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 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들은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 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이 이걸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戒告狀)이에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조린 감자. 나는 어머니를 위해 철거 계고장을 천천히 읽었다.
주택 444, 1- 197X. 9. 10. 철거 대상 건물 표시 |
어머니는 쪽마루 끝에 앉아 말이 없었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 그림자가 시멘트 담에서 꺾어지며 좁은 마당을 덮었다. 동네 사람들이 골목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통장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방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식사를 끝내지 않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부엌바닥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쳤다. 나는 동사무소로 갔다. 행복동 주민들이 잔뜩 몰려들어 자기의 의견들을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들을 사람은 두셋밖에 안 되는데, 수십 명이 거의 동시에 떠들어 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떠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바깥 게시판에 적혀 있는 공고문을 읽었다. 거기에는 아파트 입주 절차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할 경우에 탈 수 있는 이주 보조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 주위는 시장 바닥과 같았다. 주민들과 아파트 거간꾼들이 한데 뒤엉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했다. 나는 거기서 아버지와 두 동생을 만났다. 아버니는 도장포 앞에 앉아 있었다. 영호는 내가 방금 물러선 계시판 앞으로 갔다. 영희는 골목 입구에 세워 놓은 검정색 승용차 옆에 서 있었다. 아침 일찍 일들을 찾아 나섰다가 철거 계고장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 것이었다. 누군들 이런 날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 옆으로 가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들어 메었다. 영호가 다가오더니 나의 어께에서 그 부대를 내려 옯겨 메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넘겨주면서 이 쪽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보았다. 영희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몇 사람의 거간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아파트 입주권을 팔라고 했다. 아버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책을 읽는 것을 처음 보았다. 표지를 쌌기 때문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영희가 허리를 굽혀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난쟁이가 간다." 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말했다.
어머니는 대문 기둥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떼기 위해 식칼로 못을 뽑고 있었다. 내가 식칼을 받아 반대쪽 못을 뽑았다. 영호는 어머니와 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빨리 떼어 간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괴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놓인 표찰을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영희가 이번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 너희들이 놀게 되지만 않았어도 난 별 걱정을 안 했을 거다."
어머니가 말했다.
" 스무 날 안에 무슨 뽀족한 수가 생기겠나? 이제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지."
" 입주권을 팔려고 그래요?"
영희가 물었다.
" 팔긴 왜 팔어!"
영호가 큰 소리로 말했다.
" 그럼 아파트 입주할 돈이 있어야지."
" 아프트로도 안 가."
" 그럼 어떻게 할 거야."
" 여기서 그냥 사는 거야. 이건 우리 집이다."
영호는 성큼성큼 돌계단을 올라가 아버지의 부대를 마루 밑에 놓았다.,
" 한 달 전만 해도 그런 이야길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가 내 준 철거 계고장을 막 읽고 난 참이었다.
"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 놨다니까 얘긴 그걸로 끝난 거다."
" 그런 우릴 위해서 지은 게 아네요."
영호가 말했다.
"돈도 많이 있어야 되잖아요?"
영희가 마당 가 팬지꽃 앞에 서 있었다.
" 우린 못 떠나. 갈 곳이 없어. 그렇지 큰오빠?"
"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나 두지 않을 테야."
영호가 말했다.
" 그만둬."
내가 말했다.
" 그들 옆엔 법이 있다."
아버지 말대로 모든 이야기는 끝나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당 가 팬지꽃 앞에 서 있던 영희가 고개를 돌렸다. 영희는 울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희는 잘 울었다. 그 때 나는 말했다.
" 울지 마, 영희야."
" 자꾸 울음이 나와."
" 그럼 소리를 내지 말고 울어."
" 응"
그러나 풀밭에서 영희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손으로 영희의 입을 막았다. 영희의 몸에서는 풀냄새가 났다. 개천 건너 주택가 골목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이 고기 굽는 냄새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묻곤 했다.
"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니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걸음을 빨리 하면서 말했다.
" 고기 굽는 냄새란다. 우리도 나중에 해 먹자."
" 나중에 언제?"
" 자, 빨리 가자."
어머니가 말했다.
"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고기도 날마다 먹을 수 있단다."
" 거짓말"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면서 내가 말했다.
"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야!"
어머니가 우뚝 섰다.
" 너, 방금 뭐라고 했니?"
"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야."
" 너 매 조 맞아야겠구나.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 나도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고 싶어."
" 빨리 가자."
" 엄마는 왜 우리들 옷에 주머니를 안 달아 주지? 돈도 넣어 주지 못하고, 먹을 것도 넣어 줄 게 없어서
그렇지?"
" 아버지에 대해 말을 막 하면 너 매밎을 줄 알아라."
" 아버지는 악당도 못 돼. 악당은 돈이나 많지."
"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 알아."
나는 말했다.
" 수백 번 더 들었어. 그렇지만 이젠 속지 않아."
" 엄마, 큰 오빠는 말을 안 들어."
영희는 부엌문 앞에 서서 말했다.
" 엄마 몰래 또 고기 냄새 맡으러 갔었대. 나는 안 갔어."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영희를 흘겨보았다. 영희는 또 말했다.
" 엄마, 큰오빠가 고기 냄새 맡으로 갔었다고 말했더니 때리려고 그래."
영희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영희 입에서 손을 떼었다. 영희를 풀밭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 잘못이었다. 영희를 때려 주고 나는 후회했다. 귀여운 영희의 얼굴은 눈물로 젖었다. 우리는 그 때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