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秀才) 성생(成生.성아무개)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역려(逆旅.여관)에서였다. 나이도 무척 어린 사람이 용모를 매우 단정하게 갖추고 공손하게 몸을 낮춰 사양하면서 연소자로서의 예법을 깍듯이 지키는 것을 보고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결과 그가 글을 읽고 문사(文辭)를 익혔다는 것과 향학열(向學熱)이 매우 독실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당세(當世)의 현사(賢士)로서 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사모하여 교제하기를 원한 끝에 현사와 장자(長者)들로부터 꽤나 허여(許與)를 받기도 하였으며, 나에 대해서도 불초(不肖)한 줄을 모르고서 만나 보기를 원한 지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조정에서 물러나 전야(田野)에 몸을 숨긴 뒤로는, 사방의 현사들과 교제할 수 없게 되었음은 물론이요, 평소 가까이 지내던 붕우들마저 모두 뿔뿔이 흩어진 채 소식을 통할 수 없었으므로, 서로 강습(講習)을 하면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유익함을 전혀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후생(後生) 가운데 자질이 아름답고 학문에 뜻을 둔 자를 얻어서 그와 함께 이 도(道)를 강습하여 밝혀 보려고 생각하였는데, 동네에 자질이 아름다운 자는 드물기만 하였고, 또 간혹 그런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이 명리(名利)를 좇는 세속의 풍조를 따르기만 할 뿐이요, 더 이상 학문에 관심을 둔 자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성생(成生)과 같은 경우는 내 생각에 자질이 아름답고 학문에 뜻을 둔 자에 해당된다고 여겨지기에 내가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나에게 모두 네 차례나 글을 보내면서 곧바로 만나 볼 수 없는 것을 매번 탄식하곤 하였으니, 이는 나에 대한 뜻이 또한 얕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글을 보내어 십객헌(十客軒)이라고 하는 곳에 대한 기문(記文)을 요청하였다. 이는 그가 남양(南陽)의 치소(治所)에서 서쪽으로 몇 리쯤 떨어진 곳에 하나의 언덕을 얻어 노닐며 휴식하는 장소로 삼은 뒤에 소나무ㆍ국화ㆍ매화ㆍ대나무ㆍ모란(牡丹)ㆍ부용(芙蓉) 등 10종의 식물을 그 앞에다 심어 놓고는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었다.
내가 생각건대, 그는 어린 나이에 예학(藝學)에 노력하고 있는 만큼 지금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과 이름을 다투면 자연히 뭇 선비들을 능가하여 명성을 거두고 좋은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 그가 거처를 마련한 것을 보면 경사(京師.서울)와 같은 도회지의 시조(市朝) 옆이 아니라 바로 궁벽한 바다의 옆이요, 또 도성의 인사들을 좇아 벗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그저 수목(樹木)을 취하여 손님으로 대하고 있으니, 이는 그의 마음이 명성과 이욕(利欲)에서 벗어나 세상을 피해 홀로 살고 싶어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여겨졌다. 이는 참으로 기릴 만한 일이 될 수 있겠기에, 내가 이를 통해서 그가 옳은 신념의 소유자라고 하는 사실을 더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령 거실(居室)을 단장하여 화목(花木)들을 모아 놓고 스스로 즐기는 일로 말하면, 그야말로 한가롭게 노니는 공자(公子)들이나 세상에서 힘을 지닌 호사(豪士)들이 대부분 행하는 일이요, 학자가 급하게 여길 일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대개 선비가 농사일을 편하게 여기고 은자의 삶을 즐기는 것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급급(汲汲)하게 구하는 것이 정말로 있기 때문에, 사체(四體)를 편안하게 하거나 이목(耳目)을 즐겁게 할 겨를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사(賢士)의 거처를 보면, 일반적으로 비바람을 가리지도 못하거나 사람이 파묻힐 정도로 잡초가 우거져 있곤 하였다. 예컨대 안씨(顔氏)의 아들은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一簞食一瓢飮]로 생활하였고, 증삼(曾參)은 노랫소리가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듯하였으니, 이들이 널찍한 정원에다 대나무 등을 심어 놓고 즐길 겨를이 언제 있었겠는가.
성생(成生)은 세상 사람들이 추종하는 것을 급선무로 여기지 않고서, 초연히 외물(外物)의 밖으로 멀리 벗어날 수 있었으니, 그러한 뜻이야말로 어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하지만 여기에서 그쳐서는 참으로 안 될 것이요, 다시 옛사람이 힘썼던 일을 당연히 힘써야 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기화이초(奇花異草)가 뒤섞여 줄지어 서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엿볼 틈이 없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화죽(花竹)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내가 보지 못하였고 또 굳이 언급할 것도 없겠기에, 서로 교제하게 된 사연과 그의 뜻이 가상한 점만을 기록하였으며, 이와 함께 당연히 힘써야 할 일을 거론하여 노력하도록 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