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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마산 월영대 유사(月影臺 遺事)

작성자허현|작성시간14.05.30|조회수270 목록 댓글 1

 

1100여 년전 가야산으로 향하던 최치원 선생이 머물렀다는 월영대(月影臺)는 현재 마산합포구 (월영광장 로터리에 가까운) 해운동 8-4번지에 있었다(사진속 붉은 원). 여러 선현(先賢)들이 남긴 월영대 관련 시문(詩文) 몇을 들면 다음과 같다.

이밖에 옛날 월영대를 노래한 시(詩)는 조위,김극성,정사룡,유도원,정유길,황준량,조임도,신몽삼,이만부,손기양,신지제,조형도,최기남,정기안등 제현(諸賢)들의 것이 “韓國文集叢刊”에 실려 있다.

월영대(月影臺) - 정지상(鄭知常)/여지승람

아득히 푸른 물결 위에 우뚝 솟은 바위 / 碧波浩渺石崔嵬

그중에 봉래 학사님 노닐던 누대 있네 / 中有蓬萊學士臺

단 옆에 소나무 늙어 가고 잡초만 무성한데 / 松老壇邊荒草合

하늘 끝 구름 나직하니 조각배 떠오는 듯 / 雲低天末片帆來

백년의 문아 뒤에 나온 새로운 시구요 / 百年文雅新詩句

만리의 강산 위에 한 잔의 술이로세 / 萬里江山一酒桮

돌아보면 계림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 回首雞林人不見

달빛만 공연히 해문을 비치며 배회하네 / 月華空照海門廻  

 

월영대(月影臺) - 채홍철(蔡洪哲)/동문선14권

문장의 지닌 벼슬이 갈수록 으쓱해서 / 文章習氣轉崔嵬

문득 최후를 회상하여 한 번 대에 올랐네 / 忽憶崔侯一上臺

풍월은 황학 따라 가지 않았구나 / 風月不隨黃鶴去

연파는 길이 백구를 보내 오네 / 煙波相逐白鷗來

비 개자 산빛이 난간에 나직이 짙고 / 雨晴山色濃低檻

봄 늦어 송화가 술잔에 날려드네 / 春盡松花亂入杯

진세를 등진 거문고의 뜻이 있으니 / 更有琴心隔塵土

일후에 비ㆍ구름과 함께 좋이 다시 찾으리 / 他時好與雨雲迴

 

월영대(月影臺) - 서거정(徐居正)/속동문선4권

월영대 앞에 달은 길게 있건만 / 月影臺前月長在

월영대 위에 사람은 이미 갔네 / 月影臺上人已去

고운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뒤 / 孤雲騎鯨飛上天

흰 구름만 아득하여 찾을 곳이 없구나 / 白雲渺渺尋無處

고운이여, 고운이여, 당신은 진정 유선 / 孤雲孤雲眞儒仙

천하 사해에 명성을 전하였네 / 天下四海聲名傳

고변 막하에 손들이 많건마는 / 高駢幕下客如織

토황소격으로 재기를 뽐내었고 / 才氣穎脫黃巢檄

고운 학사가 송별시에 일렀으되 / 孤雲學士詩告別

문장이 중화국을 감동하였다고 / 文章感動中華國

본국에 돌아오니 시운이 기구하여 / 東還時運何崎嶇

계림의 황엽이 차게 우수수 했것다 / 雞林黃葉寒颼颼

영웅이 실의하니 이를 어찌하리 / 英雄失志知何爲

여생을 길이 상산사호와 짝하여 / 永與綺皓相追隨

가야산 중의 여울 속에 숨으락 / 伽倻山中藏鳴湍

해운대 위에 피리불며 난새를 타락 / 海雲臺上騎笙鸞

강남의 산수를 다 제것으로 만드니 / 江南山水牢寵畢

강남의 풍월이 한가한 날 없었네 / 江南風月無閑日

고운이 한 번 가고 아니 돌아온 뒤 / 一自孤雲去不還

만고에 그대로 있는 건 오직 강산뿐 / 萬古自如唯江山

지금 사람 부질없이 고운을 말하나 / 今人空自說孤雲

몇 사람이 고운의 무덤을 보았는가 / 幾人得見孤雲墳

날아 올라가 상계의 신선이 된 뒤 / 飛昇已作上界眞

상전이 벽해되어 지금에 천년 / 桑田滄海今千春

내가 와 술을 들어 서풍에 제하며 / 我來擧酒酹西風

고운을 불러다 함께 한 번 웃고자 / 欲喚孤雲一笑同

짧은 비석을 어루만지며 석양에 섰노라니 / 摩挲短碣立斜陽

고운은 오지 않고 부질없이 애만 끊이네 / 孤雲不來空斷腸

 

주포(珠浦) 월영대(月影臺) - 주세붕(周世鵬)/竹溪志

바닷가 층대는 경치 가장 기이한 곳 / 海上層臺景最奇

물결에 비치는 달은 몇 번이나 차고 이지러졌을까 / 照波明月幾盈虧

꼭 최고운의 시 다시 읊을 것이 없으니 / 不須更詠孤雲句

고금 훌륭한 인재 각기 한 때인 것을 / 今古賢才各一時

 

월영대(月影臺) - 이황(李滉)/퇴계문집1권

늙은 나무 기이한 바위 푸른 바닷가 / 老樹奇巖碧海堧

고운이 노닌 자취 모두 연기 되고 말아 / 孤雲遊跡總成烟

이제 다만 높은 대에 달만이 머물러서 / 只今唯有高臺月

그 정신 담아내어 내게 전해 주누나 / 留得精神向我傳

 

월영대(月影臺) - 이식(李植)/澤堂集

협곡의 물 쏟아져 곧장 대해(大海)로 / 峽拆輸溟漲

거울 같은 물속에 천 산의 봉우리 담겨 있네 / 千峯鏡裏來

고운이 머물던 곳 찾을 길 없고 / 孤雲無處所

누대의 밝은 달만 예전처럼 비춰 주네 / 明月只亭臺

멀고 먼 그 옛날 신선은 가셨지만 / 劫盡神仙死

온 천하에 전해지는 그분의 명성 / 名垂宇宙開

평소 남기신 글 사모하여 왔는지라 / 平生慕遺響

자취 어루만지며 서성이노라 / 撫跡一徘徊

 

월영대기(月影臺記) - 허목(許穆)/미수기언28권

월영대는 창원부(昌原府) 관아에서 서쪽으로 30리 지점 합포(合浦)의 옛 보루(堡壘) 옆에 있는데, 망망대해를 마주하여 서쪽 언덕은 바다에 막혀 있고 동쪽으로는 웅산(熊山. 진해 불모산 옆에 있는산)을 바라보고 있다. 매월 기망(旣望. 음력16일)의 초저녁에 밀물이 들어올 때 월영대에 올라 달그림자를 구경하니, 달이 바다에서 떠올라 산에 가려 그림자를 이룬다. 달그림자는 바다에 있다가 달이 97억 3만 8천 척(尺) 남짓 올라가 극에 달하여 달이 산을 벗어나면 바다에 비친 그림자가 없어진다. 내가 일찍이 동해 밖 수평선에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달이 뜰 때에 그림자가 없었고 바다 물결이 모두 밝아 이곳의 경치와 달랐으며 형상도 모두 기이하였다.

신라의 역사를 보니 진성여왕(眞聖女王) 때 최치원(崔致遠)이 처음에 당 희종(唐僖宗)을 섬기다가 천하가 혼란해질 것을 알고 당나라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왔는데, 신라 역시 정국이 나빠져 마침내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였다. 이에 닭을 잡고 오리를 친다(先操鷄後搏鴨. 왕건이 먼저 신라를 정복하고 뒤에 압록강을 취하게 됨을 예언)는 말이 있었고, 삼국사기 최치원전(崔致遠傳)에 최치원이 월영대에서 노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창원 지방에 전해지는 최학사(崔學士)의 고사를 말한 야담이 있는데, 모두 괴이하고 황당하여 믿을 것이 못 된다. 또 창원의 풍속은 음사(淫祀)를 숭상하여 월영대 위에서 무당들이 날마다 북을 치고 종잇조각을 걸어 놓고서 기도드리고 제사하는데, 때때로 신령한 효험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 귀퉁이라서 입증할 만한 문헌이 없다. 그 옆 바닷가에는 고운대(孤雲臺)가 있는데 후세의 호사가(好事家)들이 이렇게 이름 붙였을 것이다.

註: 미수는 47세때에 월영대를 찿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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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8.17 이곳의 옛지명은 마산(馬山),합포(合浦),주포(珠浦)로 불려졌으며 월영대가 있었던 동네는 최치원 선생의 호를 따서 해운동, 혹은 월영대를 따서 월영동이며 도로명칭도 월영이 들어간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바다가 바로 바라보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바다와 약 1km가량 떨어진 육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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