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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호서장서각기(湖墅藏書閣記) - 허균/성소부부고6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14.10.10|조회수93 목록 댓글 1


강릉(江陵)은 영해(嶺海)의 동녘에 있는 큰 도회지이다. 신라 때에는 북빈경(北濱京)이었으며, 동경(東京)이라고도 불렀다. 김주원(金周元.신라 태종 무열왕의 6대손으로 유정의 아들. 강릉김씨의 시조)이 봉(封)을 받은 이래 꾸민 장식과 사치한 외관이 화려하고 특출하여 서울과 서로 비슷하였으며, 또한 풍속이 문교(文敎)를 숭상하여 의관과 문필을 갖춘 선비로서 사장(詞場)에 몰려드는 자들이 줄을 이어 늘어설 지경이었다. 풍속이 돈후하여 노인을 공경하고 검소함을 숭상하며, 백성들은 소박하고 성실하여 기교(機巧)가 없었다. 어업과 쌀의 생산이 풍요로워 비단 산천의 아름다움이 동방에서 으뜸일 뿐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지방에 관리된 자들은 대개 여기를 못잊어 하여, 떠날 때 눈물을 흘리는 자가 있었으므로 원읍현(員泣峴. 원님이 울고 가는 고개)이 생겨 지금도 있으니, 그 증거가 될 만하다.

유인길(柳仁吉)이 이 고을에 부임해서 청엄(淸嚴)하고 인서(仁恕)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추대하여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생각하였다. 일찍이 문교(文敎)를 떨쳐 일으키는 것으로 자기의 소임을 삼고 훈장(訓獎)과 과권(課勸)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선비들이 분발하여 일어나는 이가 많았다. 임기가 만료되어, 명삼(明蔘) 32냥을 내게 넘겨주며,

“이는 공납하고 남은 것인데 돌아가는 짐에 누를 남기고자 아니하니 그대는 약용(藥用)에 충당하라.” 하기에 나는, “감히 사사로이 쓸 수는 없으니, 이 고을의 학자들과 같이 쓰고 싶소.” 하고, 상자에 담아 서울로 돌아왔다.

마침 (내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그것으로써 육경(六經),사자(四子.공자,증자,자사,맹자의 글 즉 논어,대학,중용,맹자를 말함),《성리대전(性理大全)》,《좌전(左傳)》,《국어(國語)》,《사기(史記)》,《문선(文選)》,이백(李白),두보(杜甫),한유(韓愈),구양수(歐陽脩)의 문집, 사륙(四六),《통감(通鑑)》등의 책을 연시(燕市)에서 구해 가지고 돌아왔는데, 이를 노새에 실어 그 고을 향교로 보냈다. 향교의 선비들은 의론에 참여하지 않았다 해서 사양하므로 나는 호상(湖上)의 별장에 나아가 누각 하나를 비우고 수장하고서, 고을의 여러 선비들이 만약 빌려 읽고자 하면 나아가 읽게 하고 도로 수장하여, 이공택(李公擇.송나라 李常)의 산방고사(山房故事.이상이 젊었을 때 여산의 白石僧舍에서 공부하였다.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장서 1만 권을 뽑아서 공부하던 집에다 기증하고 그 곳을 李氏山房이라 명명했다)와 같이 하였으니, 이로써 유후(柳侯.유인길)의 학문을 일으키고 인재를 양성하려는 뜻을 거의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의관과 문필을 갖춘 선비로 하여금 줄지어 늘어섬이 옛날의 흥성하던 시절과 같이 된다면 나도 그 공을 함께 지닐 터이니, 또한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불의에 액을 당하여 관운(官運)도 더욱 삭막하니 장차 인끈[印綏.벼슬을 의미함]을 내던지고 동녘 지방으로 돌아가서 만 권 서책 중의 좀벌레나 되어 남은 생애를 마치고자 하는데, 이 책의 수장(收藏)이 또한 늙은 나의 노경(老境)을 즐길 수 있는 밑천이 되니, 기뻐할 따름이다. 제생(諸生)은 아무쪼록 갑에 넣어 좀약을 치고 햇볕을 쬐어 잃어버리거나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한다면, 운기(雲氣)를 보고 점치는 자가 반드시, “비슬라(比瑟羅)의 옛터에 무지개 빛이 하늘을 찌르고 달을 꿰니, 틀림없이 기이한 서적이 그 아래 있을 것이다.” 할 것이다. (끝)

 

註: 교산(허균)은 역모로 탄핵을 받던 1617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수많은 서책들을 사위 이사성(李士星)의 집으로 보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강릉의 장서각에 있던 서책들의 행방은 알려진 바 없다. 이사성의 아들인 이필진(李必進)의 墓誌銘 (恬軒集 卷33)에 “수천권의 서책(書冊)을 가장(家藏)하고 있었으니 허씨(許氏)의 책들이었다. 그것들을 읽으며 나날을 보냈다.”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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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0.10 호서장서각은 일종의 사설 도서관이였다. 교산 난설헌 선양회에서는 강릉시 초당동에 호서장서각(湖墅藏書閣)을 신축하여 고서사본들을 수집하여 전시할 예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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