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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명공사한첩(名公詞翰帖) 발문 – 박세당/서계집8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6.06.23|조회수31 목록 댓글 0

 

「명공사한(名公詞翰)」은 두 개의 첩(帖)으로 되어 있다. 그 인물을 헤아리면 모두 47명이요, 그 연대를 아우르면 거의 4, 5백 년이다. 대체로 모두 사방 먼 곳에서 벼슬하며 지은 시(詩)로 벽에 써 둔 것들이다. 이 때문에 시의 내용에는 남북에 따른 풍속의 구별이 있고 원근에 따른 곡조의 차이가 있으며, 술잔을 부딪친 기쁨이 있고 풍악을 즐긴 오락이 있으며, 나그네의 수심(愁心)과 행려(行旅)의 노고가 있고, 산수를 구경한 흥취가 있고 지난날을 추억하며 사물을 보고 감회를 일으킨 슬픔이 있으며, 산천(山川)ㆍ초목(草木)ㆍ풍운(風雲)ㆍ우설(雨雪)ㆍ화조(花鳥)ㆍ연월(煙月)ㆍ한서(寒暑)ㆍ음청(陰晴)ㆍ조모(朝暮)ㆍ사시(四時)에서 느낀 점이 들어 있다. 그리고 사람이 다르고 장소가 달라 시사(詩詞)에 교졸(巧拙)이 있고 글씨에 이둔(利鈍)이 있어 이 몇 가지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 여기에서 인사(人事)의 변화를 살피고 물정(物情)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공자(孔子)가 시(詩)를 중시한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흥얼흥얼 읊조리며 먹물을 듬뿍 찍어 일시의 회포를 펴고 갖가지 의사를 담을 적에, 심력을 다해 표현하고 필력을 다해 구사한 것이 마치 조물주가 시킨 양 자연스러운 점이 있다. 따라서 스스로 교졸과 이둔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록 후세 사람들이 이를 보더라도 끝내 누가 교(巧)한지 누가 졸(拙)한지 누가 이(利)한지 둔(鈍)한지 알지 못하고, 단지 좋아하여 잠시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어찌 책상 위의 좋은 완상거리가 아니겠는가.

남생(南生.남학명)이 이 첩(帖)을 가지고 와 나에게 보여 주며 발문(跋文)을 지어 주기를 부탁한 지가 이미 몇 해가 흘렀는데, 우환이 겹치고 일이 많아 여태껏 그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막바지에 눈이 내려 꼼짝 못한 채 쓸쓸히 등불 아래 있다가 우연히 생각나서 애오라지 이를 쓰는 바이다. 신미년(1691) 12월 20일 서계병수(西溪病叟)는 발문을 쓰다.

 

註: 공자(孔子)가 시를 중시한 바는 《논어》 양화(陽貨)에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아니하느냐. 시는 뜻을 일으킬 수 있으며, 득실(得失)을 살필 수 있으며, 무리를 지을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으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게 하며,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라고 한 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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