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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영처고 서문[嬰處稿序] - 박지원/연암집7권 별집

작성자허현|작성시간14.09.15|조회수289 목록 댓글 1

 

자패(子佩.유연)가 말했다. “비루하구나, 무관(懋官.이덕무의 字)이 시를 지은 것이야말로! 옛사람의 시를 배웠음에도 그와 비슷한 점을 보지 못하겠다. 털끝만큼도 비슷한 적이 없으니 어찌 그 소리인들 비슷할 수 있겠는가? 야인(野人)의 비루함에 안주하고 시속(時俗)의 자질구레한 것을 즐기고 있으니, 바로 오늘날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여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시에서 살필 수 있는 점이다. 옛날을 기준으로 지금을 본다면 지금이 진실로 비속하기는 하지만, 옛사람들도 자신을 보면서 반드시 자신이 예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를 살펴보던 사람 역시 그때에는 하나의 지금 사람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세월이 도도히 흘러감에 따라 풍요(風謠)도 누차 변하는 법이다. 아침에 술을 마시던 사람이 저녁에는 그 자리를 떠나고 없으니, 천추만세(千秋萬世)토록 이제부터 옛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옛날’과 대비하여 일컬어지는 이름이요, ‘비슷하다’는 것은 그 상대인 ‘저것’과 비교할 때 쓰는 말이다. 무릇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비슷하기만 한 것이어서 저것은 저것일 뿐이요, 비교하는 이상 이것이 저것은 아니니, 나는 이것이 저것과 일치하는 것을 아직껏 보지 못하였다.

종이가 하얗다고 해서 먹이 이를 따라 하얗게 될 수는 없으며, 초상화가 아무리 실물과 닮았다 하더라도 그림이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사단(雩祀壇.서울 남산 기슭에 있었던 기우제 지내던 단) 아래 도저동(桃渚洞)에 푸른 기와로 이은 사당이 있고, 그 안에 얼굴이 붉고 수염을 길게 드리운 이가 모셔져 있으니 영락없는 관운장(關雲長)이다. 학질(瘧疾)을 앓는 남녀들을 그 좌상(座牀) 밑에 들여보내면 정신이 놀라고 넋이 나가 추위에 떠는 증세가 달아나고 만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아무런 무서움도 없이 그 위엄스러운 소상(塑像)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데, 그 눈동자를 후벼도 눈을 깜짝이지 않고 코를 쑤셔도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덩그러니 앉아 있는 소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보건대, 수박을 겉만 핥고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자와는 더불어 그 맛을 말할 수가 없으며, 이웃 사람의 초피(貂皮) 갖옷을 부러워하여 한여름에 빌려 입는 자와는 더불어 계절을 말할 수가 없듯이, 관운장의 가상(假像)에다 아무리 옷을 입히고 관을 씌워 놓아도 진솔(眞率)한 어린아이를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무릇 시대와 풍속을 걱정하고 가슴 아파한 사람으로는 역사상 굴원(屈原)만 한 사람이 없는데도, 초(楚)나라 풍속이 귀신을 숭상했기 때문에 귀신을 노래한 구가(九歌)를 지었으며, 한(漢)나라는 진(秦)나라의 옛것에 의거하여 진나라의 땅에서 황제가 되고 진나라의 성읍에다 도읍을 정하고 진나라의 백성을 백성으로 삼았으되, 약법삼장(約法三章)에 있어서는 진나라의 법을 답습하지 않았다.

지금 무관(懋官)은 조선 사람이다. 산천과 기후가 중화(中華) 땅과는 다르고 언어와 풍속도 한당(漢唐)의 시대와 다르다. 그런데도 만약 작법을 중화에서 본뜨고 문체를 한당에서 답습한다면, 나는 작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그 내용이 실로 비루해지고, 문체가 비슷하면 할수록 그 표현이 더욱 거짓이 됨을 볼 뿐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구석진 나라이기는 하나 이 역시 천승(千乘)의 나라요, 신라와 고려가 비록 검박(儉薄)하기는 하나 민간에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으니, 그 방언을 문자로 적고 그 민요에다 운(韻)을 달면 자연히 문장이 되어 그 속에서 ‘참다운 이치’가 발현된다. 답습을 일삼지 않고 빌려 오지도 않으며, 차분히 현재에 임하여 눈앞의 삼라만상을 대하니, 오직 이 시가 바로 그러하다.

아, '시경'에 수록된 삼백편의 시는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의 이름을 들지 않은 것이 없고, 여항(閭巷)의 남녀가 나눈 말들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패국(邶國)과 회국(檜國) 사이에는 지리적으로 풍토가 같지 않고, 강수(江水)와 한수(漢水) 유역에는 백성들이 그 풍속을 각기 달리하므로, 시를 채집하는 사람이 열국(列國)의 국풍(國風)으로 만들어 그 지방 백성들의 성정(性情)을 고찰하고 그 풍속을 파악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무관(懋官)의 이 시가 예스럽지 않은 점에 대해 어찌 다시 의아해하겠는가. 만약 성인(聖人)이 중국에 다시 나서 열국의 국풍을 관찰한다면, 이 '영처고(嬰處稿.이덕무의 시문을 모은책)'를 상고함으로써 우리나라 조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 남녀의 성정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조선의 국풍’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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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9.16 이덕무의 자는 무관(懋官)이고 아호는 여럿으로 청장관(靑莊館),아정(雅亭),삼호거사(三湖居士),경재(敬齋),팔분당(八分堂),선귤헌(蟬橘軒),정암(亭巖),을엄(乙广),형암(炯菴),영처(嬰處),감감자(憨憨子),범재거사(汎齋居士), 청음관(靑飮館),탑좌인(塔左人),재래도인(䏁睞道人),매탕(槑宕),단좌헌(端坐軒),주충어재(注蟲魚齋),학초목당(學草木堂),향초원(香草園) 등이 있다. "영처고(嬰處稿)" 는 그의 시문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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