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전(六典)이 생긴 지가 오래 되었다. 《주례(周禮)》를 상고해 보니 첫째 치전(治典)은 나라에 법을 세우고, 관부(官府)를 다스리고 온 백성을 통솔하는 것이요, 둘째 교전(敎典)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관부를 가르치고 온 백성을 길들이는 것이요, 셋째 예전(禮典)은 나라를 평화롭게 하고 백관을 통솔하고 온 백성을 화합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 정전(政典)은 나라를 평정하고 백관을 바르게 하고 온 백성을 균등하게 하는 것이요, 다섯째 형전(刑典)은 나라의 책임을 묻고 백관의 본보기로 삼고 온 백성을 규찰하는 것이요, 여섯째 사전(事典)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그 임무를 백관에게 맡기고 온 백성을 살린다고 하였으니, 치(治)는 이(吏)요, 교(敎)는 예(禮)요, 정(政)은 병(兵)이요, 사(事)는 공(工)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의 천하와 국가의 치란성쇠를 환하게 상고할 수 있으니, 그 중에 다스리고 흥한 것은 이 육전을 밝혔기 때문이요, 그 중에 어지럽고 망한 것은 이 육전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고려 말엽에 정치와 교화가 차차 해이하고 기강이 무너져 육전이란 것이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어졌으니, 뜻있는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탄식한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어지러운 상태가 너무 지나치면 다시 다스리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이다.
우리 전하(태조)가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백성의 뜻에 따라 잔악하고 포학한 것을 제거하여 나쁜 폐단은 다 개혁하고 교화를 일신하게 하였다. 때때로 그 성적을 조사하여 잘못한 사람은 내쫓고 잘한 사람은 올려 준 것은 치전(治典)에 밝은 것이요, 부역을 덜어주고 세금을 내려서 백성을 잘 살게 한 것은 교전(敎典)에 밝은 것이다. 수레와 옷이 제도가 있어 웃사람과 아랫사람의 분별이 있어 예전(禮典)이 밝게 되었다고 할 수 있고, 군대를 잘 다스려 외적을 막았으니 정전(政典)이 밝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형벌이 실정에 맞아 백성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없으니 형전(刑典)이 밝지 않다 할 수 없고, 온갖 공업을 잘 다스려 모든 업적이 잘 되어 나가니 사전(事典)이 밝지 않다 할 수 없다.
판삼사사 봉화백(奉化伯) 신(臣) 정도전(鄭道傳)이 이 책을 만들어서 《경국전(經國典)》이라 이름하고, 전하께 바치니 전하가 기뻐하여 유사에게 명령하여 금궤(金樻)에 넣어두라 하고, 드디어 신 정총(鄭摠)에게 명령하여 그 책 끝에 서문을 지어 붙이라고 하였다.
신 정총은 삼가 생각해 보건대, 한 시대의 일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한 시대가 만들어 놓은 제도가 있는 법이다. 진실로 밝은 임금과 어진 정승이 서로 만난 것이 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지 않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전하는 참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털어놓고 재상에게 위임했으며, 삼사공(三司公)은 천의(天意)와 인도(人道)를 연구한 학문과 경제(經濟)의 재주를 가지고 왕업을 도와 이룩하였으며, 그 좋은 문장으로 이 대전(大典)을 만들었으니, 다만 전하가 밤중에 한가로이 보시는 데만 도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자손만대에 귀감이 될 것이니, 아, 지극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저 문장으로만 본다면 책과 사람이 따로 되어 책은 책이요, 사람은 사람이니, 다스리는 도(道)에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자사(子思)가 《중용》을 지을 적에 구경(九經)을 논하기를, “그 행하는 것은 한 가지니 한 가지는 무엇을 말한 것인가? 정성이다.” 하였으니, 신이 이 책에서도 또한 이런 의미를 가지고 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