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루(燕子樓)는 조선시대 김해객사(金海客舍)의 후원(後苑)에 있던 누각으로 영남루,촉석루와 더불어 영남의 3대 누정이였다.
김해시 동상동 구(舊) 김해읍성내 포교당 경내는 김해객사의 후원이 있었으나 왜정때 불교사찰로 바뀐후 현재는 蓮華寺(연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駕洛古都宮墟碑(가락고도궁허비)와 분성대 및 연자루의 주춧돌로 추정되는 석물과 함허교 다리이름으로 추정되는 석재,판석으로 추정되는 석판,석불상이 남아있다. 이 터는 가락국 후기의 왕궁터 혹은 수로왕비의 중궁터라고도 전해지며 우리나라 최초 석탑인 파사석탑이 있던 호계사와 조선시대에 들어서 연자루와 함허정(涵虛亭)이 세워졌다고 전한다. 함허정은 연자루 북쪽 파사탑의 서쪽에 네모난 못을 파고 호계천의 물을 끌어들여 돌아나가게 하고 그 가운데에 정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 32권 김해도호부 “樓亭”편은 다음과 같다.
연자루(燕子樓)는 호계(虎溪) 위에 있다.
○ 주열(朱悅)의 시에, “연자루 없어진 지 몇 해나 되었나. 푸른 사창(紗窓) 붉은 난간이 벌써 티끌 되었네. 호계의 울어예는 물 소리 어느 때에 다하리. 구름 흩어진 지 천 년에 사람 보이지 않네.” 하였다.
○ 고려 김득배(金得培)의 시에, “분성(盆城)에 부임한 지도 20년이니, 그때 부로들의 반은 진토(塵土)되었네. 서기(書記)로부터 원수(元帥)가 되었으니, 손꼽아 보아도 나 같은 이 몇이나 되리.” 하였다.
○ 왕강(王康)의 시에, “가야국의 아름답던 일 얼마나 지났는가. 금휘(金徽) 가 적막한데, 뽀얀 먼지만 덮였네. 초현대(招賢臺) 위엔 달이 떠 있을 뿐, 깨끗한 빛이 아직도 예와 지금의 사람을 비추네.” 하였다.
○ 정몽주의 시에, “옛 가야 찾아오니 풀빛 푸른 봄이로세. 흥망이 몇 번 변해 바다가 진토 되었나. 당시에 애끊으며 시 남긴 객은 본래부터 맘이 깨끗해 물 같은 사람이었네.” 하였다. 주열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충렬왕이 일찍이 이르기를, “주열이 모습은 귀신같이 추하여도 마음은 물같이 깨끗하다.” 하였다.
○ “칠점산(七點山) 앞에 저녁 노을이 비끼고, 삼차수(三叉水) 나루터엔 푸른 물결 일어나네. 봄바람 부는 2월에 금주(金州)의 길손은 꼭 강남(江南) 길을 가는 듯하네.” 하였다.
○ “연자루(燕子樓) 앞의 제비[燕子]는 돌아왔는데, 낭군(郞君)은 한번 가더니 다시 안 오네. 그때 손수 심은 매화나무는 몇 차례나 동녘 바람에 꽃 피었던가.” 하였다.
○ 이행(李行)의 시에, “길손의 걸음 분성(盆城)에 오니 또 봄이로구나. 집집마다 긴 대나무 깨끗하여 티끌 하나 없네. 시를 지어 묻노니 초현대(招賢臺)의 객이여, 우선(羽扇) 잡고 윤건(綸巾) 쓴 이 몇 사람이던가.” 하였다.
○ 맹사성(孟思誠)의 시에, “가락국 빈 터에서 몇 해 봄을 보았던가. 수로왕 문물(文物)도 티끌뿐일세. 가련한 제비는 옛일을 생각하는 듯, 높은 누각 곁에 와 주인을 부르네.” 하였다.
○ 『신증』 김감(金勘)의 시에, “원교(員嶠)와 방호(方壺)를 어느 곳에 찾으리. 흥이 나면 바로 이곳에 올라 내려다볼 뿐이네. 가인(佳人)은 예로부터 늙기 쉬운데, 제비는 누굴 위해 지금껏 머무나. 옛 무덤 황량한 누대엔 가을이 일찍 들고 그윽한 꽃 참대 밭은 낮에도 그늘지네. 솔솔 바람 손길 따라 남은 술에 부는데, 애조(哀調) 띤 관현(管絃) 소리 단가(短歌)에 섞이네.” 하였다.
<한국문집총간>에 실려 있는 연자루(燕子樓)와 관련된 시(詩)들은 사진의 아래와 같다.
燕子樓(연자루) - 맹사성
駕洛遺墟幾見春 首王文物亦隨塵 可憐燕子如懷古 來傍高樓喚主人.
(가락유허기견춘 수왕문물역수진 가련연자여회고 내방고루환주인)
가락국의 남은 옛터 몇년 세월 지났던가, 수로왕의 문물 또한 티끌 따라 없어졌네.
가련타, 제비는 옛날을 회고하듯 이 높은 누각 가까이 와서 주인을 부르네.
次金海燕子樓韻 [김해 연자루의 시운을 빌려] - 趙浚/松堂集1권
안개 낀 수면 위로 바다와 산 다 푸르고 / 煙鬟鏡面海山靑
구름 비단 물결 위로 저녁노을 선명한데 / 雲錦波頭夕照明
얼마나 고마운가 가야 옛적부터 비친 달이 / 多謝伽倻舊時月
밤 깊도록 비춰 주니 누에 기대 지내누나 / 夜深偏照倚樓情
贈金海妓玉纖纖 - 전록생/야은(壄隱)逸稿1권
海上仙山七點靑。琴中素月一輪明。世間不有纖纖手。誰肯能彈太古情。
(見圃隱集,陽村集,輿地勝覽,盆城志,海東雜錄,大東韻玉,夢軒筆譚)
按。筆譚曰。壄隱深得琴中旨趣。詩語淸越秀古。而圃隱,陽村亦相繼和韻。稱艶不已。
可見其傾慕之意也。(按勝覽。此詩編於朱文節悅詩下。想此本金海燕子樓韻。而先生亦次之。
然凡原韻次韻欲盡收。則未免太繁。故今觀其關涉本稿與否取捨之。後倣此。
○又按勝覽。金海燕子樓。在府城中虎溪上)
寄李獻納(詹) 按行。時金海燕子樓前手種梅花故云。- 정몽주/圃隱文集2卷
燕子樓前燕子回。郞君一去不重來。當時手種梅花樹。爲問春風幾度開。
次金海燕子樓詩 三韵 - 권근/陽村文集7卷 南行錄
駕洛遺墟草樹靑。海天空闊眼增明。樓中此日登臨客。去國難堪戀戀情。
玉手纖纖二八春。舞衫羅襪動香塵。文章埜隱琴中趣。能繼高風有幾人。(妓玉纖纖者善彈琴。
故宰相埜隱田公甞倅雞林。愛之贈一絶云。海上仙山七點靑。琴中素月一輪明。
世間不有纖纖手。誰肯能彈太古情。公後出鎭合浦。呼置左右。日使彈琴。樓中題詠。
多用其事。首篇卽其韵也)
海邊逐客方留滯。天畔高樓可上臨。一代風雲成大古。千秋陵墓至如今。(金海卽首露王所都。
陵墓尙存。 燕飛簾幕黃梅雨。鶯囀園林綠樹陰。寂寞壯心驚節序。幾回西望費長吟)
次金海燕子樓韻 - 성현/虛白堂詩集5卷
綠樹千章畫閣深。木奴邈我一登臨。虎溪流水朝還暮。盆嶺浮雲古又今。
首露陵荒多歲月。招賢臺廢幾晴陰。金宮往事尋無覓。付與騷人謾苦吟。
金海燕子樓書懷 - 남효온/秋江文集2卷
香窟談天舌本乾。今宵破戒夢巫山。金官故國風流地。燕子高樓歌管寒。
白老聯親三世後。姜生交契十年間。相逢細酌滕王閣。自愧才非古子安。
金海燕子樓。次烏川鄭圃隱韻。二首 - 남효온/秋江文集3卷
三叉江口水重回。燕子樓前山影來。海雨紛紛連晝夜。金州至月茶花開。
其二
烏川秀句獨縱橫。二百年來有後生。無價詩書誰記取。謾然淸世海邊行。
金海燕子樓韻 - 홍성민/拙翁集2卷
百戰經來只古城。劫灰飛盡一丘平。山河擁郭南維固。風露侵窓北客驚。
烽照暝煙寒閃影。角飜溟海冷傳聲。天涯物色撩人甚。嬴得蕭蕭鬢髮明。
次金海燕子樓韻 - 홍성민/拙翁集2卷
亡國遺墟愼莫探。可哀從古說江南。縈苔石塔煙光冷。臨水神魚黛影涵。
日照花間春正暖。樓高雲表鶴宜驂。豪華往事消磨盡。都付騷人醉興酣。
駕洛遺墟只畫楼。靑山影冷水悠悠。角蝸爭罷渾無跡。遼鶴飛來幾度秋。
披柳白門和霧暗。穿花紫燕逐風流。居人不解前朝事。鳴篴斜陽動客愁。
金海燕子樓韻 - 홍성민/拙翁集4卷
一朶梅花出竹間。照來衰白不宜顔。攀枝欲寄相思意。雲外微茫萬疊山。
樓入層霄迥絶塵。蟠桃樹老映千春。超然獨倚闌干立。我是人間第一人。
海門開豁海山靑。雨濕巒村夕照明。首露墓荒天亦老。去來潮水古今情。
方塘波滑燕初回。花暖江城亂影來。春力着人朝睡重。日高珠幕不須開。
朱樓敞豁曲廊回。四面混迎萬象來。海上三山看歷歷。雲窓霧閤摠宜開。
金海燕子樓韻 三首 - 김륵/栢巖文集1卷
平生夢想一高樓。試倚危欄意轉悠。萬里羈遊池館夜。千重關戍海山秋。
寒城石老人民朴。古國雲荒歲月流。莫向靑山問興廢。滄洲一望使人愁。
到底奇觀恣意探。危樓詩眼渺東南。靖邊軍律如山屹。懷遠天恩類海涵。
久喜時平無豕突。還思仙化共鸞驂。千年雲月蒼茫外。一枕長風客夢酣。
䧺州壯堞客來尋。海嶽當樓試一臨。萬刦興亡悲邃古。百年生息喜方今。
潮通剩取魚蝦利。地暖偏宜樹竹陰。驅使風光三日興。平生意氣一長吟。
次金海燕子樓韻 - 유홍/松塘集1卷
興廢千年客倚樓。晩天詩思覺悠悠。紗窓月暈光如晝。蠻土冬深氣似秋。
七點海山螺䯻碧。三叉江水古今流。旅懷終夕渾無賴。吟罷危欄逈自愁。(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