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탐사대] 21. 미륵불 오시기 전 중생제도하는 지장보살
19. 전북 고창 선운산 지장도량 삼사 순례
선운사·참당암·도솔암
두건 두른 지장보살 눈길
모든 중생 제도 발원 올려
참당암 전경. 참당암은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이 둘이다.
삼사 순례는 세 곳의 사찰을 순례하며 신심과 공덕을 키우는, 사찰의 중요한 행사다. 100일 기도, 49일 기도 등을 끝내고 마무리하는 행사로 삼사 순례를 진행하거나, 주제를 정하여 삼사 순례 자체를 하나의 큰 행사로 진행하거나 한다. 만일 지장(地藏) 신앙과 관련하여 삼사 순례를 하고자 한다면, 전북 고창 선운산(도솔산)에 자리한 도량인 선운사, 참당암, 도솔암을 연결하는 삼사 순례를 권하고 싶다. 세 곳 모두 대형 버스로도 갈 수 있으며, 도보로는 선운사에서 출발하여 다시 선운사로 돌아오기까지 걷는 시간만 대략 3시간 내외다.
선운사 지장보궁의 금동지장보살, 참당암 지장전의 석조지장보살, 도솔암 도솔천 내원궁의 금동지장보살은 선운산 지장 삼장(三藏)이라 불린다. 삼장은 천장(天藏)보살, 지지(持地)보살, 지장(地藏)보살이다. 천지인(天地人)사상에 의거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신앙이라 한다. 도솔암 도솔천 내원궁에는 하늘 중생을 교화하는 천장보살, 참당암 지장전에는 지상 세계를 보살피는 지지보살, 선운사 지장보궁에는 전생의 잘못을 참회하여 지옥의 고통을 면하게 도움을 주는 지장보살을 모셨다.
현재 세 보살상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부분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장보살상은 삭발한 모습이거나 두건을 두른 모습이다. 이 세 곳의 지장보살은 모두 두건을 두르고 있다. 두건을 쓴 지장보살은 고창 선운사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지장 신앙을 잘 전해준다. 특히 그림이 아닌 불상으로 안치된 점이 매우 특징인 점에서 지장 도상(圖像) 연구에 귀중한 사례다. 지장보살이 삭발한 모습은 〈지장경〉에 의거하며, 두건을 쓴 모습은 중국 〈환혼기(還魂記)〉에 있는 이야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에 도명 스님이 있었다. 그런데 동명이인이 있어 저승사자의 착오로 명부에 갔다가 다시 세상에 살아 내려왔다. 이 스님이 저승에 가서 지장보살의 모습을 보니, 지장보살은 두건을 쓰고 영락을 두르고 석장(錫杖)(지팡이)을 들고 보배 연꽃을 밟고 사자를 데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후 법당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이 등장하였다.
한편 세 사찰의 지장보살이 계신 법당 현판은 제각각이다. 보통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은 명부전 또는 지장전이다. 그런데 지난 선운사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운사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처럼 전(殿)보다 격을 높인 지장보궁이다. 그리고 참당암은 지장전이고, 도솔암은 도솔천 내원궁이다. 그 사연은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참당암 지장전 석조지장보살좌상.
지장보살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보살
참당암(懺堂庵)은 선운사와 도솔암의 유명세에 밀려 그렇게 순례자의 발길이 많지는 않다. 세 곳 모두 순례하려니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한번 발길을 하면 다시 가보게 되는 사찰이 바로 참당암이다. 선운사에서 도솔암 가는 길 중간쯤 오른쪽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선운산 깊은 곳에 넉넉한 터가 나타난다. 황량하게 넓지도 않고, 그렇다고 답답하게 좁지도 않다. 참으로 넉넉한 터다. 그 터에 여러 전각이 있다. 대웅전, 응진전·명부전, 지장전, 산신당, 요사채 등이다.
참당암은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이 둘이다. 각각 지장전, 명부전 현판이 걸려 있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시왕이 있고, 명부전 뒤 별도의 지장전에는 석조지장보살이 있다. 지장전은 한때 약사전, 석조지장보살은 약사여래였다. 병을 낫게 해준다는 소문이 많이 났다. 약사여래처럼 손에 약함을 들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전에 따르면, 지장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으로도 나타나니, 잘못 보았다고 할 것도 없다. 여하튼 이 석조불상은 1973년 ‘선운사 약사여래불상’이라는 명칭으로 전북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으로 명칭이 변경됨과 동시에 보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약사전은 지장전이 되었다. 참당암에 명부전과 지장전이 각각 있는 이유다.
참당암은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암자다. 본래 이름은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였다. 선운사 암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다. 그래서 창건 이야기를 선운사와 공유하기도 한다. 그 창건 이야기가 재미있다. 지금 선운산은 저 너머에 논밭이 펼쳐져 있어 내륙에 속하는 편이지만, 그 당시에는 산 너머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산 아래의 포구에 범음을 울리며 돌배가 다가왔다. 사람들이 끌어올리려 했으나 배는 자꾸 바다 쪽으로 떠나갔다. 의운 선사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바닷가로 가니 배가 저절로 다가왔다. 배 안에는 금인(金人)이 나타나 여러 불상과 경전 등을 전해주었다. 스님은 금인과 함께 절을 세울 곳을 찾았으나 적당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스님 꿈에 우전국(인도) 왕이 나타났다. “저는 불경과 불상을 모신 성지를 찾기 위하여 해동의 여러 산을 돌아다녔습니다. 이곳 선운산에 대참(大懺)의 기가 있고 절을 세울 신령스러운 서기가 하늘에 뻗쳐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곳에 절을 지어 불경과 불상을 모셔 주시길 바랍니다.” 대사는 마침내 산 가운데 터를 잡고 절을 창건하였다.
이 이야기는 조금씩 각색되어 선운사 창건 이야기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때에는 의운 선사가 아니라 검단 선사가 등장하고, 꿈이 아니라 금인에게 받은 편지로 된다. “이 배는 우전국(인도)에서 왔으며 배 안의 부처님을 인연 있는 곳에 모시면 길이 중생을 제도 이익케 하리라.” 전해지기를, 선운사는 검단 선사가 577년(백제 위덕왕 24년)에 창건하였고, 참당암은 의운 선사가 581년(위덕왕 28년) 창건하였다.
도솔암 도솔천 내원궁 금동지장보살좌상.
미륵불 오시기 전까지 중생 제도하는 지장보살
도솔암은 선운사와 함께 창건되었다. 도솔암이라는 이름은 미륵 신앙과 관련이 있다. 미래에 오실 미륵부처님은 현재 미륵보살로서 도솔천 내원궁에서 설법하고 있다. 불교에는 여러 하늘이 있다. 욕계천, 색계천, 무색계천 등이며, 각각에 또 여러 하늘이 있다. 도솔천은 욕계 6천(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낙변화천, 타화자재천) 가운데 네 번째 하늘이다. 그 도솔천 가운데 내원궁이 있다.
도솔암에는 ‘도솔천 내원궁’이라는 현판이 걸린 법당이 있다. 그런데 그곳에 미륵보살이 아닌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왜 도솔암의 도솔천 내원궁에는 지장보살을 모셨을까? 한때 미륵보살을 모셨다가 폐허가 된 후, 불사를 다시 하여 지장보살을 모셨는데, 이름은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지장경〉에 그 나름의 근거가 있다. 〈지장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은 지장보살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미륵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시기 전까지 그대가 중생들을 제도하도록 하라.” 이에 지장보살은 발원하였다. “제가 부처님 말씀을 받들어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육도 중생을 해탈케 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에 따라 도솔암 ‘도솔천 내원궁’에는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지장보살을 ‘지옥 중생이 한 중생이라도 남아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발원한 보살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장경〉에 의하면, 지옥 중생만이 아니다.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하였다. 또 〈지장경〉에 있는 저승과 지옥, 망자를 위한 기도 등의 내용으로 내세 신앙으로 받아들이는데, 이 또한 그것만이 아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이 땅의 중생을 제도할 보살이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부처님 공백기’ 동안의 부처님 권한 대행이다. 혹은 담임이 잠시 없는 학급의 임시 담임이랄까.
따라서 지장보살은 지옥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 내세뿐만 아니라 현세에도 함께하는 보살이다. 삶에 지장이 있을 때 지장보살을 찾으시라. 물론 그전에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참회가 우선이다. 혹 지장보살을 친견하였다면 빨리 소원 서류를 작성하고 지장보살의 지장을 받으시라. 워낙 바쁜 분이라 혹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한줄 요약
지장보살은 지옥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 내세뿐만 아니라 현세에도 함께하는 보살이다. 삶에 지장이 있을 때 지장보살을 찾으시라. 물론 그전에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참회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