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효(孝)의 물음에 대해 답하기를 “살아 계실 때 예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 장사 지내고, 예로 제사 지내는 것이다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라고 하였다. 예(禮)라는 한마디 말이 산 자를 섬기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허다한 도리를 다 포괄하였으니, 성인이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장사 지내고 제사 지내기를 예로 하는 것은 살아서 섬기는 도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살아서 예로 섬기지 않은 자들이 어찌 예로 장사 지내고 제사 지낼 수 있겠는가.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어기거나 숨기지 말고, 제멋대로 나다니지 말고, 위험과 모욕을 끼치지 말고, 부모의 옳지 않은 점이 있어도 보지 말고, 매우 천박해도 공경해야 하니, 음식을 충실히 봉양하고 의복을 철 따라 입혀 드리며 질병에 약을 올리는 것은 단지 사소한 일일 뿐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몸에 입히는 수의(壽衣)와 관에 넣는 각종 물건을 후회가 없도록 성신(誠信)을 다하여 마련하되, 가난하면서 부자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장사를 지낼 때는 보기에만 아름답게 하지 말고, 남의 산을 침범하지 말고, 묘소를 넓게 점거하지 말고, 까닭없이 옮기지 말아서 오직 체백(體魄)을 편히 모셔 흙으로 돌아가기를 생각해야 한다.
제사를 지낼 때는 집안 살림에 맞게 하여 밥이나 국 한 그릇도 정결하기를 힘쓰며, 풍성하기만 추구하지 말아야 하니 풍성하면 정갈하지 못하기 쉽고, 늦게 올리지 말아야 하니 늦으면 조용하지 못하기 십상이므로 다만 마음을 재계하고 생각을 집중하여 마치 영혼이 와 계신 듯한 정성을 다한다면, 이 또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이와 다르다. 호오(好惡)와 향배(向背)를 어버이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하고, 동작과 행위를 어버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대로 하며, 존엄하게 받드는 듯하지만 마음속으론 아는 것이 없다고 모욕하고, 성실히 봉양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시골 노인으로 대접하며, 거처를 달리하여 곁에서 모시는 때가 적고, 사사로운 일을 숨기기를 꾀하여 어버이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한다. 몸이 부귀하게 되면 드러내놓고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취하며, 재주가 있고 문장이 능하면 오만스럽게 잘난 체하는 표정을 지으니, 이와 같다면 비록 날마다 소ㆍ양ㆍ돼지를 쓰더라도 불효가 되는 것이다. 개나 말조차도 봉양함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구별하겠는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의금(衣衾)과 관곽(棺椁)을 제 능력보다 넘치게 마련하고자 하면서 아침저녁의 곡읍(哭泣)은 제 몸으로 행하려 하지 않고, 장사를 지내려 할 때는 선영(先塋)을 버려 두고 널리 지사(地師.풍수 전문가)를 구하여 조금도 체백(體魄)을 안정시킬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단지 발복(發福)할 땅만 얻고자 한다. 훗날의 부귀가 이 산에 달려 있다고 생각되면, 비록 사람들이 엄히 금하는 자리라도 곧장 투매(偸埋)할 계책을 내었다가 관이 파내져 옮겨지는 환난을 자주 당한다. 이러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 또 다른 곳을 엿보아 오래된 조상의 묘소마저 여러 번 옮기기까지 하니, 이는 지사(地師)의 꾐에 빠진 때문이지만 만일 조금이라도 어버이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하겠는가.
제사는 이미 제 살림살이에 맞춰 차리지 않고, 또 정갈히 재계하여 정성을 다하지도 않고서 오로지 남에게 잘 보이고 준여(餕餘.제사 음식)를 풍족히 나눠주고자 하여 도리에 어긋난 것을 함부로 구하며 동쪽 서쪽으로 거짓말로 속여 돈을 끌어오고, 조금이라도 꺼리는 일이 있으면 제사를 폐하니, 이와같은 제사라면 제사를 올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예로 섬기지 못했으면서 상장제례(喪葬祭禮)에만 성의를 다하는 것처럼 하여, 일을 갖추기 위해 구걸하여 빚을 많이 내어 한때의 차림이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자 하고,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이 되면 비록 가난한 집이라도 소를 잡고 약과를 만들어 남들의 평판이 좋도록 힘쓴다. 세월이 훌쩍 흘러 곤궁이 더욱 심해지고 빚에 이자가 몇 곱절 불어 다 갚지 못하면 한 번 두 번 재촉당하다가 욕설이며 모욕이 죽은 자에까지 미치니, 이때가 되면 어버이를 위한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고인이 이르기를 “살아 계실 때를 미루어 죽은 이를 받들고, 사람 섬기는 도리를 미루어 귀신을 섬긴다 [推生事死 推人事神]”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산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 어찌 죽은 이를 섬기겠는가 [未能事生 安能事死]”라고 하였다. 이는 산 사람을 섬기기를 오로지 남의 눈에 잘 보이려 하였기 때문에 죽은 이를 섬김도 오로지 남의 눈에 잘 보이려 하여, 드디어 그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외물이 남보다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걱정만 못하고, 어버이를 편히 모시려는 마음이 좋은 터를 얻어 훗날의 발복을 구하는 마음만 못한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도도히 흘러온 폐단이 습속으로 굳어져 아무도 그것을 잘못이라 하지 않고 도리어 모두 본받으려 하니, 끝내 이와 같고 말 것인가, 아니면 한번 변해 도에 이를 날이 있을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出典: 윤기의 문집인 무명자집 문고12책 정상한화(井上閒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