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족보.
(요약하여)
효경황제의 14아들 중 7째
중산정왕 유승 > 육성정후 유정 > 패후 유앙 > 장후 유록 > 기수후 유연 > 흠양후 유영 > 안국후 유건 > 광릉후 유애> 교수후 유헌 > 조읍후 유서 > 기양후 유의 > 원택후 유필 > 영천후 유달 > 풍령후 유불의 > 제천후 유혜 > 동군범령 유웅 > 유홍 > 유비.
종합하자면 한(漢) 경제(景帝)의 19대 현손(玄孫)이 된다. 그러나 정사와 당시 중국 지역을 고려하여 평가 하면 결과적으로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가보>는 허구다. 그 증거를 들자면,
1.정사에 기록된 이는 유승, 유정, 유웅, 유홍 만이 등장하며, 『삼국지』와 『화양국지』에 의하면, 유승의 아들 유정은 한(漢) 무제(武帝) 원수(元狩) 6년(기원전 117년)에 탁현 육성정후로 봉해진다. 그러나 훗날 조정의 규정에 따른 주금(제후가 고조(高祖)의 제사를 위하여 황제에게 헌납하는 황금)을 헌납하지 않아 작위를 박탈당한다. 이로 인해 유정의 가계가 일찍히 몰락했음을 보여준다.
2.유정이 후작(後爵)을 잃은것이 분명한데 그의 아들 유앙이 패후(沛候)로 봉해 진 것이 허구다.
3.장후, 기수후, 흠양후, 교수후, 조읍후 등에 장(章), 기수(汽水), 흠양(欽陽), 교수(膠水), 조읍(祖邑) 등의 명칭들은 하천의 이름이거나 순전히 날조된 한대에 있었던 현읍이 아니다.
4.광릉후 라는 후작이 나오나 광릉은 왕국명(王國名) 이기 때문에 광릉왕만이 존재 한다. 영천후 또한 군명이고, 그관할지에는 영양현,영음현 이라는 현명은 있어도 영천현은 없다.
결과론적으로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족보>는 나관중의 화려한 필치로 만들어진 가상 족보이다. 덧붙이자면 유비가 헌제의 황숙이라는 부문 또한 허구 이다. 헌제 유협은 광무제(光武帝) 유수의 8대 현손이고, 또 경제 14대 현손이다. 그러므로 헌제가 오히려 유보다 항렬이 높다. 과연 유비가 한왕조의 후손 이였는지는 여러 풍파로 인해 모호해진 가보로 인해 여러 추측만이 난무하다.
(요약하여)
효경황제의 14아들 중 7째
중산정왕 유승 > 육성정후 유정 > 패후 유앙 > 장후 유록 > 기수후 유연 > 흠양후 유영 > 안국후 유건 > 광릉후 유애> 교수후 유헌 > 조읍후 유서 > 기양후 유의 > 원택후 유필 > 영천후 유달 > 풍령후 유불의 > 제천후 유혜 > 동군범령 유웅 > 유홍 > 유비.
종합하자면 한(漢) 경제(景帝)의 19대 현손(玄孫)이 된다. 그러나 정사와 당시 중국 지역을 고려하여 평가 하면 결과적으로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가보>는 허구다. 그 증거를 들자면,
1.정사에 기록된 이는 유승, 유정, 유웅, 유홍 만이 등장하며, 『삼국지』와 『화양국지』에 의하면, 유승의 아들 유정은 한(漢) 무제(武帝) 원수(元狩) 6년(기원전 117년)에 탁현 육성정후로 봉해진다. 그러나 훗날 조정의 규정에 따른 주금(제후가 고조(高祖)의 제사를 위하여 황제에게 헌납하는 황금)을 헌납하지 않아 작위를 박탈당한다. 이로 인해 유정의 가계가 일찍히 몰락했음을 보여준다.
2.유정이 후작(後爵)을 잃은것이 분명한데 그의 아들 유앙이 패후(沛候)로 봉해 진 것이 허구다.
3.장후, 기수후, 흠양후, 교수후, 조읍후 등에 장(章), 기수(汽水), 흠양(欽陽), 교수(膠水), 조읍(祖邑) 등의 명칭들은 하천의 이름이거나 순전히 날조된 한대에 있었던 현읍이 아니다.
4.광릉후 라는 후작이 나오나 광릉은 왕국명(王國名) 이기 때문에 광릉왕만이 존재 한다. 영천후 또한 군명이고, 그관할지에는 영양현,영음현 이라는 현명은 있어도 영천현은 없다.
결과론적으로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족보>는 나관중의 화려한 필치로 만들어진 가상 족보이다. 덧붙이자면 유비가 헌제의 황숙이라는 부문 또한 허구 이다. 헌제 유협은 광무제(光武帝) 유수의 8대 현손이고, 또 경제 14대 현손이다. 그러므로 헌제가 오히려 유보다 항렬이 높다. 과연 유비가 한왕조의 후손 이였는지는 여러 풍파로 인해 모호해진 가보로 인해 여러 추측만이 난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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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조조최고★ 작성시간 04.06.06 님의 생각도 써주시면 더 좋겠군요 ;; 저같으면 솔직히 말해서 유비의 그 한황실 후손이라는 점은 성만 똑같지 어떤 세력을 모으기 위한 하나의 계산 내지 정책이었다고 봅니다 ; 딱히 그럴 증거가 없지만 유비도 결국 한황실 운운 하면서도 자기가 황제에 오르는 것이나 착한 척(?)하면서도 익주를 흡수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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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조최고★ 작성시간 04.06.06 어떤 정복 사업에 대한 실마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확실한 한황실의 후손인 유장을 칠때는 특히 그러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