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臣)이 병중에 엎드려 요동에서 온 자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치며 한탄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리를 잃어서 난리를 당할 만한 연유가 별로 없었고, 시종 중국을 위하여 의리를 지키다가 이 지경에 이른 데 불과하니, 이는 실로 천지신명이 임하여 보는 바입니다. 다만 근자의 인정이 응대(應對)와 사명(辭命)하는 사이에서 사실에 근거하여 바른말을 명백하고 통쾌하게 하지 못하고, 언제나 숨기고 엄폐하려 하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말을 하지 못하여 우리나라 본래의 심정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우리 조정에 대하여 당초부터 칭찬하여 권면하며 불쌍하게 여기는 뜻이 없었고 도리어 허물을 꾸짖는 말이 있게 되었으니, 진실로 가슴이 아픕니다.
또 듣자니, 중국 조정에서 장차 왜어(倭語) 아는 사람을 직접 평양에 보내어 왜놈과 상대하여 그 연유를 묻는다고 하니, 이 또한 무슨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일 간사한 무리가 교묘하게 거짓말을 꾸며 우리에게 불측한 말을 덮어씌워 이간하는 계책으로 삼는다면, 중국 사신들이 반드시 충신(忠信)스럽고 먼 앞날을 염려하는 사람만이 아닐진대 어쩌다가 달콤한 말과 많은 뇌물에 동요되어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아래로 왜적에게 핍박을 당하고 위로 중국 조정에 밝힐 수 없으니 그 낭패됨은 더욱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천하의 모든 일은 시세(時勢)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시세가 가 버린 뒤는 일마다 막히는 법인데, 하물며 다른 나라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근일 중국에서 우리를 의심하는 것은 한가지만이 아닙니다. 변란의 보고가 늦음이 그 첫째이고, 일찍 청병(請兵)하지 않음이 그 둘째며, 중국 사람의 정탐꾼을 접대하지 아니하여 그들로 하여금 도로에서 굶주리고 곤경에 빠지게 함이 그 셋째이고, 벌써 구원병을 청해 놓고도 군량이 떨어졌다고 말함이 그 넷째이며, 중국 사람이 우리에게 향도(嚮導)할 사람을 청하여도 그때에 한 사람의 장교나 병사가 눈앞에 서 있지 아니함이 그 다섯째입니다. 예로부터 비록 위태하고 어려움이 극도에 달했다 하더라도 승여(乘輿)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호위하는 군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텅 비어 한 사람도 없으니, 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 평소처럼 편안함이 그 여섯째이며, 국가가 장차 위태하여 망하려 한다면 반드시 옷소매를 휘두르며 피눈물을 머금고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위급한 데로 달려 나가는 신하가 있는 법인데도 일시의 기상이 느리고 느긋하여 응대와 수작이 대개 제때보다 늦음이 일곱째입니다. 이와 같으니 어찌 명 나라 사람의 의심을 일으켜 그 가책(呵責)이 이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이 자문의 회답은 관계되는 바가 가볍지 아니하여 범상한 일과 같이 취급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당해 관청을 시켜 즉시 신속히 보고하여 통렬하게 진언하여 명백하게 할 뿐입니다.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극도로 졸렬하여 아는 것이 없으나, 전대(前代)의 역사를 두루 보건대 무릇 나라의 누림이 장원한 국가치고 중도에 쇠하였다가 다시 떨치고 일어나지 아니한 예가 없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사랑이 깊으셨고 은택이 두터워 종묘사직의 영장(靈長)이니, 어찌 한 번 미친 왜구에게 당하였다 해서 끝내 도모할 수 없는 데 이르겠습니까? 지금 용렬한 사람들의 얕은 소견은 국가를 위하여 장구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한갓 적병이 날카롭다는 말만 듣고 국사를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내버려 두고,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 진작하려는 기상은 없는 채 우물쭈물하며 구차하게 근근이 시일만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 군대를 청해 놓고도 모든 일을 조치하지 않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니,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합니다.
중국 조정에서 반사(頒賜)한 은냥은 호군(犒軍.군대를 위로함)을 하고자 함인데, 힘써 싸운 병사와 모집에 응해 나온 병사들은 조금도 은혜를 입지 못하고, 신과 같이 죄는 있고 공이 없는 자가 도리어 중한 상을 받았습니다. 이 한 가지 일만 들어도 어찌 군사들의 마음을 해체시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의 구구한 소원은, 오직 성상의 마음은 쇠함을 일으키고 난을 평정할 것을 굳게 정하시고, 채찍으로 여러 신하를 몰아 조금이라도 게으른 기상이 없게 하시며, 상과 벌을 거듭 밝혀 사기를 진작하시고, 흩어진 군대를 불러 모으소서. 그리고 또 중국의 장수들과도 통렬하게 이해를 말하여 진취(進取)할 규약을 정하여 피차에 협력하여 죽음에서 삶을 구한 뒤에야 오늘의 일을 거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누의(螻蟻.땅강아지와 개미,즉 작은 힘을 비유함)의 정성스러운 충정을 이기지 못하여 신음하면서 글을 짓자니 말의 순서가 없으니, 황공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임진년(1592) 6월 의주(義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