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청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마음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진심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구원에 나아가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고 우리에게 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에게는 아담의 길과 예수님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아담의 길은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하느님의 은총에 나아가게 합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아담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담의 죄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담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의로움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는 가난하고 약한 이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의 길입니다. 아담의 죄는 마음과 속이 불의와 착취로 가득한 것입니다. 하느님 대신에 세상의 권력과 폭력을 좇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더렵혀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삶을 저버리고 오로지 세상의 욕심과 이익만을 따르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자신의 악함을 하느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이들을 구하시고 악인들을 쳐부수실 것입니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그럼에도 세상은 무수한 악인들의 손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사람들의 육체를 지배함으로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권력을 쥘수록 이 착각에 쉽게 빠집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의 사형에 처한 빌라도가 어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육체를 지배하고 하느님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그들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느님이 없는 이들입니다. 오로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그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십니다. 세상의 권력과 폭력이 결코 하느님을 이길 수 없음을 잘 아십니다. 세상의 권력과 폭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십니다. 당신의 영혼이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는지, 하느님 없이 세상의 권력과 폭력을 섬기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속 마음이 결국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 바치고 하느님의 눈에 맞도록 말씀하시고 행동하십니다. 결코 감추지 않으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앞에 온전히 머무시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십니다. 외적으로, 육체적으로만 하느님을 섬긴다 하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영적으로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외적인 행동과 차이가 날 때 바로 이것이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비판하신 이유입니다. 이 위선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이중생활이 됩니다. 외적으로는 그럴듯한데 내적으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에 충실하려면 우리는 우선 내적으로, 마음으로 참되게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외적 행동 역시 올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법입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결국 드러나는 것은 내 안의 내 모습입니다. 내 안에 욕망이 가득하면서 외적으로 하느님을 이야기해도 그것이 결코 하느님의 거룩함을 전달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속을 깨끗이 해야 자연스럽게 겉도 깨끗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정결례의 참 의미를 설명하신 이유입니다. 우리의 죄를 벗어나야 합당하게 우리의 행동이 선하고 거룩해지는 법입니다. 겉으로 화려하고 좋게 보이는 것들에 속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외적으로 크고 강하게 보이는 것들이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 잘 식별해야 하는 법입니다. 하느님 없이 그 모든 것은 그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삶의 반석이 될 때, 그래서 나의 삶이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에 기초할 때 그때만 우리의 삶은 굳건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과 가르침을 결코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내면과 행동이 다르게 하지 않으십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휘둘리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여 당당하십니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라 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우리에게는 아담의 길과 예수님의 길이 함께 열려 있습니다. 아담의 길은 죄와 죽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외적으로는 멋있어 보입니다. 세상의 권력이 그 안에 함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속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으로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외적으로 크고 강하게 보이는 것에 매달립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그러합니다. 그렇게 악인들이 판을 칩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올바름과 선하심이 아니라 세상의 욕망과 이익에 매달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신 길에 동참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길과 달리 참으로 올바르고 선한 삶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섬기는 길로 우리를 초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죽음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결국 영원한 생명을 주는 승리의 길은 예수님이 가신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어느 사회의 지도자가 아담의 모습을 지니면, 그 사회는 결국 죄의 사회가 되고, 그 끝은 죽음이고 멸망입니다. 아무리 외적으로 좋은 말로 치장해도 그 결과는 결코 좋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시는 하느님께서 결국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 지도자가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는 그만큼 그 사회는 밝아지고 번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내면이 중요합니다. 힘을 지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참되게 하느님을 섬기는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서로 참으로 사랑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의 참 양식이 되십니다. 우리를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섬기십니다. 예수님이 지도자 중의 지도자이시고, 우리의 참 구세주이십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는 분이십니다. 사이비 교주는 양들을 잡아 자신의 욕심을 채웁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조금이나마 본받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이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