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탐사대] 20 꽃무릇으로 장엄한 불국토 나툰 지장보살
18. 전북 고창 선운사
꽃무릇과 동백꽃으로 장엄된 경내
참배 후 만세루서 차한잔 여유도
지장보궁이란 너무도 큰 이름에서
지장보살 대한 대중의 존경 짐작
선운사 만세루. 법당 불사 후 남은 부재를 이용해 지은 이곳은 시주자의 물건을 함부로 하지 않는 사찰 대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현재 사찰을 찾는 사람이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꽃무릇과 동백꽃으로 장엄하다
‘동백꽃’ 하면 떠오르는 절이 있다. 바로 전북 고창 선운사다. 선운사 동백꽃은 4월 말 무렵에 활짝 핀다. 이때쯤 대웅보전 뒤쪽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84호) 앞에는 인생샷을 찍고자 많은 사람이 붐빈다. 그런데 4월이면 겨울이 아니라 봄이다. 그래서 선운사 동백은 동백이 아니라 춘백이라 해야 한다나.
또 선운사는 9월 중순부터 만발한 꽃무릇으로도 유명하다. 사찰 입구부터 꽃무릇이 붉은빛으로 선운사를 장엄한다. 선운사, 전남 영광 불갑사, 전남 함평 용천사는 꽃무릇 군락지 3대 사찰이라고 할 정도다. 꽃무릇, 혹은 상사화의 꽃말인 ‘슬픈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독성이 있는 꽃무릇 뿌리의 추출물을 탱화나 단청에 바르면 좀이나 벌레 등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사찰에 꽃무릇 군락지가 많은 이유다.
이처럼 동백과 꽃무릇으로 널리 알려진 선운사이지만, 눈여겨봐야 할 것이 많다. 사찰 입구 개울 건너 용솟음치듯이 바위를 타고 오르는 덩굴나무인 송악(천연기념물 367호), 부도밭에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비문, 무섭기보다는 다소 해학적인 모습인 사천왕, 사천왕문과 대웅보전 사이에 있는 만세루, 대웅보전과 그 안에 모셔진 삼존불, 대웅보전 불단 뒤 벽화 속 관세음보살과 금강역사, 대웅보전과 쌍둥이 건물인 영산전, 화재와 도난 등 여러 고난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몸을 나투고 계신 지장보살 등등.
그 가운데 만세루가 가장 정이 간다. 만세루는 대웅보전 앞에 있는 강당이다. 만세루가 그토록 정이 가는 이유는, 그 건물을 이루고 있는 기둥과 대들보 등 건축 부재 때문이다. 기둥과 대들보 등이 특이하다. 다듬어진 나무가 아니라 다듬지 않은 울퉁불퉁한 통나무나 토막나무를 이었다. 그리고 두 갈래로 나뉜 나무는 대들보 위에 자리하여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법당 불사 후 남은 자투리 부재 등을 이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시주자의 물건을 함부로 하지 않는 사찰 대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 눈에는 쓸데없고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자기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굽은 나무는 굽은 나무대로, 곧은 나무는 곧은 나무대로, 자투리 나무는 자투리 나무대로, 다 소중하다는 가르침이다.
현재 선운사 만세루는 사찰을 찾는 사람이 차를 마시며 쉴 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찰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여러 법당을 참배한 뒤, 만세루에 앉아 차 한잔하는 여유를 가져보심이.
선운사 만세루 내부.
대중의 정성으로 연못을 메워 절을 세우다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첫 번째 설이다. 신라 진흥왕(재위 기간 540∼576년)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었다. 이에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 선운사, 도솔사 등을 창건하였다. 현재 도솔암 조금 못 미쳐 진흥굴이 있다. 진흥왕이 묵었다는 그 굴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심한 백제의 영토였으므로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세웠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 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 선사의 창건설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검단 선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있다. 선운사 미륵바우(바위)가 설화 하나를 전하고 있다. 미륵바우는 도솔암으로 20분 정도 가는 길에 있다.
선운사가 있는 자리는 원래 용이 살던 큰 연못이었다. 검단 선사가 연못의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 나갔다. 이때 마을에서는 눈병으로 힘들어했다. 수도하던 검단 선사 앞에 미륵부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미륵바우 아래의 돌과 숯을 연못에 던지면 눈병이 나으리라.”
검단 선사는 이 말씀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미륵바우 아래의 돌과 숯을 가져다 던져 연못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눈병은 저절로 낫고, 연못도 금방 메워졌다. 이후에도 사람들은 미륵부처님이 나타났던 미륵바우에 정성을 다하였다. 정성에 응답하여 사람들의 병이 낫고 근심 걱정도 사라졌다. 미륵바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연못이 메워진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다. 검단 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定)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
또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다. 검단 선사는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매년 봄가을로 절에 소금을 공양 올렸다.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한다. 마을 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염전을 일구어 재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검단 선사가 절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마을 사람을 힘들게 하던 도적 등을 연못의 용으로 비유하고, 대중에 대한 검단 선사의 자비 방편을 이러한 설화로 전하는 것은 아닌지.
지장보궁의 지장보살. 일본 도굴범이 1936년 훔쳐간 것을 2년 만에 다시 되찾아 모셨다.
현몽으로 다시 돌아온 지장보살상
선운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보기 힘든 이름의 법당이 있다. 바로 지장보궁이다.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을 보통 ‘지장전’, ‘명부전’이라 한다. 그런데 지장보궁이라니, 너무도 큰 이름이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처럼 보궁은 전(殿)보다 격을 높인 법당이다. 지장보살에 대한 선운사 대중의 믿음과 존경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 지장보살상의 신통한 능력 이야기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지장보살상은 성종 7년(1476)에 높이 1m의 좌상으로 금동으로 조성되었다. 선운사가 모두 불에 탄 정유재란 때도 지장보살상은 화를 면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본인이 훔쳐 갔는데, 이를 되찾아 다시 선운사에 모셨다. 그 사연이 이렇다.
1936년 여름, 일본인 2명이 우리나라 도굴범과 함께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을 훔쳤다. 그리고 거액을 받고 일본으로 팔아넘겼다. 그런데 이때부터 지장보살은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지장보살상을 산 일본인은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지장보살상과 똑같은 지장보살이 나타나 말하였다.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하루빨리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
그 일본인은 이상한 꿈으로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꿈에 계속해서 나타나고, 이후로 일본인은 병이 들고 가세가 기울었다. 꺼림칙한 마음에 지장보살상을 다른 이에게 넘겼다. 소장자가 바뀌어도 꿈은 계속되었다. 지장보살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에 나타나 고향 도솔산을 언급하며 돌려보내기를 요구하였다. 그 역시 이를 무시하였고,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상황은 반복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소문은 퍼져나갔다. 그러자 마지막 소장자는 이러한 사실을 고창경찰서에 신고하고서 모셔가기를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 11월, 당시 선운사 스님과 경찰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모셔왔다. 지장보살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보살이신데, 중생을 그렇게 아프고 힘들게까지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도할 수 없는 중생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비란 단순하게 ‘오냐, 오냐.’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참당암, 도솔암으로 향해 걷는다.
▶한줄 요약
4월엔 동백꽃, 9월엔 만발한 꽃무릇으로 유명한 선운사는 사찰 입구 개울 건너 바위 타고 오르는 덩굴나무 송악,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비문, 사천왕, 만세루, 대웅전과 삼존불, 벽화 속 관세음보살과 금강역사 등 눈여겨봐야 할 것이 많다. 그 가운데 만세루가 가장 정이 가는데, 다듬지 않은 통나무와 막대나무로 지은 모습에서 굽은 나무는 굽은 나무대로, 곧은 나무는 곧은 나무대로, 자투리 나무는 자투리 나무대로 다 소중하다는 가르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