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사찰 당우 중의 하나.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한다. '대웅'이란 부처의 덕호(德號)이다. 항상 사찰의 중심을 이룬다.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위에 불상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한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석가모니불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 좌우에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 삼세불(三世佛:석가모니불·미륵보살·갈라보살)과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삼신불은 대개 법신인 비로자나불, 보신(報身)인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대웅전에는 선종의 삼신설을 따라 비로자나불·노자나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천장에는 보상화무늬[寶相華紋]와 연꽃무늬 등을 조각하여 불전(佛典)에 나오는 천우보화(天雨寶花)의 의미를 상징한다. 대웅전에는 많은 탱화(幀畵)들을 봉안하는데, 석가모니불의 후불탱화로는 주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제자들을 모아 설법하는 광경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봉안한다. 그러나 주존불로 삼신불 또는 삼세불이 봉안될 경우에는 삼여래(三如來) 탱화를 모신다. 또한 신중(神衆)을 모신 신중단에는 신중탱화를, 영가(靈駕)를 모신 영단에는 감로(甘露) 탱화를 봉안한다.
충청남도 예산군의 수덕사대웅전(국보 제49호), 경상북도 안동시의 봉정사대웅전(보물 제55호), 충청남도 서산시의 개심사 대웅전(보물 제143호), 경상남도 양산시의 통도사 대웅전(보물 제144호), 충청남도 청양군의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제162호)·하대웅전(보물 제181호), 전라남도 구례군의 화엄사대웅전(보물 제299호),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대웅전(보물 제500호), 충청북도 청원군의 안심사대웅전(보물 제664호) 등이 대표적이다.
②극락전(極樂殿)-무량수전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堂宇) 중의 하나.
대웅전 다음으로 많으며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한다.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된다. 후불탱화로는 극락정토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주로 봉안하며, 그밖에 극락의 구품연화대를 묘사한 극락구품탱화(極樂九品幀畵)나 아미타탱화를 봉안하기도 한다. 극락정토왕생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대웅전과 견줄 만큼 화려하게 꾸몄다. 불단은 꽃무늬와 비천(飛天)으로 장식하고, 주불 위에는 닫집인 천개(天蓋)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나 극락조 등을 조각해 장식하기도 한다. 극락전이 본당인 절에서는 극락을 의역한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안양교·안양문·안양루 등을 갖추기도 한다. 무위사극락전(국보 제13호),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부석사무량수전(국보 제18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부석사 무량수전은 봉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주심포 사원건축 양식연구의 표본이기도 하다.
③미륵전(彌勒殿)-용화전
미래불인 미륵이 용화세계(龍華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사찰 당우(堂宇)중 하나.
용화전 또는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모신다고 해서 장륙전이라고도 한다. 법당 안에는 도솔천에서 설법중인 미륵보살을 봉안하거나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게 될 미륵불을 봉안하는데, 한국에서는 미륵불을 주로 봉안한다. 용화회상도(龍華會上圖)를 후불탱화로 봉안하는데 이는 용화수 아래에서 3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내용을 상징하는 것이다.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금산사(金山寺) 미륵전이 대표적인 예이다.
④대적광전(大寂光殿)-비로전, 화엄전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 사찰 당우 중의 하나.
화엄종의 법맥을 잇는 사찰에서 본전(本殿)으로 건립하며, 청정한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은 항상 고요와 빛으로 충만한 상적광토(常寂光土)에서 설법한다고 한 〈화엄경〉에 근거한다는 뜻에서 화엄전(華嚴殿),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봉안하므로 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한다. 원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보신불(報身佛)인 아미타불과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 즉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함으로써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종(禪宗)의 삼신설에 의해 비로자나불의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으며,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삼신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봉안하여 오불(五佛)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이는 약사전(藥師殿)과 극락전(極樂殿)을 대적광전에서 함께 수용한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중요하게 신봉되는 불·보살을 한 곳에 모아둔 셈이다.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약사불의 협시보살로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봉안한다. 후불탱화(後佛幀畵)로는 보통 법신탱·보신탱·화신탱 3폭을 각각 불상 뒤에 봉안하는데, 전각의 규모에 따라 1폭의 삼신탱(三身幀)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한 대적광전의 위치가 대웅전과 대등할 경우에는 신중을 모신 신중단(神衆壇)과 영가를 모신 영단(靈壇)이 함께 마련되며 신중단에는 신중탱화를, 영단에는 감로탱화(甘露幀畵)를 봉안한다.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의 대적광전과 전라북도 완주군 위봉사의 보광명전 등이 대표적이다.
⑤명부전(冥府殿)-시왕전, 지장전
사찰 당우 중의 하나.
시왕전(十王殿)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이 법당의 주불(主佛)은 지장보살이며 그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로 봉안하며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한다. 후불탱화로는 지장보살 뒤에 지장탱화를, 시왕의 뒤에 명부시왕탱화를 봉안한다. 명부전은 일반적으로 대웅전을 향해 우측편에 위치하며, 대표적인 예로는 강화도 전등사(傳燈寺)의 명부전과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禪雲寺)의 명부전을 들 수 있다.
⑥나한전(羅漢殿)
나한상(羅漢像)을 안치하는 사찰 당우(堂宇)의 하나.
석가모니를 주불(主佛)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한다. 500나한상을 모신 오백나한전과 16나한상을 모신 응진전(應眞殿)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백나한이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해 준다고 믿어 많은 나한전이 생기게 되었다. 경상북도 영천군 거조암 영산전(靈山殿)의 500나한상과 청도군 운문사의 오백나한전이 유명하다. 나한전에 봉안된 현존 나한상은 거의 조선시대 작품으로 다른 불교상들과는 달리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표정도 해학적이면서 인간적인 정취를 자아내므로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⑦응진전(應眞殿)
사찰 당우 중의 하나.
나한 중에서도 16나한을 모시는 건물로 나한신앙을 배경으로 조성된 것이다. 대개 응진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을, 그 주위에 16나한을 배치하고 끝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봉안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영사(佛影寺) 응진전(보물 제730호)이 대표적인 예이다.
⑧약사전(藥事殿)
약사여래불상을 봉안한 사찰의 불전(佛殿).
약사여래는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의 교주로서 과거 인행시(因行時)에 십이대원(十二大願)을 발하여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목숨을 연장시켜주며, 일체의 재앙을 소멸하고 의식을 구족하게 해주는 부처이다. 따라서 전각은 대개 동향으로 서 있으며, 불당 안에는 약사여래불상을 중심으로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안치한다. 후불탱화로는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東方藥師瑠璃光會上圖)가 봉안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의 약사전(보물 제179호)과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의 약사전 등을 들 수 있다.
⑨관음전(觀音殿)-원통전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시는 전각.
관세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다는 의미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이 안에는 관세음보살을 홀로 모시거나, 양류관음이나 해수관음(海水觀音) 또는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한다. 관음상은 대개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찰에 관음전이 있다.
⑩팔상전(八相殿)
석가모니의 생애를 8개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와 불상을 봉안한 전각.
우리나라의 절에서 언제부터 팔상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그 안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에 1381년(우왕 7) 건립된 안영사 7층전탑의 내부 벽 동쪽에는 〈약사회도 藥師會圖〉, 남쪽에는 〈석가열반회도 釋迦涅槃會圖〉, 서쪽에는 〈미타극락회도 彌陀極樂會圖〉, 북쪽에는 〈금경신중회도 金經神衆會圖〉를 그려 봉안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로 보아 고려말에 이미 불탑의 내부를 교화적 성격의 불화로 장엄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법주사의 팔상전, 쌍계사의 팔상전 등이 있다.
⑪삼성각(三聖閣)
한국불교의 사찰에서 삼신을 각각 안치하여 숭배하는 전각.
독성각(獨聖閣)·산신각(山神閣)·칠성각(七星閣)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獨覺)을 모신 곳이다. 독각은 석가모니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대승불교의 교학에서 독각은 타인을 위해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를 뜻하지만, 이 경우에는 좋은 의미의 독각이다. 산신각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조화하여 모신 곳이다. 따라서 삼성각은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 또는 민간신앙과 융합하여 빚어진 변용이다. 이런 식의 변용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히 목격되는데, 이질적인 신앙을 불교로 포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유도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나, 자칫 기복 위주의 주술적 신앙으로 불교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와 폐단도 있다. 실제 그러한 폐단이 있었음은 한용운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무속적인 산신과 칠성을 제거하고 석가모니불만을 봉안할 것을 주장한 데서도 알 수 있다.
⑫칠성각(七星閣)
인간의 수명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모시는 사찰 전각.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기우(祈雨)·장수·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칠성신에 대한 제사는 조정과 민간에서 계속되었으며, 이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사찰 안에 칠성각을 짓고 칠성신을 모시게 되었다. 칠성각은 조선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도 대부분의 사찰에 두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경우이다. 칠성각에는 칠여래(七如來)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탱화로 그려 봉안하고 있다.
⑬영산전(靈山殿)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묘법연화경을 설한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한 영산회도(靈山會圖)를 모시기 위하여 특별히 지은 전각이다. 영산회(靈山會)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이라는 곳에서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베풀던 모임이다. 아라한(阿羅漢;Arahan)은 모든 사람의 우러름을 받을 만한 사람이란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⑭대장전(大藏殿)
대장전은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축조한 전각을 말한다.
대장전이란 편액을 단 건물로는 경북 예천군 소재의 용문사(籠門寺) 대장전과 전북 김제군 소재의 금산사(金山寺) 대장전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천의 용문사 대장전은 인도의 고승이 대장경을 용궁에 소장하였다는 고사와 용이 나타났다는 창건설화 등에 의해 이곳에 대장전을 짓고 부처님의 힘으로 호국을 축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전각이다. 전각 내에는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 윤장대(輪藏臺)를 좌우에 각각 1기씩 설치하고 있다. 윤장대는 그 모습이 특이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그 예가 유일한 것으로 대단히 중요한 유물이다.윤장대는 바닥에 돌둔테를 놓고 중앙에 원형의 기둥을 세운다. 이 기둥에 의지하여 하대(下臺). 몸체. 옥개부의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하대에는 연꽃을 조각한 판재로 장식하고, 몸체에는 풍혈청판과 계자각으로 구성한 난간을 대고 기둥 사이에는 화려한 꽃살창과 살창을 대었다. 옥개부에는 닫집과 유사하게 짧은 기둥을 달고 연봉오리와 낙양각으로 장식하였다. 기둥 상부에는 다포식의공포에 금단청을 하고 겹처마 형태의 지붕의 씌워 마감하였다. 금산사의 대장전은 본래 미륵전 전면에 위치한 목탑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목탑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다만 지붕에 있는 복발과 원추형 보주(寶珠) 등의 일부 잔재에 의해 탑이 있었음을 어렴풋이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본래 목탑에 불상과 경전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므로 목탑이 변화하여 현재의 건물로 되면서 대장전이란 전각명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장전은 장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형 건물이다. 전체 규모는 아담하나 건물 내부에는 작은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고주(高柱)가 2개 서 있다. 고주에는 후면과 측면으로 퇴량(退樑)을 걸었으며, 다시 45도 방향으로 귀잡이보로 연결하였다. 전체 건물규모에 비해 다소 어색한 이러한 가구연결 방식은 대장전이 원래 목조 탑이였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국사전(國師殿)
우리 나라에서 고려 시대부터 나라의 스승이 될만한 스님을 국사(國師)라 하고, 왕의 스승을 왕사(王師)라 하였는데 이러한 국사(國師)를 모신 곳을 말한다. 순천 송광사에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이래 열 다섯 분의 국사가 나왔다 하여 16국사를 모신 국사전이 대표적이다.
조사당(調査堂)
조사전(祖師殿), 조당(祖堂)이라고 함 부처님의 법을 이어 온 조사(祖師) 스님을 모신 집, 처음에는 중국에 초조(初祖)이신 달마 대사를 모셨는데 뒤에는 한 종파를 세운 스님, 존경을 받을 스님 등을 모시고 나아가 그 절의 창건주, 역대 주지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시기도 한다
해탈문(解脫門)
말 그대로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문이다. 이 문은 정진(精進)을 촉진시키는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원래 지붕을 가진 일반적인 건축물이라고 하면 사방에 네 개의 기둥을 두어 지붕의 하중을 지탱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일주문은 한 줄로 나란한 두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지탱하며 서 있는 건축물이다. 일주문이란 명칭은 바로 이런 건축적인 특징에서 붙여지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일심(一心)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즉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일주문의 경지는 아직 무언가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이다. 다만 단호한 결심과 실천 의지를 보이면서 구도자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주문을 기준으로 중생이 사는 세상인 세간(世間), 그리고 속계(俗界)와 생사 번뇌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인 출세간(出世間), 즉 진계(眞界)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금강문(金剛門)
사찰건축에서 일주문(一柱門) 안쪽에 세운 문의 하나.
사찰에 따라 천왕문(天王門)을 세우기도 하며, 어느 경우에는 금강문과 천왕문이 함께 세워지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금강문이 천왕문 밖에 세워진다. 금강문은 보통 앞면 3칸, 옆면 1칸의 직4각형 평면을 이룬 단층집으로 건축된다. 중앙문은 앞뒤 모두 아무런 창호를 달지 않고 개방하며, 양 옆칸은 모두 벽체를 친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나 팔작지붕으로 꾸미고, 공포는 익공식(翼工式)이나 다포식(多包式)을 사용했다. 안에는 중앙문만 사람이 통행할 수 있게 하고, 양 옆칸에는 중앙 쪽으로 홍살을 세워 격리시키고, 그 안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을 세웠다.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사찰 안에 들어오는 모든 악귀(惡鬼)가 제거되어 가람(伽藍)의 내부는 청정도량(靑淨道場)이 된다는 것이다.
천왕문(天王門)-사천왕문,봉황문
봉황문이라고도 하며 본래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문이다. 동쪽의 持國天王(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깨서 삼보(三寶)를 지키시는 문이다. 나쁜 것을 깨 버리고 올바른 길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뜻이 있다. 지국천왕은 비파(琵琶)를 들고 증장천왕은 보검(寶劒)을 잡았으며 광목천왕은 용관,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을, 다문천왕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체로 이들 사천왕은 왼쪽에 동.남천왕, 오른쪽에 서.북천왕이 배치된다. 이 사천왕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神(신)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되었다.
범종각(梵鐘閣)
사찰에서 범종이 있는 곳을 말하며 전각이 2층의 누각일 경우에 범종루(梵鍾樓)라고 한다.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는데 그 까닭을 불이문과 관계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범종각에서는 범천(梵天)의 종소리가 흘러나온다. 힌두교의 창조신인 범천은 하늘에서 불이문으로 들어오는 구도자를 환영하고 그가 불이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하늘의 음악을 연주한다. 이 범천의 소리는 더 나아가 아직 불이문에 이르지 못한 구도자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일주문 바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의 번뇌를 씻어주는 부처의 소리인 것이다. 이 범종각에는 때로 범종만이 홀로 있기도 하지만, 규모 있는 절에서는 범종 외에도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등의 불전사물(佛殿四物)이 함께 배치하기도 한다.
요사(寮舍) : 절에 있는 중들이 거처(居處)하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