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종놈이 왔기에 그가 가져온 편지를 뜯어 반도 채 읽지 않아서 글자 한 자마다 눈물이 한 번 흘러 천 마디 말이 모두 눈물로 변하니 종이가 다 젖어 버렸구나. 이런 일들은 내가 지난날에 두루 겪었던 일들이니, 어찌 마음이 아프고 뼈가 저려 팥알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 세상의 가난한 선비들 중에는 천 가지 원통함과 만 가지 억울함을 품고도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하는 자가 있다. 무릇 성(城) 하나를 맡아 국가의 보루가 되었는데, 불행히도 강성한 이웃나라의 오만한 적군이 번갈아 침략하여, 운제(雲梯.높은 사다리)와 충거(衝車.성을 무너뜨리는 전차)등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공격해 오는데도, 밖으로는 개미만큼의 미미한 원조도 끊어지고 안으로는 참새나 쥐, 말 고기와 첩의 인육까지 다 떨어져 필경에는 간과 뇌가 성과 함께 으스러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뜻을 꺾고 몸을 굽히지 않은 것은 지켜야 할 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고 죽어서는 의로운 귀신이 되었으며, 아내는 봉작(封爵)되고 자손들은 음직(蔭職)을 얻어 만대에 길이 부귀를 누렸으며, 이름이 역사에 남겨지고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다.
가난한 선비가 굳은 절조를 지킨 경우, 그가 겪은 곤란과 우환이 어찌 열사(烈士)가 고립된 성을 지킨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적이 있었겠는가. 그 또한 오직 ‘나에게는 지켜야 할 바가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평생을 헤아려 보면,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예의염치(禮儀廉恥)는 씻은 듯이 찾아볼 수 없고, 종국에 성취한 것이란 작은 신의를 위하여 스스로 도랑에서 목매 죽는 것을 흉내낸 데 불과하다. 그리하여 살아서는 못난 사내요 죽어서는 궁한 귀신이 되며, 종들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처자는 보존되지 못하며, 제 이름자는 묻혀 없어지고 무덤은 적막할 뿐이다.
아, 슬프다! 하늘이 백성들에게 선(善)을 부여하실 때 어찌 그토록 다르게 했겠으며, 뜻의 독실(篤實)함 또한 어찌 남과 같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그들이 원통함과 억울함을 끝내 풀어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세상의 논자들은 선뜻 한마디 말로 마감하여 말하기를, “가난이란 선비에게 당연한 일이다.”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 말이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전혀 모르겠어서 마침내 옛 성현들이 남긴 교훈을 뒤적여 보았더니, 공자는 “군자는 본디 곤궁하다[[君子固窮]” 했고, 맹자는 “선비는 뜻을 높이 가진다[[士尙志]” 하였다. 천하에서 본디 곤궁하고 뜻을 높이 가지는 선비 중에 이 사람[若人.가난한 선비]보다 더 심한 사람이 없는데도, 성인은 이 사람을 위해서 이와 같은 말을 준비하여 거듭 훈계하신 듯하니, 어찌 지극히 원통하고 지극히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소계(蘇季)는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가며 글을 읽고 곤궁한 매고(枚皐.한나라의 저명한 문인 매승의 서자)는 독서에 더욱 매진했으니 이는 바로 그들이 원통함을 씻고 억울함을 푸는 밑천이 되었지.
종놈을 붙잡아 두어 무엇 하리오마는, 부득불 장날을 기다려 베도 사와야 하고, 겸하여 솜도 타야 하겠기에 자못 날짜를 허비하게 되었고, 또 비와 눈이 연달아 내려 즉시 떠나보내지 못했을 뿐이다. 둘째 아이 혼사는 아직 정한 곳도 없는데 미리 준비하는 것을 어찌 논할 수 있겠느냐. 아마도 내가 평소에 물정에 어두운 줄을 잘 알 텐데, 오히려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누이의 편지가 비록 위로가 되지만, 내행(內行.먼 길을 나들이한 집안의 부녀자들)을 다 보내고 홀로 빈 관아를 지키고 있자니, 곁에서 대신 글을 읽게 하고 필사(筆寫)를 시킬 사람이 없어도 어쩔 도리가 없구나. 내 평생 언문(諺文)이라고는 한 글자도 모르기에, 50년 동안 해로한 아내에게도 끝내 편지 한 글자도 서로 주고받은 일 없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한이 될 따름이다. 이 일은 들어서 알고 있을 터이니, 나를 대신해 말을 전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현수(玄壽)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약간의 물자를 보내어 도와주고 싶지만 애닯게도 인편이 없어서, 지금까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무엇이 목구멍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이 종놈에게 주어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놈의 생김새가 신실(信實)치 못한 것 같기에 우선 그만두고 다른 인편을 기다릴 따름이다. 장부 정리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으니 환곡(還穀)을 다 받아들이면 결단코 돌아가려 한다.
이제 막 안경을 걸치고 이 편지 쓰기를 다 못 마쳤는데, 통진(通津.김포의 한강 입구에 있던 현)에서 편지 두 통이 또 왔구나. 아직 편지를 뜯어서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사연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다.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