註: 《기측체의(氣測體義)》는 조선 후기 학자 최한기(崔漢綺)가 지은 유학 철학서(儒學哲學書) 이다. 성리학(性理學)의 배타적이고 고루한 입장에서 벗어나, 유학사상을 실증적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 발전시킨 점이 특징이다.-두산백과-
주공(周公)과 공자(孔子)가 백세의 스승이 되는 까닭은 주공과 공자의 존호(尊號)에 있지 아니함은 물론이고, 또한 용모와 위의(威儀)나 신채(神彩)에 있지도 아니한데, 하물며 그들의 거처ㆍ동작이나 의복ㆍ궁실 또는 살고 있었던 시대에 있겠는가.
이는 진실로 강기(綱紀)를 세우고 윤리를 밝히며 몸을 닦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하여, 고금(古今)을 참작하고 문질(文質.강상과 제도문물)을 손익(損益.시대의 상황에 맞도록 조화하는 것)하여 그 도(道)를 밝히고 그 의(誼)를 바로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하늘과 사람이 떳떳이 행하는 올바른 도리를 준수할 것을 가르친 데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백세의 스승이 되는 까닭이다.
후세에 주공과 공자를 배우는 사람은 오직 참작하고 손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것을 배워야 할 것이니, 어찌 참작과 손익이 들어 있지 않는 것을 배우리요.
나라의 제도나 풍속은 고금이 각각 다르고, 역산(曆算.천문과 일력등)과 물리(物理)는 후세로 올수록 더욱 밝아졌으니, 주공과 공자가 통달한 대도(大道)를 배우는 자는 주공과 공자가 남겨준 형적이나 고집스레 지키고 변통하지 않아야 되겠는가, 아니면 장차 주공과 공자가 통달한 대도를 본받아서 지킬 것은 지키고 변혁할 것은 변혁해야 하겠는가.
대개 천지와 인간 만물의 생성은 모두 기(氣)의 조화(造化)에 말미암는 것인데, 이러한 기에 대해서는 후세로 올수록 열력(閱歷)과 경험으로 점점 밝아졌다. 그러므로 이치를 궁구하는 사람은 준적(準的)이 생겨 분란을 종식시키게 되었고, 수행(修行)하는 사람은 진량(津梁.나루와 다리로 수행의 수단을 비유)이 생겨 거의 어그러지고 잘못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기(氣)의 체(體)를 논하여 신기통(神氣通)을 짓고 기의 용(用)을 밝혀 추측록(推測錄)을 지었는데, 이 두 글은 서로 표리(表裏)가 되는 것이다. 이 기는 사람의 일용(日用)과 상행(常行)에 함육(涵育)되고 발용(發用)하는 것이므로, 비록 이 기를 버리고자 해도 버릴 수 없으며, 지식을 발췌(拔萃)하는 것도 이 기를 통달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기를 논한 글은 여기에서 대략 그 단서를 열어 놓았다. 두 글을 합하여 편찬하였는데, 추측록이 6권이고 신기통이 3권으로 총 9권이다. 이것을 이름하여《기측체의(氣測體義)》라 하였다.
그러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주공과 공자의 도를 배우는 데 있어서 어떠한 도움이 있겠는가.
주공과 공자의 학문은 실리(實理)를 좇아 지식을 확충하고 이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데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니, 기는 실리의 근본이요 추측은 지식을 확충하는 요법(要法)이다. 그러므로 이 기에 연유하지 아니하면 궁구하는 것이 모두 허망(虛妄)하고 괴탄(怪誕)한 이치이고, 추측에 말미암지 아니하면 안다는 것이 모두 근거가 없고 증험할 수 없는 말일 뿐이다. 따라서 근고(近古)의 잡학(雜學)이나 이단의 학설은 제거하지 않아도 자연히 제거될 것이다.
정실(精實)은 스스로 확립되며 광명(光明)은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라, 고금(古今)을 참작하고 피차(彼此)를 변통함에 있어서 자연히 그 방법이 있게 된다. 예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 간혹 지금에 와서 밝혀지기도 하고, 옛시대에 합당하던 것이 지금 세상에는 어그러져 맞지 않기도 하며, 지금 숭상하는 것이 혹 전보다 못하기도 하고, 지금 분명한 것이 혹 옛사람이 버린 것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것을 들어 주공과 공자의 도를 배우는데 통하면, 고금이 다를 것이 없고 참작이 충분히 갖추어지며, 몸을 닦고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궁구하여 밝히면 이로 말미암아 성실(誠實)의 이치가 쉽게 따를 차서를 갖게 되고, 윤강(倫綱)의 상도(常道)가 부식(扶植)될 방법이 있게 된다.
주공과 공자 같은 백세의 스승의 성대한 덕업(德業)은 과연 후세에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있는지라, 실용(實用)에 도움이 되면 비록 나무하는 초부(樵夫)의 말이라도 취해 쓰는 것이요, 후세에 말한 것이라는 이유로 모두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주공과 공자의 도에 도움이 없는 것이라면 아무리 교묘하고 번드르르한 말이라 하여도 취하여 쓸 수 없다.
진실로 학문이 하늘과 사람의 마땅함[天人之宜]을 궁구한 경지에 도달하면 신기와 추측이 기대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이를 것이며, 주공과 공자의 도를 기대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공과 공자의 도에 들게 될 것이다.
병신년(1836) 맹동(孟冬)에 최한기(崔漢綺)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