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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탐사대] 24 염라대왕이 묻는다 “고운사 명부전을 참배했는가?” 22 경북 의성 등운산 고운사

작성자박정근|작성시간26.06.20|조회수23 목록 댓글 0

[설화 탐사대] 24 염라대왕이 묻는다 “고운사 명부전을 참배했는가?”

22 경북 의성 등운산 고운사

 

여느 교구본사보다 한적한 사찰

최치원 불연 담긴 사찰명 눈길

호랑이 벽화 보며 참회 마음 지녀

 

고운사 가는 길, 솔굴.

 

고운사 와서 글 아는 체하지 말라

경북 의성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다. 현재 안동, 의성, 영주, 봉화, 청송 등의 약 60개 사찰이 고운사 말사로 소속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에는 직할교구(총무원 소속)를 포함하여 전국에 25개의 교구본사가 있다. 그리고 그 교구본사에 소속된 사찰은 모든 3000여 곳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교구본사는 경기도, 강원도와 같은 도에 비유하고, 교구본사에 소속된 사찰인 말사는 도에 소속된 군이나 시에 비유할 수 있다.

 

설화탐사를 하는 데 갑자기 교구본사니 말사니 말하는 이유는, 고운사는 교구본사인데도 너무도 한적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한적한 사찰인가 하면,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등과 같은 교구본사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의 사찰 입구는 사하촌의 가게들이 즐비해 있지만, 고운사 입구에는 사하촌은커녕 작은 구멍가게도 없다. 자동차로 20여 분 단촌면으로 나가야 식당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황당한 상황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 근래에 안부를 나눈 지인도 그런 경험을 언급하였다. 저 멀리 부산에서 일행과 함께 고운사로 향하였다. 고운사에 도착하기도 훨씬 전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일행은 이왕이면 고운사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50여 분을 달려 고운사 앞에 도착하였다. 그다음 상황은 여러분이 상상해보시라.

 

고운사는 깊은 산중에 있는 절이라 공부하기에는 참으로 적당한 도량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 찾아왔다. 이에 전해지는 말이 있다. “고운사에 와서 글 아는 체하지 말라.”

 

高雲寺에서 孤雲寺

필자가 처음 고운사를 찾아갔을 때가 200111월 중순이었다. 그 당시 뚜벅이 순례객이었던 필자는 안동에서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를 타고 고운사에 갔다. 종점인 고운사에 내리자 고요함이 밀려왔다. 우리 두 명뿐이었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나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주었다. 이 길은 좌우로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어 솔굴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지금은 절 입구에 騰雲山 孤雲寺’(등운산 고운사) 현판이 걸린 커다란 산문이 있다. 산문에서 약 500m 걸어가면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에도 騰雲山 孤雲寺현판이 걸려 있다. 등운은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뜻이다. 고운은 고운(孤雲) 최치원(857~?)에서 왔다. 일주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계곡 위에 지은 전각인 가운루(駕雲樓)가 있고, 그 옆으로 우화루(雨花樓)가 있다. 가운은 구름을 타다는 뜻이고, 우화는 꽃이 비처럼 흩날리다, 꽃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가운루와 우화루를 처음 세운 이가 최치원이다. 다음은 1918년 세운 고운사사적비의 내용 일부를 정리해보았다.

 

676(문무왕 16) 의상 스님(625~702)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여러 사찰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681(신문왕 원년) 웅장하고 봉우리와 계곡이 아름다운 등운산에 절을 창건하고 고운사(高雲寺)라 이름하였다. 이후 고운(孤雲) 최치원은 여지 스님, 여사 스님 두 분과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웠다. 그리고 사찰 이름을 고운사(孤雲寺)로 바꾸게 되었다.

 

최치원은 유교, 불교, 도교에 이해가 매우 깊은 신라의 학자(?)였다. 옛글에 의하면,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지리산 등지를 돌아다니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하고, 그가 머물던 집에 신발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채 그의 흔적만 사라졌다 한다. 입산 후 어떻게 살았는지 생을 어떻게 마감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야산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이에 고운사의 불사 공덕으로 그의 호를 따라 高雲寺(고운사)에서 孤雲寺(고운사)로 바뀌게 된 사연은 보통 불연(佛緣)이 아니다. 현재 고운사 산문에 이르기 전 오른쪽에 최치원 문학관이 있고, 해마다 최치원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고운사 약사전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아니라 약사여래불

1992년도에 완공된 대웅보전 옆에 약사전이 있다. 약사전 안에는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이라는 이름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9세기의 특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단다. 고운사사적비에 의하면, 신라 말의 고승인 선각국사(先覺國師) 도선(道詵) 스님(827~898)의 발원으로 약사여래불을 조성하였다. 그런데 9세기라는 추정에 최치원과 상관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2001년 필자가 고운사 약사전을 참배할 때, 불교 문화를 보는 눈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였다. 그 당시 고운사 약사전 앞에는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좌상이라는 문화재청의 안내문이 있었다. 즉 약사전에 모신 부처님은 약사여래가 아니라 석가모니불이라는 것이다. 선정인과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니, 수인으로 보면 석가모니불이다. 그런데 불상 옆에는 수인으로 부처님을 구분하는 것은 근대 학자들의 주장이다라는 글이 있었다. 그리고 고운사 측에서는 약사여래부처님으로 모시고 있었다.

 

현장에서 불교 문화를 접한 필자는 참으로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가령 선정인과 항마촉지인을 한 경주 석굴암 부처님을 석가모니불로 대부분 주장하지만, 아미타부처님으로 보는 이도 있다. 지난 호에 언급한 영주 부석사 아미타부처님도 마찬가지다. 수인이 부처님을 구분하는 하나의 참고 사항은 될 수 있으나, 전부는 아니다.

 

고운사 측의 마음이 어느 정도 전해졌으니, 2010825일 고운사 약사전 부처님은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약사여래라는 명칭은 빠져있다. 대부분 약사여래는 선정인을 한 손 위에 약그릇(약합)이 놓여 있다. 그런데 고운사 약사불은 약그릇이 없다. 고운사 약사불을 약사불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약사 자격증에 해당하는 약그릇이 없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 옛날 면허 없이도 아픈 사람을 고쳤던 이가, 면허를 요구하는 시대에 와서 무면허 약사가 된 경우라고 할까나.

 

고운사 우화루 호랑이 벽화.

 

고운사, 해동제일 지장도량

명부전에는 염라대왕을 중심으로 좌우로 합하여 열 분의 재판관인 시왕(十王)이 자리한다. 사람들이 죽으면 저승에 간다고 한다. 저승은 명부(冥府)라고도 한다. 명부는 다음 몸을 받기 전까지 다음 생을 결정하기 위해 재판을 받는 곳이다. 저승에서 재판은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열 번까지 열린다. 그래서 열 분의 재판관이 있다. 다섯 번째 재판관이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 앞에는 업경대(業鏡臺)가 있다. 이승에서 지낸 모습이 업경대에 그대로 나타난다. 또 업칭(業秤)이 있다. 재판 마지막에 업()의 잘잘못을 재는 저울()이다. 보통 아홉 번째 대왕에게 있다. 오늘날 사람을 못 믿어 AI(인공지능)가 판결해야 한다 생각하듯이, 옛사람도 시왕마저도 못 믿을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였나 보다. 그래서 최종 판결은 업칭으로 잰다. 여러 재판을 통해 정리한 서류를 업칭으로 업의 무게를 재어 다음 생이 정해지는 것이다.

 

업경대와 업칭을 사용한다고 하여 저승이 융통성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닌 듯하다. 지장보살이라는 변호사도 있고, 염라대왕도 중생을 위한 나름의 특권이 있다. 그래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묻는다. “의성 고운사 명부전을 몇 번이나 참배하였는가?”

 

물론 염라대왕이 서산 개심사 명부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 등도 언급한다. 그러나 고운사 명부전을 가장 영향력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고운사가 해동제일 지장도량으로 지장보살 영험 성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부전을 참배하였더라도 늘 조심해야 한다. 우화루 벽에는 우리를 지켜보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그 호랑이 눈은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마치 눈으로 말하는 듯하다. “명부전에서 참회한 마음 잘 지니도록 내가 늘 지켜보리라.”

 

한줄 요약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묻는다. “의성 고운사 명부전을 몇 번이나 참배하였는가?” 물론 염라대왕이 서산 개심사 명부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 등도 언급한다. 그러나 고운사 명부전을 가장 영향력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고운사가 해동제일 지장도량으로 지장보살 영험 성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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