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는 끝이 없다. 공부가 잘 되었다고 오만을 부리다가도 어느 경계에 부딪히면 자기 공부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 경전에 큰 공부는 선근자는 하루 저녁이면 되고, 둔자는 21일이면 되고, 중간은 중간쯤이면 끝난다고 되어 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가? 간절한 원이 있어야 된다. 생명을 버릴 만큼 간절히 들어가면 하루에도 끝난다고 여러 번 강조하셨다.
간절한 발심을 이루기 위하여 공부한다.
그런데 그 간절함이 정상적으로 나와야 되는데, 정상이 아니게 나오면 마구니를 불러드린다.
삿된 방편으로 공부를 하면 안 된다. 또한 편법으로 공부를 시켜서도 안 된다.
만약 누가 “당신은 전생에 부처인데, 이러 이러한 점만 고치면 된다”라고 하며 분발을 시킨다면 처음에는 발심이 잘 되는 듯하나 전생부처에 걸려 공부가 안 된다.
또 말, 말에 “큰스님 왈…”하며 공부한다면 그 사람은 스님에게 걸린 것이다.
맑은 물은 한 색깔도 물들지 않고, 거울은 한 티끌도 없이 맑아야 된다. 방편도 붙지 않는 것이다. 방편으로 발심을 하거나 시키면, 방편의 종이 되고, 방편을 준 자의 종이 된다. 해탈을 얻으려다 낚시 밥을 얻는다.
발심은 부처님 말씀으로 하고, 부처님 말씀으로 시켜야 한다.
경전 공부는 올바른 발심을 위하여 한다.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하고, 定에 들어 보고 듣는 것에는 천지 차이가 있다.
정에 들어 세상을 보면 보고 듣는 것이 달라진다. 그 달라지는 현상이 공부의 시작인데 공부의 완성단계라고 하면 마구니다. 이것이 마구니에 대한 개념이다.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은 항상 같지 않고, 상황따라 바뀌므로 세상을 하나도 옳게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에서 보고 들으면 진짜가 보이고, 진짜가 들린다. 진짜가 보이고 들리는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을 정확히 알고 가야 일취월장을 한다.
마구니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으로 탐욕을 부리면 도덕과 윤리로 말릴 수 있는 분(分)이 있어 제지할 수 있으나, 정 속에서 탐욕이 나오면 오직 탐만이 꽉 차므로 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약이 없다. 정에서 탐욕이 발동하면 탐마가 발동한다. 탐욕의 마가 붙는다.
탐욕을 부리고 싶을 때 탐마가 붙는 것이다.
그런데 탐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없이 정에 들면 탐욕마가 붙지 않는다.
陰消入明 則彼群邪 咸受幽氣 明能破暗 近自銷殞 如何敢留 擾亂禪定
음이 소멸되고 밝은 데로 들어가면, 저 뭇 삿된 것들은 다 유기를 받는 것이니, 밝은 것은능히 어둠을 파괴하니, 가까우면 스스로 소멸할 것이니, 어떻게 감히 머물러 선정을 요란케 하겠는가?
마장은 어두운데 붙는다. 들짐승도 어두우면 마을로 내려오고 해가 뜨면 산으로 올라간다. 내가 어두워지면 뭇 짐승처럼 마장이 든다.
내가 밝아져 뭇 짐승이 씨조차 남지 않으면 공부가 끝난다.
음(陰)과 사(邪)가 모두 마구니이다. 음은 어두운 기운을 받아 존재하는 것이니 광명과 가까워지고 광명이 드러나면 녹아 없어진다. 온갖 마구니는 밝은 데서는 소멸된다. 밝음이 어두움을 없애니 마가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若不明悟 被陰所迷 則汝阿難 必爲魔子 成就魔人
만약 밝게 깨닫지 못하여 미혹함을 당하면 너 아난이 필히 마자가 되어 마인을 이루리라.
만일 밝지 못하면, 마구니로부터 미혹함을 당할 때 바로 마구니가 된다. 미한 마음이 먼저 나오면 마구니가 붙는다. 미한 마음이 나오지 않으면 마구니가 들려다가도 도망간다.
如摩登伽 殊爲용劣 彼唯 汝 破佛律儀 八萬行中 只毁一戒 心淸淨故
尙未淪溺 此乃 汝 寶覺全身 如宰臣家 忽逢籍沒 宛轉零落 無可哀救
마등가는 특별히 용렬하였지만, 그가 오히려 너를 주문으로 부처님의 율의를 깨려하되, 8만 행 중 단지 한 계를 깨려한 것을, 마음이 청정했던 까닭에 빠지지 않았거니, 이것은 너의 보각전신인 몸을 깨트릴 것이니, 마치 재상이나 신하의 집안에 적몰을 당함과 같아서 아무 것도 없는데 떨어져 가히 구해 줄 수가 없는 것과 같으리라.
아난 존자가 마등가에게 미혹되려 했을 때, 아난은 청정한 마음이 있어서 문수보살의 말을 따르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다.
보각전신은 몸을 말함인데, 성불할 몸이므로 보각의 몸이라 한다.
8만 행 중 한가지만 깨져도 보각전신이 모두 깨진다. 즉 계율 하나 지키지 않는 것으로도 보각이 깨어진다.
적몰은 죄인의 가산을 몰수하고, 그 집의 호적을 몰수하는 처벌이다. 하나의 계율을 지키지 않아도 적몰을 당한다는 뜻으로 구제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영락의 영(零)은 산수의 " 0" 이다.
경전 속에는 산수, 과학, 미래의 과학 등이 어마어마하게 들어 있다.
②색음(色陰)의 마
阿難 當知 汝坐道場 消落諸念 其念若盡 則諸離念 一切精明 動靜不移 憶忘如一 當住此處 入三摩地 如明目人 處大幽暗 精性妙淨 心未發光 此則名爲色陰區宇
아난아. 마땅히 알라. 네가 도량에 앉아 모든 생각을 소멸하여 없애어서 그 생각이 다 끊어지면 곧 생각을 여윈 자리에 일체가 정밀해지고 밝아져 동정에 부동하고 기억하고 잊는 것이 한결 같으니, 이렇게 하여 삼매에 들면 눈 밝은 사람이 큰 유암에 처한 것과 같아 정미로운 성품이 묘하고 깨끗하나 마음이 아직 광체를 발하지 못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색음의 세계라 하느니라.
색음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은 밝아지고 컴컴한 속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삼매에 들어도 빛을 발하지 못하면 완전한 공부가 아니다.
억망여일은 기억하는 것과 잊은것이 한결같다는것으로, 기억이 다르고, 잊은 것이 다르면 하나의 일이 의식 속에서 제각각이다. 의식 속에 잊었다가도 기억 될 때는 사실과 같게기억되는 것이다.
5온(五蘊) 중 하나가 색온(色蘊)인데, 색온이라 하지 않고 색음(色陰)이라 하는 것은 마를 붙이기위해 음을 부친 것이다.
눈은 밝아도 어둠 속에서는 잘 못 보듯, 보기는 보았는데 제대로 본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는 것이 색음에 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