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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림의 소리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 주어라.

작성자현림|작성시간26.06.11|조회수15 목록 댓글 0

 

진주를, 그 귀한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 준다.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아니, 돼지가 그 진주가 무어인지 알기나 하는 것인가?

대상을 가려 줄 것을 주어야지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숨은 참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준다는 말은

<준다>라는 말에 숨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준다는 것은 베풂을 의미한다. 그 베풂은 진실한 베풂이어야 한다.

진실한 베풂이란 종교적인 말을 빌리자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자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다.

또한 무엇을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주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준다>라는 이 행위다. 여기에 이 말의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준다, 베푼다는 말을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언제나 <나>가 숨어있고, 조건이 따르고 이유가 따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교리를 보자.

경전을 보면 삼대 자비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이고, 둘은 법연자비(法緣慈悲)이고

셋은 무연자비(無緣慈悲)다.

 

중생연자비는 친한 자나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하는 자비다.

혈족을 따지고 지연과 학연을 따지고 <나>와 관련하여 이해득실 등등

연고가 있는 자를 선택하여 베푸는 자비다. 이에 비하여

법연자비는 인연의 연고나 친소(親疏)가 아니라

오로지 법의 진위(眞僞)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교리상으로 이에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비다.

흔히 배웠다는 사람들이나 수행자들이 말하는 자비다.

경전에서 이를 성인이 베푸는 자비라고 말한다.

세 번째 무연자비는 이러한 모든 차별을 초월한

절대 평등의 마음에서 나오는 자비다.

일체의 차별을 벗어난 자비이기에 이를 부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 한다.

<지도론>27에는 이를

「大悲는 一切衆生에게 樂을 주는 것이고,

大慈는 일체중생의 苦를 없애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왜 <중생>이라고 하지 않고 <일체중생>이라고 했을까?

일체중생이라고 한 말은 생명이 있는

유정물(有情物)이나 무정물(無情物)을 포함한 일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정이나 무정이라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베푸는 대상을 제한하지 않고

오로지 <준다>, <베푼다>는 행위만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의 두 가지 자비는 조건이 따른다.

중생연자비는 중생과 친소의 인과관계가 따른 것이다.

법연자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 번째 부처님의 무연자비는 대상에 대한

일체 차별이나 분별 의식에 따른 친소(親疏)도, 교리나 이념을 벗어난 자비다.

여기에 <준다> <베푼다>다는 행위의 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비행(慈悲行)은 보시(布施) 행위(行爲)로 드러난다. 보시를

경(經)에서 “주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주는 물건도 없고 받은 물건도 없다라는 마음이라야 한다.”라고 말한다.

『관찰제법행경(觀察諸法行經)』에서 자비를 빌어 이렇게 말한다.

()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갖는 것이며,

()에 대하여 순순히 받아들여라.”

차별 짓지 않는 마음이 평등한 마음이며,

위선이나 거짓이 아닌 마음이라야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수용할 수 있고 공덕이 된다는 의미다.

베풀지만 베푸는 자가 없었으니 베푸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주는 자가 없으면 베풂을 받는 자도 없는 것이다.

주면서 내가 무엇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주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선 단체에 무엇을 기증하고 생색내듯이

단지 <>의 이해득실을 따른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베푼다는 생각도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것도 없는

그러한 베풂이어야 진정한 자비가 되고 보시가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들판의 꽃과 같은 것이다.

시절 인연을 만나면 꽃은 피고 향기를 뿜어내지만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님과 같은 것이다.

그 향기는 성자와 범부를 가리지 않고,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리지 않는다.

꽃은 만인을 위해 피고 그 향기는 만인이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베푸는 마음 즉 보시하는 마음은 그러한 마음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도 내어주라라는 말도

사랑과 자비는 조건이 붙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말한 것이다. 베풂의 마음에는 분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랄하고 잔인한 인간에게는 오로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있을 뿐이지

용서와 자비는 말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알고 저질은 잘못 보다 모르고 저지른 죄가 더 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르면 다시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어리석은 자에게 그 어떤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도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랑과 자비를 베풂에 조건을 붙이면 긍정도 되고 부정도 된다.

긍정과 부정은 思考의 차원이다. 좋다 나쁘다는 감정의 차원이다.

그러나 진리는 이 사고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진리를 이해하게 되면, 체험하게 되면, 거기 긍정도 부정도 있을 수 없다.

사랑과 자비의 뿌리는 이러한 마음을 근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과 자비에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크라테스의 말뜻은 그대 속에 있는 살인자,

죄인, 성자, 신, 악마 등,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네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별하는 마음, 차별 짓는 마음을 버리라는 의미다.

마음에 살인자, 죄인, 악마가 움직인다면 매사 부정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고,

마음에 성자나 선한 자가 자리한다면 모든 것이 긍정으로 돌아설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원숭이 같아서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사고(思考)의 관념이나 호(好) 불호(不好) 감정도 상황 따라 뒤바뀐다.

나의 이해득실에 따라 언제나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이유와 조건을 달아 이를 합리화하려 든다.

이러한 마음으로 행하는 사랑이나, 자비행의 보시는 진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베풂은 차별도 없어야 하고

그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베풂은 곧 진리에 들어가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자비의 보시행 즉 <베푼다>. <준다>는 행위는

진리를 향한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에서 보살 수행의 근본은 육바라밀을 들고 있다.

육바라밀의 첫째는 보시 바라밀이다.

<구사광기(俱舍光記)>18에 이르기를

“바라밀은 원만 공덕으로

도피안(열반)에 이르기 때문에 바라밀이다”라고 했다.

보시바라밀은 재물(財物)보시, 법(法)보시,

무외(無畏)보시 등의 대행(大行)이다.

이 대행(大行)은 나고 죽은 이곳에서 불생불멸(不生不滅) 하는

열반의 저곳에 이르는 배(船)와 같음으로 바라밀이라 한다고 했다.

열반은 자타(自他)가 없는 세계다. 생(生)과 사(死)가 없는 세계다.

차별이나 어떤 조건이 허용되지 않은 세계다.

그러므로 보시바라밀은 열반으로 가는 배라고 비유한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베풂은 곧 주는 행위다.

불교의 자비는 보시행으로 행해진다.

이 준다는 행위는 바로 이러한 마음이 되어야

진정한 주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주는 행위 곧 베풂의 행위를 두고 긍정과 부정을 나열하고

그 정당성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거기 오직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싸움이 있을 뿐

찾으면 다시 잃어버리고 또 찾으면 다시 잃어버리고.

불행의 이 연속이여

 

그러나 실은 찾을 것도 없고 잃어버릴 것도 없는데

우리는 오직 시도할 뿐

휴식이란 여기 있을 수 없다.”

~TS 엘리엇 시에서~

 

<베푼다>는 마음은 그것이 사랑이든, 자비이든

그 행위 속에 일체의 분별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별심을 놓아 버린 그 마음이 곧 사랑이요

자비요 보시행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별이 분별을 낳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하기 위한

또 다른 분별심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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