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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난후시고 뒤에 씀[書亂後詩稿後] – 유성룡/서애선생문집18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6.06.14|조회수32 목록 댓글 0

 

나는 시를 잘 지을 줄 모르고 다만 시의 뜻을 조금 알 뿐이다. 대체로 시의 좋고 나쁨은 취지의 높고 낮음에 있지 말의 공교로움[工]과 졸렬한 데[拙)에 있지 않다. 비유하건대, 대갱(大羹)과 현주(玄酒)가 무미(無味)한 가운데 지극한 맛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한꺼번에 다섯 가지 맛을 타면 입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나, 결국 어느 한쪽이 이기게 된다.

옛사람은 도연명(陶淵明)과 위응물(韋應物)을 시가(詩家)의 정통으로 삼았다. 자후(子厚.유종원) 같은 이는 비록 담백하고 고원하지마는 단지 수사가 너무 지나쳤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나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가장 좋아한다. 그 나머지는 대체로 미친 듯이 괴이하고 노하여 꾸짖으며 반드르르하여 화려한 말일 뿐이고 시의 뜻은 하나도 없다. 이는 아는 사람과는 말을 할 수 있어도 속인(俗人)과는 말하기 어려우니, 오로지 마음을 바로잡고 성품을 수양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 공자는 사무사(思無邪) 세 글자로 시삼백(詩三百)의 뜻을 개괄하였다. 아, 그 뜻이 멀기도 하다. 나 같은 사람은 생각이 이미 황잡(荒雜)하므로 그 말에 드러나는 것이 이러하니, 부끄럽고 두려울 뿐이다.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의 병통을 기록하여 나를 알아주는 군자에게 약석(藥石)을 구하는 것이니, 보는 이는 용서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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