이 아직 늦지 않았고 병이 이제 나았으니, 무르익은 가을 풍경을 단 하루라도 헛되이 보내는 것이 한 가지 애석한 일이고, 사람이 몸이 성하기를 늘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애석한 일이오. 내일 바로 찾아가겠으니 형이 능히 복건(幅巾)과 망혜(芒鞋) 차림으로 제를 이끌고 가 주겠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제 역시 몸이 아파서 신음(呻吟)하느라고 책은 하나도 읽지 못하여 단풍이 무슨 나무이며 중구(重九)가 무슨 계절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네. 그러나 가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사(子思)의《중용》을 읽으면 그 효험이 진월인(秦越人.名醫이름)의 만금(萬金) 값어치의 좋은 화제(和劑)를 대신할 수 있었네. 어젯밤에는 가을의 정기(正氣)에 촉감되어 말[斗]만큼 큰 강개(慷慨)의 덩이[塊]가 갑자기 단전(丹田)을 메우더니 그대로 가로막혀 손을 댈 수 없기에 송옥의 구변(九辯)을 큰 소리로 읽어 씻어내린 다음, 이어서 길게 읊었네. 그 말됨이 우습기 이를 데 없지만 멍해진 듯 미친 듯한 심정으로 어디에 가서 어떻게 잤는지 제 자신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네. 지금 형의 편지를 어젯밤에 읽던 구변처럼 읽어 보니, 우선 고인(古人)의 풍미(風味)가 들어 있음이 기쁘네. 이 달로 들어서는 반시(泮試. 성균관에서의 시험),상제(庠製 학교의 월과제술(月科製述))와 단풍,황국(黃菊)들이 한때에 겹쳐 매우 성황을 이루고 있네. 아무도 성균관 시험과 학교의 제술을 가지고 단풍과 황국으로 바꾸는 이가 없고 거기에만 골몰하여 돌아설 줄 모르는데, 형이 능히 이같은 풍진 속에서 풍(楓),삼청(三淸),추기(秋氣),소쇄(蕭灑),요락(搖落) 등의 참신한 어구(語句)를 뽑아 내었으므로 고인의 풍미가 들어 있다는 것이네. 제의 병이 아직 낫지 않았지만 아뭏든 내일 찾아 주게.”라고 회답하였다.
○ 저녁에 장흥방(長興坊)에 있는 종인(宗人)의 집으로 가서 재숙(齋宿)하였다.
13일(임술) 새벽에 큰 바람이 불고 여름철처럼 무더운 흙비가 조반 때까지 내리다가 차가운 비로 변하여 정오에 그치더니 다시 음산해지고 바람이 거세어, 비로소 추위를 단속하게 되었다.
○ 이날 새벽에 4 대조 할머니 정부인(貞夫人)의 제사를 모시고 돌아왔다.
○ 바람을 쐬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을 감고 정신을 모으니 잠시 후에는 사려(思慮)가 일체 차분해지면서 티끌만한 잡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희(喜),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욕(欲)의 발현되기 이전의 경지인가 보다.
○《중용》 서문을 열 번 읽고 덮어 두었다. 대저 맨 처음에 “자사가 그 전통을 상실할까 걱정했다.[子思 憂失其傳]”는 말은 이단(異端)이 그 조짐을 보이기 시작함으로써 도학이 멀어질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요, “성인과의 거리가 멀어지자 이단이 일어났다.[去聖遠 而異端起]”는 말은 자사가, 세월이 오래될수록 그 진리를 더욱 상실하게 되었음을 걱정한 것이니, 이단이 이미 일어났음으로써 그 걱정이 비로소 깊어졌다는 것이요, “이단의 설이 날로 새롭고 날로 성하다가 노,불(老佛)의 무리가 나오기에 미쳐서는 말은 더욱 그럴 듯하면서도 진리를 크게 어지럽혔다.[異端之說 日新月盛 老佛之徒出 則彌近理 而大亂眞]”는 말은 두 정자(程子)의 걱정이 중차대했다는 것이요, “노,불의 사이비를 배격하였다.”는 말은 두 정자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요, “정문(程門)의 제자들이 그 스승의 말을 위반하고 노,불에 빠진 자가 있었다.[程門弟子 有或倍師說 而淫於老佛者]”는 말은 주자(朱子)의 걱정거리였으므로 장구(章句)를 지어 실학(實學)을 천명하였으니, 도통(道統)의 계승을 그 자신이 사양할 수 없게 된 것이다.《중용》의 학문은 이단을 배격하는 것이 가장 큰 골자이므로, 그 점에 대하여 간절히 언급한 것이다.
○ “말은 더욱 그럴 듯하면서도 진리를 크게 어지렵혔다.”는 말은 노,불의 그릇됨을 갈파한 바가 너무도 엄격하다. 고리(苦李.老子)와 축가(竺迦.석가모니)도 이 훈계를 직접 받는다면 당연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금년 여름에 증약(曾若)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어느 비구(比丘)의 말을 나에게 전해 주기를 “예로부터 유자(儒者)들이 우리 불가(佛家)를 배척해 온 데 대하여 하등 성내거나 변론할 나위가 조금도 없다. 한퇴지(韓退之.韓愈) 같은 사람들은 우리 불가를 무척 헐뜯었지만 그 이면은 도무지 알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오직 뼈에 사무치도록 미운 이는 주회암(朱晦庵.朱熹)뿐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주자가 불서(佛書)를 속속들이 보고 나서 그 하자(瑕疵)를 여지없이 적발해 내었기 때문인 것이다.
14일(계해) 밤에 안개가 끼었다.
○ 상고하건대,《가례(家禮)》에 말한 주척(周尺)의 전 길이는《상례비요(喪禮備要)》에 말한 주척의 9촌(寸)이 되고,《가례》에 말한 포백척(布帛尺)은 바로《상례비요》에 말한 포백척의 반절이 되며, 《가례》에 말한 고척(古尺)은 《가례》에 말한 주척의 9촌 길이가 되고,《상례비요》에 말한 주척의 8촌 길이가 된다.
○《중용》첫장과 아울러 그 장구를 읽었다. 명(命)은 지공무사(至公無私)의 뜻이요, 성(性)은 본연(本然) 또는 당연의 것이며, 솔(率)은 자연에 어긋나지 않는 뜻이요, 교(敎)는 소이연(所以然)을 밝히는 것이며, 수(修)는 이치에 따라 순(順)으로 유도하되 엄격한 도가 대동되어 위아래의 뜻을 연결하였으니 이 글의 추요(樞要)가 된다. 나는 본시 보잘 것 없는 재주로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다. 삼가 주자의 훈고(訓誥)에 따르면서 이처럼 망령되어 자신의 소견으로 경의(經義)를 말하고 보니 그 잘못이 절실히 느껴진다.
○ 나는 비록 성미가 조급하여 글을 차분히 읽지는 못하나 두곡(杜谷) 고응척(高應陟)의 “건량(乾糧)의 준비가 없는 유산(遊山)은 마침내 허기가 지고 말 것이다. 즉 《중용》,《대학》은 건량이고 백가(百家)들은 유산이다.”는 말을 수시로 흠모하곤 하였다. 이 말은 참으로 진미가 들어 있다.
15일(갑자) 오후에 바람이 불고 밤에는 비가 내렸다.
○ 《중용》첫 장을 5번 읽었다. 이하도 이 회수에 의하기로 하였다.
○ 이 장의 세 구절 가운데 윗구절은 하늘이 부여해 주고 사람이 받은 것으로 그 범위가 워낙 광대하여 표명하기가 어렵고, 가운데 구절은 사람이 의당 행할 바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극히 평탄하여 험난하지 않고, 아랫구절은 그 커다란 책임을 성인의 역량과 기백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윗구절은 체(體)가 되고 아랫구절은 용(用)이 되는 것이다. 거룩하다, 성인은 참으로 하늘과 같다.
○ 장구에 말한 3개의 인(因) 자는 자세히 참작해서 놓은 글자이다.
○ ‘도는 잠시도 떠나지 못할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로부터 ‘혼자만이 알고 있는 바를 삼가야 한다[愼其獨也]’는 데까지 읽었으니, 2장이 된다.
○ 장구에 “만일 도를 떠날 수 있다면 어찌 솔성이라 이르겠는가?[若其可離 則豈率性之謂哉]”란 말은 그 당부와 경계가 자세하고 정성스러운 가운데 매우 엄격하다. 군자의 말은 의당 이와 같아야 한다.
16일(을축)
○ 아침에 모친의 해수[痰咳]가 자주 극심하여 현훈증(眩暈症)까지 일으켰다. 자식된 자의 초조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저녁에 현훈증은 조금 나았으나 요통증(腰痛症)으로 돌아 극심하다가 밤중에 조금 나아졌다. 이대로 완쾌될지 모르겠다.
집 안에 한섬 곡식도 없어 모친의 의식(衣食)과 약이(藥餌)를 성의껏 해드릴 수 없으니 가슴이 아프다. 나의 체력이 워낙 허약하여 살림을 제대로 꾸려 나갈 수 없으므로, 몸소 농사나 장사에 힘써 조그만한 성의나마 펴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그러나 어찌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겠는가? “왕연(王延)이 엄동설한에 자기의 몸에는 온전한 의복이 없으면서도 어버이의 봉양을 극진히 하였다.”는 대목을 읽을 적마다 나도 모르게 흐느껴 울었고 또 자신을 돌아볼 때 몸둘 곳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가슴만 아프다.
17일(병인) 새벽에 소나기가 내리고 밤에 안개가 끼었다.
○ 모친의 병환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러나 나의 동동 촉촉(洞洞屬屬)하는 마음은 잠시도 해이해질 수 없다.
○ ‘희,노,애,낙의 발현되지 않은 것[喜怒哀樂之未發]’에서 ‘만물이 생육한다[萬物育焉]’는 데까지 읽었다.
○ 첫째장 장구에는 이기(理氣),음양(陰陽),오상지덕(五常之德),예악(禮樂),형정(刑政)을, 둘째장 장구에는, 심(心),경(敬)을, 셋째장 장구에는 기(幾)를, 넷째장 장구에는 정(情)ㆍ체(體)ㆍ용(用)을, 다섯째장 장구에는 극(極)ㆍ약(約)ㆍ정(精)ㆍ동정(動靜)ㆍ존양성찰(存養省察),성신공화(聖神功化),본연지선(本然之善)을 적출(摘出)하였으니, 여기에 《중용》의 심오한 뜻과 자사(子思)의 고심(苦心)이 소연히 밝혀졌다. 오직 우리 주 부자(朱夫子 주희(朱憙)를 이른다)만이 자사의 지기(知己)이다.
○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생육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는 대문을 처음 읽을 적에는 무슨 말인지 막연하여 알 수 없었다가, 장구와 주를 읽으면서 서너 번 자세히 궁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의 정밀하고 광대함을 깨달았다. 정자(程子)의 “벌여 놓으면 육합에 가득 차고, 거둬들이면 은밀한 데 퇴장된다.[放之則彌六合 卷之則退藏於密]”는 말은 참으로 핍진한 것이다. 오랫동안 음미를 반복할수록 마음이 즐겁고 차분해진다.
18일(정묘)
○ 편지로 중오(仲五.李時福)를 초청하여 서편 성문(城門)으로 나갔다. 의소묘(懿昭墓.덕종妃의 능인 敬陵) 숲속을 거닐면서 석물[象設]들을 바라보고 다시 연희궁(延禧宮. 세종 3년에 毋嶽山 남쪽에 지은 離宮) 옛터로 발길을 돌려 한참동안 둘러 보다가 봉원사(奉元寺)에 들러 잠시 쉬면서 불서(佛書)를 읽었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모화관(慕華館) 뒷산 기슭에 장 원수(張元帥.張晩)의 안현(鞍峴)에 결진(結陣)하고 역적 이괄(李适)을 격파하던 일을 회상하니, 당시의 싸우던 모습이 눈앞에 역력히 보이는 듯하였다.
이어, 반송지(盤松池) 북쪽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처소를 방문하였다. 초가가 쓸쓸한데 동산의 단풍나무와 뜰 앞의 국화는 무르익고 아담한 그 경색(景色)이 마치 발라놓은[抹] 듯하고, 깁[絹]에 방금 네 폭의 그림을 마쳤는데 도사(道士)가 하늘로 오르는 용(龍)을 구경하고 있는 것과, 두 손님이 짙푸른 나무 그늘과 하얀 폭포 사이에 마주앉아 있는 것과, 약을 캐느라고 광주리와 도끼를 땅 위에 내려놓은 것과, 야윈 노새를 탄 사람 뒤에는 초라한 시동(侍童)이 책을 메고 따르는 것인데, 모두 고상하여 속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림들이었다.
그의 자는 이숙(頤叔)으로 그림에 특성을 가졌으니, 당대의 철장(哲匠)이다. 조관아재(趙觀我齋. 趙榮祏),정겸재(鄭謙齋.鄭敾)와 더불어 그 명성이 같았는데, 혹자는 그의 초충(草蟲)과 묵룡(墨龍)의 그림 솜씨는 아무도 견줄 수 없다고 한다. 조,정 두 사람은 다 늙어서 죽어버렸으니 지금의 대가(大家)를 논하면 이 한 사람뿐이다.
그 역시 수발(鬚髮)이 이미 희끗하였다. 그러나 언론이 몹시 오활하기에 내가 “우리 나라의 이름난 산수(山水)를 널리 구경하지 않았는가?”고 물었더니 “다만 금강산과 대흥산성(大興山城)을 구경했을 뿐이다.”고 대답하였다. 또 “왜 그처럼 넓지 못하였는가?”고 물었더니 “가까이 있는 북한산도 미처 구경하지 못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벽(古僻)에만 치우쳐 돌아설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때묻고 조잡한 자에 비하면 그 취지의 탁연함이 하늘과 못[天淵]의 격차와 같을 것이다.
19일(무진) 밤에 안개가 끼었다.
○ ‘중니가, 군자는 [仲尼曰君子]’에서 ‘꺼림이 없다[無忌憚也]’까지 읽었다.
소주(小註)에 주자가 “군자로서도 그 처사가 중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고 소인으로서도 기탄 없는 경우에 이르지 않는 자도 있다.[君子而處不得中者有之 小人而不至於無忌憚者 亦有之]”고 하였는데, 그 말의 뜻이 너무도 지당하다.
○ ‘공자가, 중용은[子曰中庸]’에서 ‘행하여지지 못할 것이다[不行矣夫]’까지 읽었다.
○ ‘능히 하는 이가 적다[鮮能]’라는 2자는 그 말의 뜻이 낙막(落莫.쓸쓸한 모양)하지 않고 매우 종용(從容)스럽다. 또 장구에 “사람마다 다같이 부여받은 것으로 애당초 어려울 바가 없다.[人所同得 初無難事]”는 말도 아주 부드럽다.
○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는 자가 없지만 그 맛을 아는 이가 적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는 말은 매우 개탄하는 뜻이기는 하나 박절하지 않다.
○ 화정 윤씨(和靖尹氏.尹焞을 이른다)의 말에 “막대한 화가 잠깐 사이의 참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므로 삼가지 않을 수 없다.[莫大之禍 起於須臾之不忍 不可不謹]”고 하였다. 나는 등불 밑에서 우연히 이 말을 보고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며 경의를 표하였다. 반드시 경계할 것은 노(怒)와 욕(慾)에 있다. 이 2자를 삼가지 않다가 윤리를 말살시키고 몸을 망친 자가 고금 이래에 얼마나 많았던가? 배수(拜手)하고 이 글을 쓴다.
20일(기사) 흐렸다 갰다 하였다.
○ 오정(午正)부터 저녁까지 심방차 나갔었다.
○ ‘공자가, 순은 그 대지[子曰 舜其大知]’로부터 ‘잃지 않았다[不失之矣]’까지 읽었다.
○ ‘순은 대지다[舜大知]’라는 장에 공자가 세 번씩이나 순(舜) 자를 언급한 것은 순을 찬미하는 뜻이다. 이러한 대문에서 성인의 어법(語法)을 엿볼 수 있다.
○ 순의 대지는 지(知)에 속하고 안회(顔回)의 택중(擇中)은 인(仁)에 속하는데, 공자의 말에 ‘회의 사람됨[回之爲人]’이라는 인(人) 자는 ‘순의 대지’라는 ‘지[知]’자와 상대가 되어 인(仁) 자의 뜻이 들어 있는 듯하다. 인은 즉 인(人)의 뜻이기 때문에 의가(醫家)에서도 행인(杏仁)을 혹 행인(杏人)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이 잘못 되었는지도 모른다. 도리어 공자가, 순과 안자의 자품(資稟)에 대해 칭한 것으로 보는 편만 같지 못할 것 같으니 말이다.
○ ‘공자가,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다[子曰道之不行也]’ 장에서 ‘회는 중용을 택하였다[回擇中庸]’까지는 6장이 되는데, 대체로는 도의 명(明),행(行)과 지(知),인(仁)에 대해 순과 안자로 나누어 말하였다. 그러나 이리저리 굴려서 원활하게 보아야만 서로 표리(表裏)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조항을 분류하여 따로따로 본다면 어느 한쪽은 마비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장구와 소주(小註)를 자세히 추려 보면 어찌 상호 관통이 되지 않겠는가? 이 6장은 가장 혼동되기 쉬운 대목이므로 차분히 궁구해야 옳을 것이다.
○ ‘양쪽을 잡는다[執其兩端]’는 뜻을 혹시 범연하게 보았다가는 본(本)과 말(末)의 양쪽을 놓치고 그 허리춤을 잡는 결과가 되기 쉬울 것이다. 만일 소주(小註)에 주자(朱子)의 상금(賞金)에 대한 비유가 없었던들 큰 착각을 초래하게 되었을 것이다.
○ 노소재(盧蘇齋. 盧守愼)가 해외에 귀양살이할 때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송나라 陳柏이 지음)을 주석(註釋)하였는데 자못 자세하다.
21일(경오) 큰 바람이 불고 추웠다.
○ ‘공자가, 천하 국가[子曰天下國家]’에서 ‘강하다, 교(矯)함이여[强哉矯]’까지 읽었다.
○ 순의 대지(大知)와 안자의 택중(擇中)은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능히 중용을 이룬 지와 인이요 “가히 다스릴 수 있고 가히 사양할 수 있다.[可均可辭]”는 것은 한쪽에 치우쳐 중용을 이루지 못한 지와 인이다. 여기에 “칼날도 밟을 수 있다.[白刃可蹈]”는 용(勇)에 관한 일을 부가하여 네 가지 강(强)을 내세운 것은 그 다음의 공부를 택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 율곡(栗谷) 선생이 일찍이 《맹자》 등문공(滕文公)의 ‘천하의 인(仁)에 거한다[居天下之廣居]’는 장과 《중용》의 ‘강하다, 교함이여’라는 장을 읽을 때 세 번씩이나 감탄하였고, 잠을 깨면 항상 외어서 뜻을 세우고 몸 닦는 근본을 삼았으니, 선생의 한평생 출처(出處)가 어떠하였음을 볼 수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이 장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의지가 고상하고 분발되어, 혼타(昏惰)한 기질과 사벽(邪僻)된 뜻이 거의 벗겨지는 듯하다. 어느 누가 성인의 세대가 이미 멀어졌고, 그 말이 이미 묵었다고 이르겠는가? 착륜자(斲輪者)의 ‘성인의 조박(糟粕)일 뿐이다’ 하는 발언은 자포 자기하는 자이며 또 덕을 해치는 자이다.
○ 오후에 심방차 나갔다.
22일(신미) 새벽에 첫서리가 내렸다.
○ 생민동(生民衕)에 있는 종인(宗人)의 집에 가서 유숙하면서, 족질(族姪)과 함께 10여 일간 글을 읽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 밤에,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이 지은 《백사선생북천일록(白沙先生北遷日錄)》을 보았다.
대비(大妃.인목대비를 말한다)를 폐하는 일을 수의(收議)할 때, 백사(白沙.李恒福)가 충정공(忠貞公) 정홍익(鄭弘翼)과 더불어 “우순(虞舜)이 울부짖어 원모(怨慕)하면서 부모의 잘못은 알지 못했다.”는 일을 인용하고 또 “급(伋)의 아내가 된 자는 백(白)의 어미가 된다.”는 말까지 인용하면서 간하였다. 그 말이 매우 정대하여 사람의 기강을 세우고 하늘의 상리(常理)를 붙잡았으니, 만고를 통하여 정확한 의논이었다. 그러나 가엾게도 여러 소인들이 도리어 합계(合啓)하여 그에게 죄주기를 청하였다.
대개 “순(舜)은 그 당시에 한낱 필부(匹夫)의 신분이므로 비록 몹쓸 어미에게 해를 당한다 해도 화(禍)가 그의 한 몸에 그칠 뿐이며 ‘공손히 자식된 직분만을 다할 뿐이었다’는 것은 순의 순다운 처사였지만, 제왕(帝王)으로서 변(變)을 처리하는 도는 필부와 같이 할 수 없다.” 하고 또 “순이 이미 임금의 지위에 있었다면 순의 신하된 사람들이 어찌 순의 피해를 그냥 보고만 있으면서 몹쓸 어미의 죄를 밝혀 내지 않았겠느냐.” 하고, 또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였을 때 고요(皐陶)가 법대로 잡는다면 순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는 말까지 인용해 가면서 그의 안치(安置)를 강청하여 마침내 북청(北靑)으로 내쫓았다가, 나라를 걱정하는 고충으로 죽게 만든 것이다. 아아, 허균(許筠),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조찬한(趙纘韓) 등의 죄악이야 어찌 다 꾸짖겠는가?
백사공이 망우령(忘憂嶺)에 올라 지은 시에,
모진 바람도 철석같이 굳은 마음 뚫기 어려워 / 獰風難透鐵心肝
서관 땅 만 겹 산도 두렵지 않누나 / 不怕西關萬疊山
진암이라 천 길 고갯마루에 말 세우고 / 歇馬震巖千丈嶺
석양에 목릉을 돌아보니 마냥 쓸쓸하기만 하다 / 夕陽回望穆陵寒
하였는데, 나는 이 시를 읊을 적마다 나도 모르게 힘줄이 서고 담(膽)이 커지며 수발(鬚髮)이 곤두서곤 하였다. 마침 가물거리는 등불 앞에서《중용》의 “나라에 도가 없자 죽음에 이르러도 변하지 않으니 강하다, 교함이여[國無道至死 不變 强哉矯]”라는 대문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백사공이야말로 거의 여기에 가깝다고 감탄하였다.
23일(임신) 온종일 비늘 구름이 끼었다.
○ ‘공자가, 은벽한것을 구하고 괴이한 것을 행한다[子曰 素隱行怪]’로부터 ‘오직 성인이어야 능히 한다[惟聖者能之]’까지 읽었다.
○ 글 읽는 것을 약리(藥理)에 비유할 수도 있다. 중용을 하는 자는 원기가 충실하고 맥박이 순조로워 수족(手足)과 이목(耳目)이 활발하고 총명하여 조금의 아픔도 없는 것과 같고 인,지(仁知)를 하는 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신이 영명(英明)하고 기혈(氣血)이 충만하여 애당초 사기(邪氣)의 침투가 없고 거기에다 존양(存養)과 조리를 잘하여 잠시의 간단도 없기 때문에 한평생 건강하여 조그만 병도 없는 것과 같다.
중용을 하지 못하는 자는, 처음에는 성장(盛壯)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침투된 병근(病根)이 점차 커져서 온갖 고통에 얽매이게 되기 때문에 만일 적기에 조치하지 않으면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다. 천하 국가를 다스리고 작록을 사양하고 칼날을 밟을 수 있는[天下國家 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자와 남방의 강[南方之强]을 하는 자와 중도에서 폐하는[半途而廢] 자는, 처음에는 비록 조양(調養)하는 이치를 약간은 알았으나 그것을 넓혀 원활하게 하지 못하고 한 가지 소견에만 고집하다가 도리어 병의 응어리 속에 빠져 정상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은벽한 것을 구하고 괴이한 것을 행하는 자는 병 나기 전에는 비록 조양할 줄을 알았으나 마침내 과도한 데로 돌아가고 마는 것과 같다. 즉 기(氣)가 조열(燥熱)해졌을 적에는 약간 청량(淸涼)한 곳에 기거하면서 그 증세에 따라 서서히 유도해야 당연한 일인데 이는 그렇지 아니하여, 조열한 데는 한랭(寒冷)한 것으로 조양하는 것이 상책이라 스스로 단정하고 얼음물을 마시거나 눈[雪]을 씹는 등 하지 않는 짓이 없는 것이다. 모든 일에 그 정상과 위배되는 바가 다 이와 같다.
이같은 증세들은 인삼(人蔘),부자(附子)로 그 미급함을 보충시키고 망초(芒硝),대황(大黃)으로 그 과도함을 부수어 무사하고 평상을 찾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병이 고황(膏肓)에 들고 말 것이다.
순과 안자의 지와 인을 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인삼,부자와 망초,대황이 있다 한들 무엇에 쓰겠는가? 그러나 이 외의 사람에게는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된다. ‘강하다 교함이여가 용(勇)이 되는 것은 인삼,부자나 망초,대황과 같은 것이다. 만일 ‘남방의 강’만을 들어 약이라 한다면 그 기미(氣味)가 느려서 쓸모가 없으며, ‘북방의 강[北方之强]’은 아예 사용할 수가 없다. 또한 ‘은벽한 것을 구하고 괴이한 것을 행하는 것’만을 들어 약이라 한다면 사용하는 즉시 병세가 악화되고 말 것이다.
24일(계유) 바람이 불었다.
○ ‘군자의 도는 비하되 은하다[君子之道 費而隱]’에서 ‘그 극치에 이르러서는 천지에 나타난다[及其至也 察乎天地]’까지 읽었다.
○ 오정에 모친을 뵈러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 “은만큼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莫見乎隱]”라는 은(隱) 자는 암(暗)의 뜻이고 “은벽한 것을 구한다.[素隱]”라는 은 자는 벽(僻)의 뜻이고 “비하되 은하다[費而隱]”라는 은 자는 미(微)의 뜻이다. 글자는 하나인데 그 뜻은 세 가지다.
○ 이 장은 자세히 따져서 읽지 않고는 그 오묘한 곳을 엿볼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여 터득해야 된다. 장구에 “읽는 이가 그 생각을 다해야 한다.”는 말과 소주(小註)에 요씨(饒氏)의 “말 없이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 모두 깊은 맛이 있다. 또한 요씨의 제 12장을 총론(總論)한 소주도 매우 자세히 언급한 것이다.
○ 오륜(五倫) 가운데서 “단서가 부부에서 시작된다.[造端乎夫婦]”라고만 말하였는데, 성인이 아니고는 십분 상량(商量)하여 이같이 간절한 말을 할 수 없다.
○ 나는 집을 떠나온 지가 겨우 며칠이 안 되었고 또 거리도 5리가 못되는데도 때없는 집생각이 마치 어린애의 연모하는 정과 같은데, 화주(花酒)에 빠지고 색기(色技)를 탐하여 먼 곳으로 쏘다니느라고 부모를 돌보지 않아 밤낮 걱정을 끼쳐 주는 자들을 생각하면, 그들은 무엇하는 사람일까? 나가고 돌아올 때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하며 또 나간다는 방향을 바꾸지 말아야 하고 돌아오겠다는 시일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옛 사람의 훈계가 너무도 곡진하다. 혹시 벼슬살이나 기타의 일로 타향에 분주하면서 부모의 봉양을 도모하는 이는 부득이한 사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마음에 어찌 내켜서이겠는가?
25일(갑술)
‘공자가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道不遠人]’에서부터 ‘군자가 어찌 독실하지 않으랴 [君子胡不慥慥爾]’까지 읽었다.
○ “사람으로서 사람을 가르치다가 고쳐지면 그만둔다.[以人治人 改而止]”는 구절은 그 말이 가까우면서도 그 뜻은 깊다. “자루를 들고 자루감을 벤다.[執柯伐柯]”와 “사람으로서 사람을 다스린다.”라는 비유는 그 의의가 처음에는 같은 듯하지만 끝내는 그렇지 않다. 나무 중에도 도끼의 구멍에 맞는 것이어야 자루로 쓸 수 있으니, 아름드리, 등걸, 울퉁불퉁한 것, 가는 가지, 부드러운 줄기는 쓸 수 없다. 마땅히 들고 있는 자루의 대소(大小)와 같은 것부터 골라낸 후에 그 장단(長短)을 헤아려 베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이 사람도 저 사람과 같고, 저 사람도 이 사람과 같으며 나도 남들과 같고 남들도 나와 같다. 통틀어 말하면 모두 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인 것이다. 하늘이 사람에게 성(性)을 부여할 때 어찌 피아(彼我) 사이에 장단(長短)과 증감(增減)을 두었겠는가? 균일하고 원만함이 누구나 다 같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사람을 가르치는 바가 어찌 자루감처럼 고른 뒤에야 베는 것과 같겠는가? 고쳐지면 그만두는 것은, 원만하다[滿的]는 뜻과 같다.
○ 충서(忠恕) 2자를 위와 아래로 끊어서 공부를 하여야 그 효용이 끊임없게 될 것이다.
○ “군자의 도 네 가지에서 나는 하나도 능하지 못하다.[君子之道四 某未能一焉]”는 말은, 어찌 공자가 진정 능하지 못해서이겠는가? 성인의 겸사(謙辭)이다. 또한 공자는 “내가 하나도 능하지 못하다.[某未能一]”는 4자를 내세워, 여러 사람들 가운데 자책하고 자수(自修)하려는 자로 하여금 분발하고 경계하기를 끊임없이 하여 충서의 도를 이루도록 한 바이므로 윗대문에 “성인도 알지 못하고 능하지 못할 바가 있다.[聖人之有所不知不能]”라는 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26일(을해) 바람이 불었다.
○ ‘군자는 그 위치에 입각해서 행한다[君子素其位而行]’로부터 ‘부모는 안락할 것이다[父母其順矣乎]’까지 읽었다.
○ “그 외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不願乎其外]”라는 것은 자기 직분으로 당연히 해야 할 바를 지킬 뿐이요, “군자는 가는 데마다 자득하지 않음이 없다.[君子 無入而不自得]”라는 것은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형세에는 비록 부귀와 빈천의 차이가 있지만 사람이란 자신에게서 멀지 않은 도를 당연히 행하여야 할 뿐이다. 위의 5장과 아래의 3장은 구절마다 자세하고 치밀하여, 읽을 적마다 춤이 저절로 추어질 것 같았다.
○ 이미 “호합하고 화합한다.[好合旣翕]”고 말하고 또 “화락하고 즐거우며 마땅하게 하고 즐겁게 한다.[和樂且耽 宜爾樂爾]”고 말하였다. 이는 옹용(雍容)과 길상(吉祥)의 극치로서, 그 말의 중복된 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자가, 부모는 안락할 것이다라고 한 말은 애연(藹然)히 피부에 느껴져, 그 화열(和悅)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는 가운데 깊은 감동까지 준다. 마치 부인이나 어린애가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척을 갑자기 만났을 때, 처음에는 대뜸 웃다가 마침내 흐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아름답도다, 성인의 친절하고 훌륭한 말이여, 그 즐거움이 어떻다고 표현하겠는가?
○ 오정에 심방차 나갔었다.
27일(병자) 때때로 흐렸다.
○ 오정에 집으로 가서 모친을 뵙고 저녁에 돌아왔다.
○ 취금헌(翠琴軒)의 유사(遺事)를 보았다. 박팽년(朴彭年)의 자는 인수(仁叟)로, 천성이 침착하고 말이 적었으며《소학(小學)》으로써 몸을 규제하였고, 천순(天順.명나라 연호) 황제가 오랑캐에게 함락되었을 적에는 정침(正寢)을 떠나 문 밖에 풀방석을 깔고 거처하면서 “천왕(天王)이 지금 오랑캐 땅에 계시니, 내가 비록 외방(外邦)의 배신(陪臣)이지만 차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하다가 황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야 정침으로 돌아왔으니 참다운 학사(學士)이며, 마침내 죽음으로써 임금에게 보답하였다.
그가 죽을 무렵에 그 자부(子婦)가 임신중에 있었다. 만일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율법에 의하여 당연히 죽게 되었는데, 마침 그 여종[婢女]도 임신중이었다. 그 여종이 “다 같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저의 자식으로 대신 죽게 하겠다.”고 하였는데, 분만하기에 이르러 그의 자부는 사내아이를 낳고 비녀는 계집아이를 낳았으므로 여종이 바꿔쳐서 자기 아들로 삼았으니, 참으로 인수(仁叟)의 여종이다. 평소 긴 수염을 늘어뜨리며 높은 관(冠)을 쓰고 대장부로 자처하다가도 어려움에 다다라서는 이 여종만도 못한 자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여기에 절실히 느껴지는 바가 있어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덕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등백도(鄧伯道)의 일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하늘이 일부러 그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로 바꾸어 다 같이 목숨을 보존하도록 유의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등백도는 그 의(義)를 사후에 단행하였지만, 이 여종은 그 정성이 사전부터 부각되어 그러한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28일(정축) 온 종일 바람이 불었다.
○ ‘공자가, 귀신의 덕은[子曰鬼神之爲德]’에서부터 ‘엄폐할 수 없음이 이와 같다[不可揜如此夫]’까지 읽었다.
○ 저녁에 종현(鍾峴)에 가서 잤다.
29일(무인)
○ 새벽에 군미(君美.李世懋)의 기제(忌祭)에 참여하였다.
○ 아침에 집으로 모친을 뵈러 갔다가 몸이 아파 그냥 집에서 잤는데, 밤에는 허문보(許文父.許穆)의 《기언》(記言) 7~8장을 보았다.
10월 1일(기묘) 바람이 불었다.
○ 사군자(士君子)가 글을 읽을 때 이단(異端)은 반드시 배격하여야 한다. 당(唐)의 병부랑(兵部郞) 이약(李約)이 《도덕경(道德經)》의 주(註)를 내어 4권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태사(太史) 사마천(司馬遷)은 황로(黃老. 黃帝와 老耼)를 먼저로 하고, 육경(六經)을 뒤로 한 실수가 있다.”고 비평하였는데, 이는 세속의 말이다. 이 이하는 빠졌다.
자유(子由 소철(蘇轍)의 자)는 “노자(老子)가 맹자보다 2~3등(等)이 더 높다.” 하였고, 또 시에,
지금 81장의 주가 있으니 / 近存八十一章註
도를 노자의 문하에게 묻는다 / 從道老耼門下人
하였으니, 이는 거기에 고혹되어 돌아설 줄을 모른 소치이다. 아아, 자유는 사문(斯文)의 죄인이다.
2일(경진) 새벽에 큰 비가 내리고 거센 천둥과 번개가 치다가 아침에 개었으며, 온 종일 큰 바람이 불었다.
○ 귀신장(鬼神章)에 맨 처음 성(誠) 자를 내세우고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억(抑)에 “신의 이르는 바를 헤아릴 수 없다.[神之格思 不可度思]”는 구절을 인용한 다음 “성은 엄폐할 수 없다.[誠之不可揜]”는 말로 이었으니, 이는 적절한 자리에 성(誠) 자를 놓은 것이다.
○ 시 6수를 읊었다.
3일(신사) 큰 바람이 불고 비늘 구름이 끼고 물이 비로소 얼었다.
○ ‘공자가, 순은 큰 효를 행하였다[子曰舜其大孝也與]’에서부터 ‘반드시 천명을 받는다[必受其命]’까지 읽었다.
○ “반드시 그 지위를 얻는다.[必得其位]”는 말은 “존위(尊位)는 천자가 되었다.[尊爲天子]”는 구절과 호응되고 “반드시 그 녹을 얻는다.[必得其祿]”는 말은 “부(富)로는 사해(四海)를 차지하였다.[富有四海]”는 구절과 호응되며 “반드시 그 명성을 얻는다.[必得其名]”는 말은 그 덕이 광대하고 광명하여 사람마다 찬양함을 뜻하고 “반드시 그 수명을 얻는다.[必得其壽]”는 말은 그만한 큰 덕이 있어도 수명이 짧으면 부귀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덕이 앞서고 수명이 뒤따르게 됨을 뜻한다.
‘하늘이 만물을 낸다[天之生物]’라는 장은 침착한 마음으로 보아야 할 대문이다.
○ ‘공자가, 근심이 없는 이는 문왕이다[子曰無憂者 其惟文王]’에서부터 ‘귀천을 막론하고 다 같다[無貴賤一也]’까지 읽었다.
○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를 모사(模寫)하여 북쪽 벽에 붙이고 종질(宗姪)을 권면하였다. 또 그의 조부 평창공(平昌公)의 서찰 가운데 “묵은 버릇을 뽑아 버리고 새 뜻을 분발하라.[撥去舊習奮發新志]”는 8자를 념출(拈出)한 다음 그 옆에 “갑신년(1764, 영조 40) 10월 3일 오시(午時)에 이것을 벽에 붙여, 뒷날의 경계로 삼아 수시로 살피도록 한다.”라고 손수 써 놓았다.
4일(임오) 큰 바람이 불고 밤에는 비가 내렸다.
○ 옛날 제왕(帝王)들 가운데 모든 것이 원만하여 하나의 흠도 없었던 이는 다만 문왕(文王)뿐이다. 자신은 성인인데다 한 집안이 후직(后稷.주나라 시조) 이하로 여러 대(代) 동안 덕을 쌓았고, 태왕(太王)의 손자이며 왕계(王季)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주공(周公)의 아버지였고 또 태임(太姙)의 모훈(母訓)과 태사(太姒)의 내조(內助)까지 있었으며, 그 중조(中祖)로는 공류(公劉)가, 방친(旁親)으로는 태백(太伯),중옹(仲雍)이, 손자로는 성왕(成王)이 있었으니, 이들은 다 성인의 재질이었다.
또한 아들 1백 명에 수명은 1백 세에 미쳤고, 무왕에 이르러서는 포악한 주(紂)를 쳐서 8백 년의 기업을 세운 때문에 공자가 ‘근심이 없는 이’로 찬양한 것이다.
그의 덕은 순(舜)과 같으나 그의 처지는 서로 다른 바가 있다. 순은 미천한 홀아비로 그릇 굽고 구기 잡고 농사 지으면서 온갖 시련을 겪었다. 또 아버지는 고수(瞽瞍)로 인자하지 못하였고, 아우는 오만한 상(象)이었으며 어미는 사악(肆惡)하고 아들 상균(商均)은 불초한 등, 인륜(人倫)의 큰 변을 만났다.
그러나 대지(大知),대덕(大德),대효(大孝)가 있었기 때문에 부모로 하여금 나쁜 데 이르지 않고 끝내 그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전환하여 한 집안이 화락하도록 만들었으며, 그의 마음을 안 이는 오직 요(堯)이었기 때문에 두 딸을 아내로 삼아 주고 천자의 지위에 선양(禪讓)하였으므로, 부부 사이와 군신(君臣) 사이가 처음부터 원만하였던 것이다. 그 인륜의 변을 처리하는 도에 있어 순 같은 성인이 아니었던들 어느 누가 그와 같이 하였겠는가? 그러므로 공자가 대효로 찬양한 것이다.
다만 문왕은 여러 아들 가운데 불행히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있었지만 문왕이 생존하였을 적에는 그들의 사악(肆惡)이 보이지 않았으니 그런대로 위로가 될 만하다. 그러나 그 군신 사이에 있어서는 주(紂)와의 관계가 얼마나 어려웠던가? 비록 문왕의 임금 섬김이 순의 어버이 섬김과 거의 비슷하지만 그 아들 무왕에 이르러서 비로소 대업을 이룬 것이고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은 아니다.
대저 순의 읍양(揖讓)과 무왕의 정벌(征伐)이 그 사체(事體)는 다르나 문왕이, 끝까지 주(紂)를 섬기다가 무왕에 이르러서 대업을 이루게 되었고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순의 읍양과 똑같이 평화로웠으니, 이 역시 ‘근심 없음’의 일단이다.
○ 명(明) 나라 사람들은 재기(才氣)가 정교(精巧)하여 염곡(艶曲)이나 절구(絶句)에 파조(葩藻)가 넘쳐 흐른다. 이헌길(李獻吉)의 염곡에는,
부모는 어린 딸을 사랑하는데 / 父母愛少女
그 딸은 총명한 자질로 / 女是聰明子
여태껏 원앙새를 모르면서도 / 生不識鴛鴦
능히 원앙새를 수놓았네 / 繡出鴛鴦是
라 하였고, 자야가(子夜歌)에는,
버드나무 가지는 구불구불 얽혔고 / 柳條宛轉結
파초의 심은 밤낮 말려 있네 / 蕉心日夜卷
이는 펴질 때가 없어서가 아니라 / 不是無舒時
님의 손길 기다려 스스로 펴지리 / 待郞手自展 라고 하였다.
이우린(李于鱗)의 오농가(懊憹歌)에는,
베 돛 백여 폭에 / 布帆百餘幅
한들한들 바람이 절로 나네 / 婀娜自生風
강물은 가득해 달 같은데 / 江水滿如月
나의 이 시름을 어쩌나 / 那得不愁儂
라 하였고, 야도랑(夜度娘)에는,
내가 올 땐 별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 儂來星始集
내가 갈 땐 달이 기울려 하네 / 儂去月將夕
땅 위에 서리도 내리지 않았는데 / 不是地上霜
아무도 나의 자취 본 이가 없네 / 無人見儂跡 라고 하였다.
원미(元美 왕세정(王世貞)의 자)의 유주마행객가(幽州馬行客歌)에는,
어미는 딸 시집 보내지 않으면서 / 阿母不嫁女
일부러 가끔 짜증만 내누나 / 阿母故相惱
원앙을 수놓으라고 성화인데 / 敎作繡鴛鴦
원앙이 대체 무슨 새란 말인가 / 鴛鴦是何鳥
라 하였고, 절양류가(折楊柳歌)에는,
제발 가운데 딸로 태어나지 마라 / 莫作中女娘
그 시름 이루 말할 수 없어 / 懊憹不可言
언니는 벌써 시집 갔고 / 大姊得蚤嫁
동생도 님 맞이 기뻐하네 / 小妹得郞憐 라고 하였다.
5일(계미) 새벽부터 거센 천둥과 번개가 치고 폭풍이 불며 소나기가 내렸다. 진시(辰時),사시(巳時)에 비가 비로소 멎고 비늘 구름이 유동하였으며 저녁에 바람이 조금 그쳤다.
○ 나는 요즘 손암(遜菴.元重擧) 원장(元丈)과 함께 문장(文章)의 시대적 승강(升降)에 대해 담론하였는데 손암이 “내가 새로 일본(日本)을 다녀왔는데 그곳 문사(文士)들이 백설루(白雪樓.원나라 程鉅夫) 제자(諸子)의 여러 문집(文集)을 힘써 읽어서 한창 풍미(風靡)하고 있고, 문장도 더러는 그럴 듯하더군. 대저 명 나라에는 뛰어난 문장도 없고 이학(理學)도 없었으니 명대(明代)의 문장을 젖혀 놓고 문(文)이나 시(詩)를 자의로 지은들 무엇이 불가하겠는가? 내가 역대 이래의 장점을 열거하되 ‘주(周)의 예(禮)와 진(秦)의 법(法)과 한(漢)의 문과 당(唐)의 시와 송(宋)의 학(學)과 원(元)의 가사(歌詞)와 명(明)의 제발(題跋)이다’ 하였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발만은 더러 고금(古今)에 내놓을 만한 것도 있지만 나머지는 취할 바가 없네.” 하였다. 나는 “그 문력(文力)은 비록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 하겠지만 어찌 대명(大明) 3백 년 동안의 학사(學士)와 재자(才子)들을 제발 두 가지로써 얕잡아 논평하겠습니까?” 하였더니, 손암이 웃으면서 “자네는 나를 오활하다고 여기는가?”고 반문하였었다.
오늘 마침 포천(抱川)에 있는 종인(宗人) 장무씨(章懋氏)와 만나서 이 문답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장무씨가 “명 나라의 시문이 비록 졸렬하기는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모두 다 말이 되는데, 제발 두 가지만을 든다는 것은 너무 얕잡아 보는 논평이네.” 하였고, 또 “진(秦)의 소행은 방자하게 광악(狂惡)만을 부렸을 뿐, 아무 것도 취할 바가 없네. 이른바 진의 법이란 참혹하고 각박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그런 법에서 무엇을 취하겠는가? 가령 취할 바가 있다면 그 병력(兵力)밖에 없네. 6국(六國 .한(韓)ㆍ위(魏)ㆍ초(楚)ㆍ조(趙)ㆍ연(燕)ㆍ제(齊))의 강병으로도 함관(函關.진나라 함곡관을 말함)을 합공하였으나 해마다 참패만 거듭하다가 필경 모두 진에게 병탄을 당하고 말았으니 그 병제(兵制)만은 혹 칭할 만하다.”고 하기에 나도 “매우 옳은 말입니다.”고 하였다.
그 후에 장태악(張太岳.張居正)의 글을 보니 “진이 창제한 법을 지금까지 준수하여 이득을 보아 왔으므로 사관(史官)들도, 진이 성인의 위엄을 얻었다고 칭하였다.” 하였고 또 “본조(本朝)의 치법(治法)은 간엄(簡嚴)하고 질실(質實)한데 근세의 오활한 무리가 오히려 송 나라 말기의 폐습을 지지하면서 우리 조종들이 세운 바를 망령되이 의논하고 있으니, 이는 다스리는 이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고 하였다.
나는, 대명의 엄밀한 법이 끝내 송조(宋朝)의 관후한 다스림보다 못하다고 본다. 장태악의 일생을 역력히 상고해 보면 그 소행이 각박하여 인정이 없었으니, 마침내 신불해(申不害)ㆍ한비자(韓非子)와 같다는 비평을 받아 여러 사람의 원망이 한몸에 집중되었음이 어찌 당연하지 않은가? 여기에서 진의 법은 취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더욱 깨달았다.
6일(갑신) 온 종일 바람이 불고 저녁에는 황색 구름이 사방에서 모여들더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 나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객지에 있은 지 15일이어서 안석(案席)의 먼지를 털고 서책(書冊)을 점검하는데 자못 쓸쓸하게 여겨지는 감이 느껴졌다. 그 동안에 좌백(佐伯),여온(汝溫.徐瓚修),증약(曾若.尹可基),명오(明五.李圭昇) 등이 번갈아가며 나를 찾아왔었으나 만나지 못하고 섭섭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그 중에 명오가 두 번째 왔다가 동쪽 벽에 남기고 간 시에,
주인을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 主人秋不遇
혼자 가을 바람을 향해 섰노라 / 獨立高風時
지난 여름 단란했던 그 즐거움을 / 三夏團團欒
지금 생각하면 마치 꿈만 같아라 / 今來似夢疑 라고 하였다.
7일(을유) 바람이 불었다.
○ 명오(明五)를 방문하여 그의 시 30여 수를 보았다. 그 중에는 새로운 뜻이 들어 있는 것도 있었다. 즉,
거룻배 어디서냐 / 漁舠何處自
게 잡는 불이 별과 같네 / 蟹火一星如
란 것이 가장 우수한 경구(警句)인데, 그의 시는 재주가 너무 과하여 전혀 신기한 것만을 주력한다. 내가 “자네의 시는 갈수록 더욱 영이(靈異)해지기만 하니 장차 무슨 물건이 될 것인가?”고 물었더니 “나에게 좋은 도리를 지시해 달라.”고 하였다. 내가 “무릇 시에는 사(事)와 경(景)이 서로 조화되어야 문과 질(質)이 상반하다고 칭할 수 있네. 경 가운데 사를, 사 가운데 경을 띤 것도 있고, 경과 사를 각각 묘사한 것도 있으며, 형편에 따라서는 경만을, 혹은 전혀 사만을 묘사하기도 하였네. 만일 시마다 사만을 위주한다면 고지식한 데 빠지게 되고 경만을 위주한다면 부화(浮華)한 데 돌아가게 되는데, 자네의 시는 아무래도 경만을 위주한 바가 많은 것 같네.”라고 하였더니. 명오도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또 증약(曾若)의 시를 보면 혼융(渾融)과 원숙(圓熟)을 위주한다. 내가, “문장이란 구태여 하나의 문호(門戶)에만 집착하지 말고 형편에 따라 처리해야 하네. 즉 때로는 너무 곱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괴팍하게 하기도 하며 때로는 신기(新奇)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평이(平易)하게 하기도 하며 혹은 넓게 하기도 하고 혹은 섬세하게 하기도 하고 부화하게 하기도 하고 혹은 침착하게 하기도 하되, 옛사람의 뜻만은 상실하지 않으면서 그 변화의 신축(伸縮)이 자신의 수중에 들어 있어야 하네. 만일 옛사람의 뜻을 상실하다면 이는 잡설(雜說)이지 좋은 문장이 아니네.”라고 하였다.
이어 분국(盆菊)을 가리키면서 “저 분국이 혹은 기울어져 있기도 하고 혹은 서 있기도 하며 혹은 쳐들러져 있기도 하고 혹은 엎드러져 있기도 한데, 다 황색 꽃과 녹색 잎과 자색 줄기와 백색 뿌리 등 양상이 여러 가지여서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어디까지나 국화이네. 모든 물건도 다 이와 같이 미루어 알 수 있네. 비유하건대, 자신은 당(唐)을 주장하고 상대방은 송(宋)을 주장하는데, 만일 상대방이 자기처럼 당을 주장하지 않고 송을 주장한다 하여 상대방을 책망한다면 이 어찌 공론(公論)이라 하겠는가?”고 하였더니 증약도 그렇다고 하였다.
8일(병술)
명오가 찾아와서 이제암(李濟菴)의 요즘 시를 전해 왔다. 나는,
연다의 고벽은 자주 불을 일으키고 / 煙茶苦癖頻生火
연적의 영심은 공교히 조수를 응했다 / 硯滴靈心巧應潮
는 시를 보고 “이는 시를 유희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냐?”고 하였더니, 명오가 다시 시를 짓는 법을 말해 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시란 괴벽스럽거나 평담(平澹)하거나 미려(美麗)하거나 날카로운 것을 막론하고 조화를 이루어 말이 되었다면 쓸모가 있겠지만, 겉으로만 화려할 뿐 옛사람의 뜻을 상실하고 또 끊어져서 말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 시와 문(文)이라 하겠는가? 문장에는 아(雅)와 속(俗)이 있네. 우선 이 두 가지부터 관찰할 줄 알아야만 백 가지 격식과 천 가지 법칙이 다 무언중에 들어 있게 되는 것이므로, 삼가 티끌 무더기와 세속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네. 재주가 없다면 몰라도 이미 그만한 재주가 있는데다 시에 전념까지 하고 있음이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9일(정해)
《시경(詩經)》 빈풍(豳風)에,
빈 틈을 막고 쥐를 몰아내며 / 穹窒熏鼠
북쪽 바라지를 막고 창문을 바른다 / 塞向墐戶
고 하였는데, 나는 이 작업을 며칠 동안 손수 계속하였더니 피로가 더욱 심하여 건강이 좋지 못하다. 이런 조그만 일에도 이처럼 흔들리니 큰일에는 어찌할 것인가? 나는 혹시 조그만 일에만 이같이 호도(糊塗)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자위하고 또 자책만 할 뿐이다. 이런 관계로 독서하는 일과까지 폐지하게 된 것이 다시 한스럽기만 하였다.
농암(農巖.金昌協) 선생의 말에 “일과에서 얻어지는 공효는 가장 쉽게 나타난다. 하루 사이의 공부가 비록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공부가 쌓여지고 의미가 두루 통해지는 것을, 하다 말다 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차이가 어찌 배(倍)뿐이겠는가.”고 하였는데, 나는 이 대문을 읽을 때 매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10일(무자) 밤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
○ ‘공자가, 무왕과 주공은[子曰 武王周公]’으로부터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다[其如示諸掌乎]’까지 읽었다.
○ 소목(昭穆)을 정하는 것은 인륜의 의(誼)를 다하는 바이므로 먼저로 하고, 작위를 정하는 것[序爵]은 이성(異姓)과 동성(同姓)이 함께 있으므로 인륜으로 따지지 않고 작위로 따지기 때문에 다음으로 하고, 어진이는 반드시 분별해야 하므로 종(宗)ㆍ축(祝)의 직무를 정하는 것[序事]을 그 다음으로 한다. 이미 이렇게 되면 하부에 있는 자들이 그 정의를 소통시킬 수 없으므로 여럿이 권하는 예[旅酬]를 그 다음으로 하여 미천한 자들에까지 미치게한 것이며 제사를 마친 뒤에 일체 잔치하는 것은 그 나이를 따져 자리를 정하는 바이니, 이는 예의 좋은 끝맺음이다. 거룩하고 지극하도다. 원만하고 곡진하여 조금의 유감도 없다.
○ 하늘과 조상에 제사(祭祀)하는 것은 왕자(王者)의 큰 예이다. 이미 여기에 밝으면 나라 다스리는 도구가 정연히 구비되어 질서 있게 처리되는 때문에 공자가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이 쉽다’고 말한 것이다. 시(示) 자는 시(視) 자의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손바닥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11일(기축) 아침에 안개가 끼고 온 종일 흐렸다.
○ 어떤 손이 나를 찾아와서 “평소 과방(科榜)을 기다릴 적에 그 마음이 조급하고 동요되더냐?”고 묻기에 나는 “내가 비록 불민하지만 일찍이 율곡 선생의 ‘금세에 선비된 자가 많이 부모의 기대와 가문(家門)의 계책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과업(科業)에 힘쓰게 된다. 그러나 재주를 닦아 그 시기를 기다리면서 득실(得失)을 천명(天命)에 맡길 뿐, 거기에 탐내고 애태워 본심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외어 왔다. 나는 시문(時文)을 익히고 과시(科試)에 응하면서도 전혀 이 말로써 발붙일 자리를 삼아, 조급해지는 뜻이 싹틀 적에는 힘써 억제하여 담담한 경지로 되돌아가게 하였을 뿐이다.”고 대답하였다.
또 손이 “애태우는 마음은 사람마다 있게 마련인데 그대만이 그렇지 않은 것은 어째서 그런가?”고 묻기에, 나는 웃으면서 “나의 체력을 보면 너무 허약하다. 만일 남들처럼 거기에만 애태웠던들 남들보다 먼저 병들고 말았을 것이므로 나는 그 점이 두려워서 감히 그러하지 못하였다. 남들은 모두 체력이 장대하고 건강하므로 비록 날마다 거기에 애태우더라도 병이 나지 않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야 어찌 감히 남들과 같기를 바라겠는가.”고 대답하였다.
손도 웃으면서 “그건 농담이겠지.” 하고는 이어서 “그대는 명예가 널리 퍼지는 것을 싫어하는가?”고 묻기에 “진실과 부합되는 명예도 오히려 두려워해야 하거든 하물며 진실에서 넘는 명예이겠는가?”고 대답하였다. 또 “진실이 있음으로써 명예가 저절로 따라온다면 그대는 받아들이겠는가?”고 묻기에 “사람이 만일 십분의 진실한 재덕(才德)이 있어 명예가 따라온다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혹시 그 명예가 싫다 하여 깊은 산속으로 도망하여 초의(草衣)와 목식(木食)으로 지내면서 사람들과 통하지 않는 자는 곧 은벽함을 구하고 괴이함을 행하는[索隱行怪] 것이지 인정(人情)이 아니며, 또한 방탕하고 태만하고 어리석고 꽉 막혀 명예가 따라오는 것을 싫어하는 자도 인도(人道)가 아니다. 마땅히 성현(聖賢)을 따르고 인륜을 힘쓰고 음사(淫邪)를 막고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며 이이 유유(怡怡愉愉)하고 동동 촉촉(洞洞屬屬)하고 정정 방방(正正方方)하고 전전 긍긍(戰戰兢兢)하면서 일생을 지낼 뿐이다.”고 대답하였다. 또 “그럼 그대는 자신을 어떠한 사람으로 보는가?”고 묻기에 “나는 비록 불민하지만 일찍이 나의 시기하는 마음을 없애고, 나의 온평(溫平)한 기운을 양성하기를 힘쓰려는 그 의사만은 남에게 뒤지기를 부끄러워할 뿐, 명예가 따라오고 따라오지 않는 것은 알아보려는 겨를도 없다. 만일 명예만을 요구한다면 이는 세상을 속이는 것이며 세상을 속이는 자는 실속이 없는 법이다. 장주(莊周)의 말에 ‘명예란 진실의 객(客)이다’고 하였는데, 세상에 어찌 주(主)가 없는 객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고 대답하였다.
12일(경인) 찬 비가 평명(平明)부터 시작하여 저녁까지 주룩주룩 내렸다.
○ ‘애공이 정사를 물으니[哀公問政]’로부터 ‘하늘을 알지 않을 수 없다[不可以不知天]’까지 읽었다.
○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의 말에 “내가 상고하건대 《이아(爾雅)》에 ‘과라(蜾蠃)는 일명 포로(蒲盧)라고 하는데, 허리가 잘록한 벌[蜂]이다’. 하였고 《운회(韻會)》에는 ‘《시경》 주소(註疏)에「과라는 포로인데 포로는 뽕나무벌레의 새끼를 가져다 품어 길러서 제 새끼로 만든다」했다’고 하였고, 정자(程子)는 ‘사람을 효유하는 이가 그 성의를 다하지 않고는 능히 그 말을 감입(感入)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포로를 ‘가르침’에 비유하였으니, 성의로써 교화함을 이름이다’고 하였고, 장하주(章下註)에는《가어(家語)》의 ‘천도(天道)는 생(生)에 빠르고 인도(人道)는 정(政)에 빠르고 지도(地道)는 심는 데[樹]에 빠르다. 대저 정(政)은 포로와 같아 교화를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때문에 정을 하는 데는 사람을 얻는 데 있고 사람을 취택하는 데는 몸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데는 도로써 한다’라는 말을 인용하였으니, 정자의 말은 여기에 기인된 것이다. 포로의 노(盧) 자는 노위(蘆葦)의 노(蘆) 자가 아닌데, 심괄(沈括)이 포위(蒲葦)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혹시 윗대문의 ‘지도는 심는 데에 빠르다’는 말을 인연하여 그렇게 말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자(朱子)가 정자의 말을 버리고 심괄의 말을 취한 데는 반드시 그만한 의의가 있을 테지만, 나는 의심한다.”고 하였다. 내가 포로장(蒲盧章)을 읽던 참이라 지봉의 말을 기재하여 참고에 대비하는 바이다.
13일(신묘) 아침에 흐렸다.
○ 아침에, 서상(西庠.조선시대 4학인 동,서,남,중의 하나)에 들어갔다가 저녁에야 돌아왔다.
14일(임진) 밤에 안개가 끼었다.
○ ‘천하의 공통된 도 다섯 가지[天下之達道五]’로부터 ‘성공하기에 이르러서는 한가지이다[及其成功一也]’까지 읽었다.
○ 《공동자(空同子)》를 상고하면 “가을 구름은 넓게 퍼지고 얇으므로 그 비[雨]가 미세하고, 여름 구름은 뭉쳐져서 솟구치므로 그 비가 거세다. 무릇 기운도 전일(專一)해야만 강하게 되는 것이 상리이다. 요란한 천둥이 사해(四海)를 휩쓸고, 소나기가 팔연(八埏 팔방이 끝나는 곳)을 뒤덮기란 하늘과 땅인들 능할 수 있는 것인가? 인(仁)과 지(知)를 말하는 데는 반드시 용(勇)을 들게 되는데, 용이란 전일해야만 강하게 된다는 뜻이다.”고 하였다. 내가 삼달덕장(三達德章)을 읽던 참이라 이 북지(北地)의 말을 기록하여 참고로 삼는 바이다.
○ 심방차 나갔었다.
15일(계사) 아침과 저녁에 안개가 끼었다.
○ 편안하게 여겨 행하는[安而行之] 자는 처음에서 나중까지 균일하게 원만하여 한 시각도 간단이 없는 것이요, 이롭게 생각하여 행하는[利而行之] 자는 처음에는 정해진 곳이 없다가 다음에야 비로소 착수할 곳을 알고 점차 행하여 가면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것이요, 면강하여 행하는[勉强而行之] 자는 처음에는 힘이 들다가 나중에야 깨닫는 것이니, 큰 역량을 발휘하여 남보다 백 배의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도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아랫장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知恥近乎勇]”는 말로 끝맺었으니, 성인의 말은 참작이 깊어 구차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
○ ‘학을 좋아하는 것은 지에 가깝다[好學近乎知]’에서부터 ‘제후를 회유하는 바이다[懷諸侯也]’까지 읽었다.
○ 대저 세 가지 달덕(達德)에는 다 용(勇) 자가 들어 있지만 생지(生知)와 안행(安行)에는 용에 힘쓰지 않아도 용이 저절로 되는 본래의 천연적인 용이 있으므로 조그만한 흔적도 없으며, 곤지(困知)와 면행(勉行)에는 용에 대해 힘써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으며, 아래 대문의 ‘세 가지 가깝다[三近 학을 좋아함은 지(知)에, 힘써 행함은 인(仁)에, 부끄러움을 앎은 용(勇)에 가깝다 한 것]’는 것은 장구(章句)에 ‘용의 다음이다[勇之次也]’고 말하였는데, 이는 용에 대해 힘쓰기를 간헐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ㆍ인ㆍ용에 가까워지는 때문에 다음이라고 한 것이다. 남과 같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도 용의 일단이다.
삼달덕장(三達德章)을 읽는 데는 모름지기 장구의 분류에서 말한 것과 차등을 두어 말한 것에 유의하여 자세히 궁리하고 원활하게 보아야 모호하지 않게 된다.
16일(갑오) 온 종일 구름이 끼었다 해가 나왔다 하면서 때때로 바람이 불었다.
○ 심방차 나갔었다.
○ ‘몸을 닦으면 도가 이루어진다[修身則道立]’에서부터 ‘행하는 바는 한 가지이다[所以行之者一也]’까지 읽었다.
○ ‘생각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며 의복을 단정히 하여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齊明盛服 非禮不動]’은, 안과 밖으로 존양(存養)하고 성찰(省察)하여 수신(修身)하는 일이 여기에서 더할 수 없는 것이요, 참소와 아부를 배격하지 않고 여색(女色)을 멀리하지 않고 재화(財貨)를 천히 여기지 않고 재덕(才德)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어진이가 오지 않으며, 설령 온다 해도 권면하는 도가 아니어서 옷자락을 뿌리치고 가버릴 것이므로 구경(九經)의 조목에 가장 절실하고 상세한 바로는 몸 닦는 것이 먼저가 되고, 어진이 높이는 것이 그 다음이 되었다. 그런데 옛적 제왕들이 몸은 비록 닦고자 하나 어진이를 높이는 데는 으레 어긋나고야 말므로 ‘어진이를 높인다[尊賢]’는 2자로써 구경 가운데의 추기(樞機)를 삼은 것이다.
‘위태로움을 붙잡는다[持危]’는 말은 위태롭고 망해 가는 나라를 붙잡아 세우는 것이다.
17일(을미) 새벽에 비가 내리고 낮에 바람이 불었다.
○ 여범(汝範.李光錫)이 오늘 진시에 아내를 잃는 슬픔을 당했다는 소식을 오후에 들었다. 여범은 유인(孺人) 정씨(鄭氏)와 함께 나이 20인데 이제 생사의 결별을 당하였으니, 생각할수록 측은하다. 더욱이 그의 가세가 빈한한데 수의(壽衣)와 관곽(棺槨) 등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대강(大江)이 가로막혀 곧장 달려가 위문하지 못하니, 이 어찌 종족간의 정의라 하겠는가?
여범은 기력이 허약하여 언제나 해만 지면 시름시름하면서 정충증(怔忡症. 공연히 가슴이 울렁거리며 불안해지는 증세)을 일으키곤 하였는데, 지금 과연 무사하게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웃 사람들의 슬피 우는 소리만 듣고도 미간을 찌푸린 채 마주 보고 흐느끼면서 눈물이 금방 쏟아질 듯하였는데, 하물며 그 아내를 잃었음에랴?
그러나 여범은 낙이(樂易)하고 개제(愷悌)한 사람이므로 예(禮)로써 몸을 규제하여 그 슬픔을 억제할 줄 안다. 여범을 아는 자는 나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이처럼 무한한 관심이 가는 바이다.
○ ‘무릇 일이 미리 정해지면 이루어진다[凡事豫則立]’에서 ‘굳게 잡는 것이다[固執之者也]’까지 읽었다.
○ “윗사람에게 신임받지 못한다.[不獲乎上]”는 것은 위에 있는 사람에게 쓰이지 못함을 이름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다.[獲乎上]”, “벗에게 미쁘다.[信乎朋友]”, “어버이에게 순한다.[順乎親]”를 연이어 말하다가 갑자기 “자신에 반성함이 성실하지 못하다.[反諸身不誠]”,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하다.[不順乎親]”를 말하였는데, 몸을 성실히 하는 것[誠身]은 이 장의 정화(精華)가 맺힌 곳이므로 “자신에 반성한다.[反諸身]”는 2자를 덧붙인 것이 더욱 힘이 있고 맛이 있어, 다른 문세(文勢)와는 아주 다르다. 이 장의 공부는 가까운 데로부터 미루어 나가야 한다. ‘선을 밝힌다[明善]’에서 ‘백성을 다스린다[治民]’까지가 마치 여섯 개 층계의 운제(雲梯)와 같아, 그 차례가 정연하다.
18일(병신) 물이 마르고 땅이 얼고 열풍(烈風)이 요란하였다.
○ ‘널리 배운다[博學之]’에서 ‘비록 유약해도 반드시 강해진다[雖柔必强]’까지 읽었다.
학(學),문(問),사(思),변(辨),행(行)에 붙인 다섯 개의 지(之) 자는 매우 건중(健重)하여 ‘성지(誠之)’라는 ‘지(之)’ 자와 똑같은 혈맥이다. 이 다섯 가지에 대하여 주자는 “선후는 없고 완급은 있다.[無先後有緩急]”하였는데, 이는 위아래로 통하여 한 곳에만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박(博),심(審),신(愼),명(明),독(篤)에 대해서는 천심(淺深)과 원근(遠近)의 차이가 약간 있다.
○ “두지 않는다.[不措]”는 것은 버려 두지 않음을 이름이니, 이 세 장은 오로지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공부를 삼는 데에 있다. 생지(生知)와 안행(安行)의 경지는 흔한 것이 아니나 학(學),이(利),곤(困),면(勉)을 한다 해서 어느 누가 옳지 않다고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아래에서부터 공부한다는 것이니, 여여숙(呂與叔.呂大臨)의 말로 아울러 반복해서 자세히 뜯어보아야 한다.
19일(정유)
○ ‘성으로 말미암아 밝은 것[自誠明]’에서 ‘천지와 더불어 나란하다[與天地參矣]’까지 읽었다.
○ 유천하지성장(唯天下至誠章)에 여섯 개의 ‘능(能)’ 자는 정세(精細)와 독실(篤實)의 의미가 들어 있고, 세 개의 ‘가이(可以)’ 자는 광대(廣大)와 용이(容易)의 의미가 들어 있으며, ‘찬(贊)’은 참(參)의 장본이 되니, 참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성인의 공용(功用)이 극치에 이르게 된다. 대덕(大德)이 있고, 대위(大位)에 있지 않고는 어느 누가 이에 해당되겠는가?
○ 이 두 장은, 주자의 장구에서 몸을 협흡(浹洽)시킬 수도 있고 마음을 고동시킬 수도 있으니, 아 주자는 성인에 가깝도다!
20일(무술) 아침에는 흐리고, 저녁과 초경(初更)에는 먹구름이 하늘에 덮여 폭우가 세차게 쏟아지면서 북풍까지 겸하였다.
○ ‘그 다음은 곡으로 이룬다[其次致曲]’에서 ‘지성은 신과 같다[至誠如神]’까지 읽었다.
○ 형(形),저(著),명(明)의 차례는 마치 꽃이 피는 것과 똑같다. 봄 기운이 인온(氤氳 기운이 왕성한 모양)하여 생의(生意)가 발동하면 일시에 꼭지[帶]가 생기는 것을 아무도 금제할 수 없는 것은 형(形)이요, 점차 태양을 받고 비[雨]에 자라 꽃술[蕊]이 중심에 자리잡고, 꽃봉오리[葩]가 외부를 감싼 가운데 꽃이 필 듯 말 듯한 것은 저(著)요, 향기가 풍기고 색상이 뚜렷하여 아름답고 난만함이 남김없이 발로된 것은 명(明)이다. 또 염색한 비단이나 동은(銅銀)을 부착한 거울과 같아서, 차분히 따져 보면 이 세 가지의 차례가 분명히 들어 있다.
동(動),변(變),화(化)는 마치 참새가 화하여 조개가 되는 이치와 같다. 9월의 절기가 되어 참새가 저절로 조개로 화하려는 의사가 싹트는 것은 동(動)이요, 그러한 의사를 억누르지 못하고 문득 큰 물 속으로 들어갔을 때 점차 모우(毛羽)를 벗고 7~8분 가량 조개로 화해 가는 기미가 있는 것은 변(變)이요, 이미 모우를 벗고 껍데기를 쓰며 나뭇가지를 하직하고 물 속에 거처하며 날렵하던 동작이 준동(蠢動)으로 되고, 날던 모습이 칩복(蟄伏)으로 되고 전날의 참새였음을 영원히 잊어버리는 것은 화(化)이다. 이 같은 경지는 그 무엇이 주장하는 것일까? 지극한 성[至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선(善)과 불선(不善)은 길(吉)과 불길(不吉)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왕감주(王弇州 감주는 왕세정(王世貞)의 호)가 상중(喪中)에 1백 20수의 운시(韻詩)를 지어 이창명(李滄溟 창명은 명의 학자 이반룡(李攀龍)의 호)을 조상[弔]하였으니, 이것이 옳은 일일까? 이는 한갓 재주만 있었기 때문이다.
강인기(江鄰幾 인기는 송의 학자 강휴복(江休復)의 자)의 《잡지(雜誌 《가우잡지(嘉祐雜誌)》를 말함)》에는 “매성유(梅聖兪 성유는 송의 학자 매요신(梅堯臣)의 자)의 시에
혼자 자모의 상을 모시니 / 獨護慈母喪
눈물이 하수처럼 흐르네 / 淚與河水流
라고 하였는데, 언유 지국(彦猷持國)이 ‘시 짓기를 너무 일찍 서둘렀다’고 기롱했다.” 하였다. 나는, 육아(蓼莪)나 부함(傅咸)이 왕(王)ㆍ하(何) 두 시중(侍中)에게 준 시도 이와 같다고 응수하였다.
상고하건대, 진(晉) 나라 손작(孫綽)의 시서(詩序)에 “상[荼毒]을 만난 뒤를 이어 고르지 못한 추위와 더위가 겹쳐 애호(哀護)를 금치 못하고 시 한 수를 지었다.”고 하였으며, 홍옥보(洪玉甫)는 “노직(魯直 송의 학자 황정견(黃庭堅)의 자)은 모친의 상을 당하여 절대로 시를 짓지 않았다. 노직이 짓지 않은 바는 어버이를 사모하는 시가 아니었기 때문이요, 손 작이 지은 바는 어버이를 사모하는 시였기 때문이다. 매성유의, 시 짓기가 빨랐던 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생각하건대, 시란 운어(韻語)이다. 운이 있으면 성률(聲律)도 따르게 마련인데 상중에 어찌 차마 할 일이겠는가? 매성유ㆍ손작ㆍ부함 등이 어버이를 사모하는 시 이외에도 다른 한만(閑漫)한 시를 지은 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이 어찌 예법을 지킨 선비였던가? 노직은 절대로 시를 짓지 않았다고 칭하였으니 어버이를 사모하는 시도 없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육아(蓼莪)는 꼭 상중에 지었다는 것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가령 상후(喪後)에, 부모를 끝까지 봉양하지 못한 바를 추술(追述)하였다손 치더라도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습속은 고금(古今)이 다른 법이다. 예를 들면 원양(原壤)이 관(棺) 위에 올라가 노래했으니 그 잘못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그가 관 위에 올라갔으니 초상(初喪) 때임이 분명하며, 매성유의 시에 ‘혼자 모친의 상사를 모셨다’고 하였으니, 장사 지내기 이전이므로 시 짓기가 너무 빨랐다고 기롱한 것 같다. 그렇다면 옛날 풍속에는 장사 지낸 뒤 시일이 오래되면 빠르지 않다고 여겨 시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창명(李滄溟) 제문(祭文)에도, “자리를 차리고 조상도 하지 못한 채 상사(喪事)가 있어 그냥 돌아갔다가 이듬해 3월에 이르러 슬픈 심정이 조금 진정되자 비로소 시를 지었다.”고 하였으니, 그 습속이 명대(明代)에 이르러서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호) 선생도, 상중에 시를 지어 화답했다고 하는데, 선배의 일을 감히 논할 수는 없으나 그게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말이 《송강일기(松江日記)》에 실려 있다.
지금 세속에서 고시(古詩)는 비록 짓지 않지만 과시(科詩)에 대해서는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이는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이다. 더욱이 과시는 화조(花鳥) 같은 것만을 읊는 폐습이 너무 심하며, 명제(命題) 역시 태반이 호화(豪華)와 주색(酒色) 가운데서 나오고 있으니, 아, 어찌 차마 할 일인가?
대저 상중에 있는 자는 일종의 죄인(罪人)과 같기 때문에 죄인, 또는 고자(孤子)ㆍ애자(哀子)라 자칭하며, 선왕(先王)의 제도에 삼년복으로 정하였으니 보통 사람과는 크게 다른 것인데, 더러는 담소(談笑)를 거침없이 하고 상복 차림으로 빈객(賓客)들을 초청하여 바둑까지 두면서 조금도 부끄러운 줄을 알지 못하니, 술 마시고 고기 먹는 것은 논할 나위도 없다.
아아, 도학이 밝아진 뒤에야 이같은 습속이 바로잡아질 것이다. 옛적에 자고(子皐)가 원[宰]이 되자 성(成) 땅 사람이 그 형의 복을 입었고 우리나라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호) 선생이 정사를 맡은 지 1년 만에 군졸(軍卒)과 하인배까지도 시묘(侍墓)살이 할 줄 알았으며, 또 제사에는 목주(木主)를 쓰고 무덤 앞에는 돌을 세우게 되었다. 아, 도학이 어찌 하루인들 밝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21일(기해) 저녁에 흐렸다.
○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也]’에서 ‘수시로 활용함이 마땅하다[時措之宜也]’까지 읽었다.
○ 이 장은 평심(平心),하기(下氣)부터 하고 나서 보아야 거의 터득하게 될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胡炳文)의 소주(小註)에 “‘성(誠)이란 물(物)의 자성(自成)하는 바이다’고 한 것은 아래대문의 ‘성은 물의 종시(終始)이다’란 말을 근본하여 물의 자성하는 바를 평범하게 가리켜서 말한 것이요, ‘성은 심(心)으로써 말한 것이다’고 한 것은 아래대문의 ‘성이 아니면 물이 없으므로 군자는 성 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란 말을 근본하여 사람이 자성할 수 있음을 전적으로 가리켜 말한 것이다. 물에 있는 바를 평범하게 가리킨 것은 물의 자성하는 바로써 본(本)을 삼고, 사람의 당연히 행해야 할 바로써 용(用)을 삼아도 옳을 것이요, 사람에 있는 바를 전적으로 가리킨 것은 아래 대문의 장구에 이른 ‘사람의 마음이 불실(不實)함이 없어야 자성할 수 있고 나에게 있는 도도 행하여진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심(心)이 성(誠)으로 본을 삼고 도가 행(行)으로 용을 삼는 데에 무슨 의심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말이 매우 소상하니 평범하게 가리킨 곳과 전적으로 가리킨 곳에 착심해서 보아야 한다.
○ “성은 자신만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誠者非自成己而已]”는 말 이외에도 장구의 “성은 심(心)으로써 말한 것이니 본(本)이다”는 말이 더욱 분명하다.
22일(경자) 아침에 흐렸다 갰다 하더니, 정오에는 음산한 구름이 모여들고 더운 바람이 요란하다가 비가 초저녁까지 내리자 사람들이 모두 답답해 하였고, 나도 머리가 어지러워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 ‘그러므로 지성은 간단이 없다[故至誠無息]’에서 ‘유하고 구하다[悠也久也]’까지 읽었다.
○ 구(久)는 성(誠)의 대업(大業)이므로 이미 “간단이 없으면 구하다[不息則久]”라고도 하고, 유원(悠遠) 또는 유구(悠久)라 하여 한 마디 말로 그치지 않았다. 《역경(易經)》에, 항괘(恒卦)는 손(巽)이 밑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어 강(剛)과 유(柔)가 정하여졌는데, 그 단사(彖辭)에 “천지의 도는 항구(恒久)하여 끊임이 없다” 하였고, 또 “일월(日月)이 하늘을 얻어 능히 오래도록 비추고 사시(四時)가 변화하여 능히 오래도록 세공(歲功)을 이루고 성인이 그 도에 항구하여 천하가 화성(化成)하므로, 그 항구함을 관찰하면 천하 만물의 사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나는 여기에서 성인이 천지와 더불어 체용(體用)이 같음을 엿보았다.
‘물 됨[爲物]’의 물 자는 곧 성(誠)이요, ‘물은 생함[生物]’의 물 자는 만물이며, ‘두 가지로 하지 않는다[不貳]’는 것은 체의 한 가지[體一]이고, ‘헤아리지 못한다[不測]’는 것은 용의 만 가지[用萬]이다.
23일(신축)
○ 심방차 나갔었다.
○ ‘지금 하늘이[今夫天]’에서 ‘순 또한 간단이 없다[純亦不已]’까지 읽었다.
○ 보장(寶藏)이란 금(金),옥(玉),동(銅),철(鐵),단사(丹砂) 등 모든 물 가운데 보배가 될 만한 것으로서 산 속에 저장되어 있음을 말하고, 화재(貨財)란 어(漁),채(採)나 주즙(舟楫) 등으로써 장사할 만한 이익을 이리저리 통상하여 전재(錢財)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신안 진씨(新安陳氏)가 이른바 “문왕의 문된 바는 문왕을 시호(諡號)한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잘 본 것이다.
24일(임인) 흐리고 밤새도록 큰 바람이 불었다.
○ ‘크다[大哉]’에서 ‘이를 이름이다[其此之謂歟]’까지 읽었다.
○ 채정 자리(蔡禎子履 자리는 채정의 자)는 존덕성장(尊德性章)을 논하기를 “일찍이 전주(傳註)에 해석된 광대(廣大) 등 네 구절을 읽고 의심이 나므로 감히 망령된 소견으로써 보충하려 한다. 뜻은 광대하고자 하고 이치를 분석하는 데는 반드시 정미로움에 치중해야 하며, 앎은 고명(高明)하고자 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반드시 중용에 의해야 하며 수시로 옛날 들은 것을 복습하되 매양 새 얻음이 있어야 하고, 돈후(敦厚)하게 하는 것으로써 바탕을 삼되 문채는 예(禮)로써 해야 한다. 대개 광대와 고명은 각기 가리킨 바가 있을 것인데 장구에는, 사의(私意)에 가리지 않는 것으로 광대를 삼고, 사욕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고명을 삼았다. 또한 새 앎과 옛날 들은 것은 다 이치를 궁리하는 일인데, 온(溫) 자를 전환하여 함양(涵養)하는 것으로 삼아 존심(存心) 공부에 소속시켰으며, 사람이 식견이 넓고 성행(性行)이 후한 자는 거의 절차와 문채[節文]에 소홀하기 때문에 예를 숭상하는 것으로 말하였는데 장구에는 “이미 능한 바에 돈독히 하는 것이다[敦篤乎其所已能]”고 말하였으니, 이같은 설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명길(韓鳴吉 명길은 한백겸(韓百謙)의 자)이 이 장을 논하기를 “‘덕성을 높이고 문학을 이른다[尊德性道問學]는 두 구절이 비록 아래 네 구절의 강령이지만 네 구절을 상절(上截)과 하절(下截)로 분류해서 보려고 고집한다면 천착된 소견이다’했으니, 이는 깊이 터득한 말이다.”고 하였다.
이지봉(李芝峯.李睟光)은 그 후면에 쓰기를 “나는 이 대문에 관한 소견이 다 좋다고 본다. 한구암(韓久菴.한백겸)의 ‘상절과 하절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옳은 듯하다. 다만 ‘뜻은 광대하고자 하고 앎은 고명하고자 한다[志欲廣大 識欲高明]’하였는데, 지욕(志欲)과 식욕(識欲) 등의 어휘는 좀 온당하지 못한 듯하다. 나의 소견에는 광대에 힘쓰는 자는 혹 정미로움에 차질이 생기고, 고명에 힘쓰는 자는 혹 중용에서 지나칠까 염려해서이다. 또한 ‘새 앎과 옛날 들은 바는 다 치지(致知)하는 일이므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옳지만, ‘돈후하여 예를 숭상한다[敦厚以崇禮]’는 구절에 대하여, 나는 사람이 반드시 돈후(敦厚)한 기질이 있은 뒤에야 예를 배울 수 있는 것이므로 돈후는 바탕이 되고 예는 문채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돈후이숭례[敦厚以崇禮]’의 ‘이(以)’ 자에 깊은 의미가 있다. 더욱이 이 이 자는 위의 네 개의 이(而) 자와 다르므로 절대 상절과 하절로 분류해서 볼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이같은 대문에 대하여 비록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나의 얕은 소견으로 미칠 바가 아니므로 더 이상 췌언(贅言)을 요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위 두 사람의 설이 대동 소이하나 취택할 만한 곳도 있다. 그러나 차라리 장구의 뜻을 자세히 보고 또 소주에 운봉 호씨(雲峯胡氏)의 말을 추려내어 연구하면서 주자(朱子)가 참정(參訂)한 바를 소원(溯源)해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25일(계묘) 가끔 흐리고 온 종일 큰 바람이 불다가 저녁에 겨우 멎었다.
○ ‘공자가, 어리석으면서 자용하기를 좋아한다[子曰 愚而好自用]’에서 ‘일찍부터 명예를 천하에 두었다[蚤有譽於天下者也]’까지 읽었다.
○《주례(周禮)》는 주공(周公)이 제정한 것이다. 이미 ‘천자가 아니면 예를 의논하지 못하고, 제도를 제정하지 못하고, 문을 고정하지 못한다.[非天子不議禮不制度不考文]’고 하였으니, 주공이 비록 주의 총재(冢宰)나 천자의 지위는 아닌데 어떻게 주의 예를 제정할 수 있었던가?
그러나, 주공은 성인의 덕으로 문왕,무왕의 뜻과 사업을 계술(繼述)하였으니, 주의 전장(典章),문물(文物)을 빛낸 것은 주공 자신이 오로지 한 바가 아니다. 그 당시에 만일 주공이 없었다면 무왕이 반드시 손수 이를 담당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주 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천자가 성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리 공자 같은 덕이 있었어도 지위가 그 지위가 아닌 만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제(時制)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리에 당연한 일이었다.
○ 증거가 없고 지위가 높지 못하면 백성이 믿고 따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성이란 온 천하를 들어서 한 말이니, 어찌 중대하지 않은가? 과연 인심이 그렇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며 재앙이 그 몸에 미치는 것도 마치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빠르게 마련이다.
군자의 도 여섯 가지[君子之道六事]에 대하여는, 덕이 있고 지위가 있어 정사가 다스려지고 풍속이 따름으로써 진실 무망(眞實無妄)하고 만전 불패(萬全不敗)하게 되는 것이니, 도가 천인(天人)의 즈음에 융화된 바요, “세대마다 법도가 되어 먼 데 있으면 기대하고 가까이 있으면 싫어하지 않는다[其爲世法則遠有望近不厭]”에 대하여는 그 광휘(光輝)의 밖으로 발양한 바가 아무리 그윽한 곳도 다 비추게 되는 것이다.
○ 공자와 자사도 모두, 은연중 때를 못 만난 탄식은 했으나, 조그마한 분한(憤恨)과 격동도 나타내지 않았으니, 대성(大聖)과 대현(大賢)의 옹용(雍容)한 기상이 이러하다.
26일(갑진) 아침과 저녁에 안개가 끼고 가끔 흐렸다 갰다 하였다.
○ ‘중니는 요순을 조술하였다[仲尼祖述堯舜]’에서 ‘그러므로 하늘을 짝하였다[故曰配天]’까지 읽었다.
○ 부(覆)란 위에서 아래를 덮어 준다는 뜻이요, 도(幬)란 사방을 두루한다는 뜻이다.
○ ‘하늘과 같다[如天]’는 것은 극히 높다는 뜻이니 높은 뒤에야 두루하고 또 넓게 되며, ‘못과 같다[如淵]’는 것은 극히 깊다는 뜻이니 깊은 뒤에야 조용하고 또 통달하게 된다. 연천(淵泉)의 연(淵) 자와 여연(如淵)의 연 자는 그 의미가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차분히 궁구해야 터득할 것이다.
○ 사람의 힘으로써 통하는 바는 주(舟),거(車)뿐이 아니다. 주거로써 통하지 못할 곳은 현도(懸度)와 같은 유가 이것이다. 이 장에는 가까운 데로부터 먼 데까지 이른다는 뜻이 분명하다. 회회국(回回國)은 중국에서 수만 리 밖에 있다. 그 나라 사람의 시에,
중들이 말하는 불자는 서역에 있고 / 僧言佛子在西空
도사들이 말하는 봉래산은 해동에 있다네 / 道說蓬萊在海東
오직 공문의 진실한 일만이 / 惟有孔門眞實事
눈 앞에 날마다 봄바람이로세 / 眼前無日不春風 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27일(을사)
○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이어야[唯天下至誠]’에서 ‘어느 누가 능히 알겠는가[其孰能知之]’까지 읽었다.
○ ‘지극한 성이다[至聖]’, ‘지극한 성이다[至誠]’, ‘하늘과 같다[如天]’, ‘못과 같다[如淵]’, ‘그 하늘이다[其天]’, ‘그 못이다[其淵]’, ‘혈기 있는 자[有血氣者]’, ‘높이고 친애한다[尊親]’, ‘천덕을 통달한 이라야 능히 안다[達天德者能知]’는 말은 윗장과 아랫장에 서로 대응이 되어 있다.
지봉(芝峯)은 “‘어느 누가 알겠는가[孰能知之]’의 지(知) 자는 위의 ‘천지의 화육을 안다[知天地之化育]’는 구절을 이어서 말한 것 같은데, 장구에 정씨(鄭氏.鄭玄를 말함)의 설은 너무 평범하게 말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를 곡견(曲見)이라고 본다. 너무 신기(新奇)한 것을 힘쓰고 너무 정미한 것을 분석하다가는 도리어 정상을 잃어, 이같은 폐단이 생기게 되는 것이므로 글 읽는 이는 반드시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28일(병오) 밤에 안개가 끼었다.
○ 《시경》의 ‘비단옷을 입고 위에 홑옷을 걸친다[衣錦尙絅]’로부터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不言而信]’까지 읽었다.
○ 암연(闇然)이란 비록 그윽하고 담담하지만 장원(長遠)의 뜻이 있고, 적연(的然)이란 비록 불쑥하고 우뚝하지만 천약(淺弱)의 뜻이 있다. 이 장 주자의 소주에 “담담한 것에 유의하면 싫어하지 않게 된다.[淡則不厭]”의 불(不) 자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 “군자가 미치지 못할 바이다.[君子之所不可及]”란 말은 근독(謹獨)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29일(정미) 구름이 끼었다 해가 나왔다 하여 날씨가 맑지 못하였다.
○ 아침에 서상(西庠)에 들어갔다가 밤이 되어 돌아왔다.
11월 1일(무신)
○ 《시경》의 ‘나아가 이르게 하는데 말이 없다[奏假無言]’에서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야 지극하다[無聲無臭至矣]’까지 읽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