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깨달음에 이르는 길 ] <27> 여래의 다섯 가지 눈
미세한 번뇌까지 없어져 오롯하게 밝아
나 잘났다는 집착만 제거하면
바로 여래의 눈이 갖추어지니
행복한 부처님 삶이 드러날 것
우리 마음에서 무명번뇌를 없애면 무명으로 인한 고통의 세계가 사라지고 늘 행복한 부처님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부처님 마음에서 이루어지니 세상에 다툴 일이 없어 삶 자체가 편안하고 향기롭습니다. 이 마음으로 보는 세상을 ‘여래의 다섯 가지 눈’으로 풀이하여 대주 스님은 말합니다.
원문 번역: 문) 여래의 다섯 가지 눈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답) 대상을 보고 그 색이 맑고 깨끗한 줄 아는 것, 이를 일러 ‘육신의 눈(肉眼)’이라고 한다. 대상을 보고 그 바탕이 맑고 깨끗한 줄 아는 것, 이를 일러 ‘하늘의 눈(天眼)’이라고 한다. 어떤 경계나 온갖 선악에서 모든 것을 자세히 분별할 수 있으면서 조금도 집착이 없어 그 가운데 자유자재한 것, 이를 일러 ‘지혜의 눈(慧眼)’이라고 한다. ‘보되 보는 바가 없는 것’, 이를 일러 ‘법의 눈(法眼)’이라고 한다.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는 것조차 없는 것’, 이를 일러 ‘부처님의 눈(佛眼)’이라고 한다.
강설: 여기서 부처님의 다섯 가지 눈이 명칭이 다 달라 얼핏 모두 다르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칭만 다를 뿐 근본 내용은 다 같으니, 이는 부처님 마음자리에서 맞이하는 인연에 따라 붙인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육신의 눈으로 대상을 보고 그 색이 맑고 깨끗한 줄 아는 부처님 마음이 ‘육신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대상을 보되 그 바탕의 맑고 깨끗함을 알아차리는 부처님 마음이 ‘하늘의 눈’입니다. 어떤 경계나 온갖 선악에서 모든 것을 분별하되 조금도 집착이 없어 자유자재한 부처님 마음이 ‘지혜의 눈’입니다. 온갖 법을 보되 그 바탕이 공(空)이므로 주객으로 집착할 것이 없어 조금도 보는 바가 없는 부처님 마음이 ‘법의 눈’입니다. 일체가 공이어서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다는 것조차 없는 부처님의 마음’이 ‘부처님의 눈’이니, 왜냐하면 이 세상의 실상은 아무 것도 존재할 것이 없는 공(空)이기에, 여기서 볼 만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면 눈 먼 봉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육조스님도 <금강경>에서 오안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처음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것 이를 일러 ‘육신의 눈’이라 하고,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보고 애틋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 이를 일러 ‘하늘의 눈’이라 하며,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 이를 일러 ‘지혜의 눈’이라 하고,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이를 일러 ‘법의 눈’이라 하며, 미세한 번뇌까지 다 영원히 없어져 오롯하게 밝아 모든 것을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 이를 일러 ‘부처님의 눈’이라고 한다.”
“또 몸 가운데에 법신이 있음을 보는 것 이를 일러 ‘육신의 눈’이라 하고, 모든 중생이 저마다 반야의 성품을 갖추고 있음을 보는 것 이를 일러 ‘하늘의 눈’이라 하며, 반야바라밀에서 삼세 온갖 법을 만들어냄을 보는 것 이를 일러 ‘지혜의 눈’이라 하고, 모든 불법이 본디 저절로 갖추어져 있음을 보는 것 이를 일러 ‘법의 눈’이라 하며, 자신의 참 성품이 안팎으로 밝고 환하여 ‘나와 남이라는 분별’이 영원히 없어진 자리를 보는 것 이를 일러 ‘부처님의 눈’이라 한다.”
<열반경>에서 “대승(大乘)을 배운 사람이라면 ‘육신의 눈’이라도 ‘부처님의 눈’이라 부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나 잘났다고 집착하는 마음만 제거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여래의 다섯 눈이 갖추어지니, 생각 생각마다 여유롭고 행복한 아름다운 부처님의 삶이 드러날 것입니다.
[불교신문34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