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동으로 중을 찾아가다[紫洞尋僧]
돌 곁 맑고 얕은 물을 건너 / 傍石過淸淺
수풀을 뚫고 산에 올라 / 穿林上翠微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다시 중의 집을 묻겠나 / 逢人何更問僧扉
오시의 불공 소리가 안개 날리는 데서 울려 나온다 / 午梵出煙霏
풀이슬이 짚신 적시고 / 草露霑芒屨
송화 가루가 갈포 옷에 점을 찍었다 / 松花點葛衣
귀밑머리 하얘가지고 선탑에서 세상일 잊고 앉아 있는데 / 鬢絲禪榻坐忘機
산새는 마구 돌아가길 재촉한다 / 山鳥謾催歸
청교역에서 객을 전송하다[靑郊送客]
꽃다운 풀 나 있는 성 동쪽의 길과 / 芳草城東路
성긴 소나무들 서 있는 들 밖의 언덕 / 疏松野外坡
봄 바람 불면 이곳에선 이별이 많아져서 / 春風是處別離多
전송연 장막에는 귀인의 말 모여든다 / 祖帳簇鳴珂
마을 따뜻한데 닭이 집에서 소리치고 / 村暖鷄呼屋
비 갠 모래밭에 제비가 물결 스쳐 난다 / 沙晴燕掠波
헤어지는 마당에 말을 세우고 다시 머무적거리는데 / 臨分立馬更婆娑
한 가락 위성의 노래 들려온다 / 一曲渭城歌
북산의 안개비[北山煙雨]
산골짜기에 안개 움직이고 / 萬壑煙光動
많은 수풀에 비기운 돌고 있다 / 千林雨氣通
오관산 서쪽 언저리와 구룡산 동쪽은 / 五冠西畔九龍東
수묵화의 옛 병풍이다 / 水墨古屛風
바위의 나무에는 짙푸르름 엉겨 있고 / 巖樹濃凝翠
시내의 꽃은 어지럽게 붉은 빛 흘려보낸다 / 溪花亂泛紅
사라지는 무지개와 낙조 사이에 / 斷虹殘照有無中
한 마리 새가 먼 하늘로 사라져 간다 / 一鳥沒長空
서강의 눈보라[西江風雪]
바다를 지나가니 차가운 바람 세차고 / 過海風凄緊
구름에 잇닿아 눈이 까마득하다 / 連雲雪杳茫
지는 꽃과 나부끼는 버들솜 강 마을에 가득하여 / 落花飄絮滿江鄕
몰래 한 봄의 미친 가을 드러내 본다 / 偸放一春狂
어촌 장터는 문 여는 것 이르고 / 漁市開門早
돛배 포구에 들어가느라 바쁘다 / 征帆入浦忙
술집은 어디이길래 관현 가락 목메어 / 酒樓何處咽絲篁
맹 양양을 시름에 시달리게 하는가 / 愁殺孟襄陽
백악의 비 갠 구름[白岳晴雲]
창포와 살구꽃은 봄에 피었고 / 菖杏春風後
초가집은 들판 물가에 있다 / 茅茨野水頭
비 갠 구름 가볍게 날고 수풀 언덕에 안개 덮였는데 / 晴雲弄色靄林丘
비 올 기색이 가시지를 못한다 / 雨意未能休
경기 고을엔 백성들 부세 없고 / 京縣民無賦
들판의 밭엔 농사가 풍년이라 / 郊田歲有秋
내일 아침엔 가서 오이 심은 동릉후(東陵侯)를 배우고 / 明朝去學種瓜侯
일신은 별장에 은거하겠다 / 身事寄菟裘
황교의 저녁놀[黃橋晩照]
숨었다 보였다 하며 시냇물 돌아가고 / 隱見溪流轉
가로 세로 들판의 밭두둑 나뉘어 있다 / 縱橫野壟分
수풀 너머의 사람 말소리 멀리서 들을 만하고 / 隔林人語遠堪聞
마을의 오솔길 푸르기가 치마 같다 / 村逕綠如裙
솔개는 오공산(蜈蚣山) 나무에 앉고 / 鳶集蜈山樹
까마귀는 곡령 구름 속으로 날아든다 / 鴉投鵠嶺雲
오는 소 가는 말 다시 번잡해지자 / 來牛去馬更紛紛
성곽에는 아침해 돋는 듯하다 / 城郭日初曛
장단의 석벽[長湍石壁]
물에는 석벽 솟구치고 / 揷水雲根聳
공중에 검은 절벽 펼쳐져 있다 / 橫空黛壁開
물고기와 용들이 모퉁이에서 회전하고 / 魚龍吹浪轉隅隈
초록이 백리토록 덮여 있다 / 百里綠徘徊
달이 잠기니 파리옥의 빛이고 / 月浸玻瓈色
꽃이 떨어지니 수비단 무더기라 / 花分錦繡堆
그림배 술을 싣고 관현 가락 재촉하여 / 畫船載酒管絃催
하루에 천 바퀴나 돌아다닌다 / 一日繞千廻
박연폭포(朴淵瀑布)
해가 비추니 뭇 산봉우리가 빼어나고 / 日照群峯秀
구름이 끼어 있으니 한 골짜기가 깊다 / 雲蒸一洞深
사람들 말이 옥련이 옛적에 왔었다고 하거니와 / 人言玉輦昔登臨
반석이 소 복판에 있다 / 盤石在潭心
흰 비단이 천 자나 날아 오르고 / 白練飛千尺
청동 같은 절벽은 만 발이나 내려가 있다 / 靑銅徹萬尋
달이 밝으면 신선 태운 학이 먼 봉우리에 내려와서 / 月明笙鶴下遙岑
물 속의 용이 울려내는 소리를 불러 보낸다 / 吹送水龍吟
자하동으로 중을 찾아가다[紫洞尋僧]
늙어도 몸 아직 건강한 것 기쁘며 / 老喜身猶健
한가하여도 흥 더욱 더해감 알게 된다 / 閑知興更添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개의 바위 건너 가는데 / 芒鞋竹杖渡千巖
맞이하고 보내주는 푸른 수염의 소나무 있다 / 迎送有蒼髥
오래 앉아 있으니 구름이 산봉우리로 돌아가고 / 坐久雲歸岫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달이 처마에 걸려 있다 / 談餘月掛簷
다만 술 받아놓고 도연명 데려오게 한다면야 / 但敎沽酒引陶潛
왔다갔다 하는데 기분 어찌 싫겠나 / 來往意何厭
청교역에서 객을 전송하다[靑郊送客]
들판의 절에선 송화가 떨어지고 / 野寺松花落
비 갠 내에는 버들솜이 난다 / 晴川柳絮飛
바람 속에 서 있는 백마 붉은 쇠재갈 물고서 / 臨風白馬紫金鞿
떠나가려 하면서도 꽃다운 마음 아까워한다 / 欲去惜芳菲
모이고 헤어지는 건 지금도 옛날과 같고 / 聚散今猶古
공명이란 꿈이 아니겠는가 / 功名夢也非
청산은 말은 하지 않고 몰래 나무라고 있거니와 / 靑山不語暗相譏
이소 돌아가는 걸 본 사람 누구인가 / 誰見二疏歸
서강의 눈보라[西江風雪]
눈은 강가의 집을 짓누르고 / 雪壓江邊屋
바람은 포구의 돛대를 울려댄다 / 風鳴浦口檣
때때로 누각에 올라 남쪽 창을 열어 놓으면 / 時登草閣掛南牕
구름 바다가 아득히 망망하다 / 雲海杳茫茫
생선회 잘라놓으니 은실같이 가늘고 / 斫膾銀絲細
술통을 여니 녹의주 향기롭다 / 開樽綠蟻香
한 가락 예성강곡 소리높여 부르니 / 高歌一曲禮成江
하두강 애끓는다 / 腸斷賀頭綱
북산의 안개비[北山煙雨]
담담하니 푸른 하늘 멀고 / 澹澹靑空遠
우뚝하니 푸르른 봉우리 포개져 있다 / 亭亭碧巘重
천둥비가 나는 용 보내는 것에 홀연히 놀라거니와 / 忽驚雷雨送飛龍
옥부용을 씻으려고 하는 것이리라 / 欲洗玉芙蓉
바위문의 절 좀 알 듯하다가도 / 稍認巖門寺
아무튼 골짜기의 소나무에 길을 잃는다 / 都迷壑底松
재주 좋은 화공도 형용하지 못하니 / 良工吮筆未形容
구의봉인가 의아해진다 / 疑是九疑峯
백악의 비 갠 구름[白嶽晴雲]
새벽에 청교역을 지나 / 曉過靑郊驛
백악산으로 봄놀이 간다 / 春遊白嶽山
제호조 술 권하여 지저귀니 / 提壺勸酒語關關
한 번 듣고 한 번 웃는 얼굴을 짓고는 한다 / 一聽一開顔
마을 집들은 성긴 수풀 바깥에 있고 / 村舍疏林外
밭두렁은 어지러운 물 사이에 있다 / 田畦亂水間
들판의 빗발이 바람 따라 돌아가니 / 郊原雨足信風還
산등의 구름 한가한 것 부럽다 / 羨殺嶺雲閑
황교의 저녁놀[黃橋晩照]
활짝 뚫린 오이밭 바라보니 / 曠望苽田路
우뚝 솟은 버드나무 정원의 누각 / 嵯峨柳院樓
석양에 길을 가다 문득 머리 돌리니 / 夕陽行路却回頭
붉게 물든 나무는 오릉의 가을철이라 / 紅樹五陵秋
성곽의 남은 기초는 장대한데 / 城郭遺基壯
전쟁에 휘말렸던 지난 일 멀다 / 干戈往事悠
마을 집 동자는 시름 모르고 / 村家童子不如愁
피리 불며 소 거꾸로 타고 간다 / 橫笛倒騎牛
박연폭포(朴淵瀑布)
절벽에 팬 구멍 열려 있고 / 絶壁開嵌竇
긴 내가 공중에 걸려 있다 / 長川掛半天
구슬 뛰고 옥 뿜기 몇천 년 / 跳珠噴玉幾千年
상쾌한 기운 연기같이 희다 / 爽氣白如煙
어찌 서각(犀角) 태운 사람을 배우겠는가 / 豈學燃犀客
오직 학선인을 머물게 하길 바란다 / 唯期駐鶴仙
옷이 젖는 더위의 땀 흐르는 샘물 같더니 / 淋衣暑汗似流泉
이곳에 오니 솜옷을 입고 싶어진다 / 到此欲裝綿
장단의 석벽[長湍石壁]
깡마른 뼈대로 천 년을 서 있으면서 / 瘦骨千年立
푸른 뿌리가 백 리에 걸쳐 서리어 있다 / 蒼根百里盤
푸른 물결 사이에 가로 세로 뻗어 / 橫張側展綠波間
그 일대가 옥을 띤 험한 산이 되었네 / 一帶玉孱顔
사냥 말이 어찌 돌아보았겠으랴 / 獵騎何曾顧
어부는 단지 부질없이 볼 뿐 / 漁郞只漫看
시인이 억지로 하늘 아끼는 곳 그리려다가 / 詩人强欲狀天慳
귀밑머리만 세게 된다 / 贏得鬢毛斑
註: 송도팔경(松都八景)이란,송도(개성)에는 전팔경(前八景)과 후팔경(後八景)이 있다. 전팔경은 이제현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써낸 곡령춘청(鵠嶺春晴),용산추만(龍山秋晩),자동심승(紫洞尋僧),청교송객(靑郊送客),웅천계음(熊川禊飮),용야심춘(龍野尋春),남포연사(南浦煙蓑),서강월정(西江月艇) 8가지로 그 중 자동심승과 청교송객은 후팔경에도 들어 있다. 이 무산일단운조의 것이 후팔경이다. 송도팔경은 전,후가 모두 이제현의 시사(詩詞)에 따른 것이다.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은 쌍조 44자, 전후단 각 4구 3평운체에 따른것이다. 전후단 제3구가 7언구로 되어 있는 것 이외에는 다 5언구로 되어 있다. 전후단 제1ㆍ2구는 대구(對句)를 이루는 것이 통례다. 이제현은 무산일단운조에 의해 소상팔경과 송도팔경 각 2편을 써서 이 땅의 사경사(寫景詞)의 전통을 수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