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3일 월요일 /성 뚜리비오 몽그로베요 주교 /제노아의 성녀 가타리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6년 봄 정기 총회에서 청소년 주일
전 주간을 ‘교육 주간’으로 정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 사명을 수행하는 데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주간 동안 참된 스승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가톨릭 정신에 따른 교육과 행사를 하며 교회 구성원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입당송
착한 목자, 당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네. 당신 양 떼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본기도
주님, 주님의 오른팔로 영원토록 주님의 가족을 감싸 주시어,
저희가 외아드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천상 은총으로 보호를 받아 어떤 죄악에도
물들지 않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가 앉은뱅이의 믿음을 보고 그를 고쳐 준다.
그러자 사람들이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그를 우상처럼 숭배하려고 하자,
바오로는 소리를 치며 자신은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서도록 복음을 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밝힌다. 거짓 예언자는 스스로 우상이 되고자 하지만 바오로는
오로지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제1독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 주님을 사랑하는 삶의 모습은 입술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에서 드러난다(복음).
제 1 독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 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5-18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5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사도들을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8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9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10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13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14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15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18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5(113 하),1-2.3-4.15-16(◎ 1ㄱㄴ)
◎ 주님, 저희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또는 ◎ 알렐루야.)
○ 저희가 아니라, 주님, 저희에게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옵니다.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민족들이 이렇게 말해서야 되리이까? ◎
○ 우리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저들의 우상은 은과 금, 사람 손이 만든 것이라네. ◎
○ 너희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하늘은 주님의 하늘, 땅은 사람에게 주셨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4,26
◎ 알렐루야.
○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봉헌하는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고,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신 이 큰 사랑의 성사에 언제나 맞갖은 삶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부활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요한 14,27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부활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되찾아 주시니,
구원을 이루는 이 양식의 힘으로, 파스카 신비의 은혜를 저희 안에 가득히 채워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부부가 서로 닮는다고 하지요.
특별히 금슬이 좋고 사랑이 깊은 부부일수록 더욱더 닮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다 해 주고 싶고, 늘 함께 있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면 함께 기쁘고, 슬퍼하면 같이 슬프고, 아파하면
그 고통이 같이 느껴지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닮을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하게 되고 그분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피하게 됩니다.
그분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했지요
(1요한 4,20 참조).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해도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우리의 행동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의 표현은 십계명에서 말하는 윤리적 질서를 갖고 사는 것이
기초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면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이웃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하는 삶이 있어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 됩니다
. 우리가 입으로는 “주님, 사랑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엎어지고 넘어져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당신과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축일:3월23일 성 뚜리비오 몽그로베요 주교 /제노아의 성녀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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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3월23일 성 뚜리비오 몽그로베요 주교 St. Turibio de Mogrobejo, E St. TURIBIUS of Mogroveio San Turibio de Mogrovejo Vescovo 1538 at Mayorga, Leon, Spain - 1606 at Santa, Peru Beatified:2 July 1679 by Pope Innocent XI Canonized:1726
1538년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살라망카에서 법률을 공부했고, 1580년 리마의 주교로 임명되어 남미로 갔다. 사도적 열성에 불타, 전국적으로 신앙의 개혁을 단행하고자 수많은 공의회를 소집했었다. 교회의 권리들을 꾸준히 옹호했고, 본토 인디언들의 복지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일했으며, 그들을 방문하여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양 떼들을 돌보았다.1606년에 세상을 떠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에서 (Nn. 12-13.16)
온갖 선업을 할 준비를 갖추십시오.
교도직은 주교들의 중요한 직무 중에서도 뛰어나는 것이므로, 이 직무를 통해서 주교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것이며, 성신의 힘으로 그들을 신앙에로 불러들이고 또는 그들의 산 신앙을 더욱 굳게 해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가르쳐야 할 것이니, 즉 그리스도를 알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가르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현양하고 그로써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길도 가르쳐야 한다.
그와 동시에 현세의 사물과 인간사들도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계획대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교회)를 건설하는 데에 적지 않게 이비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와 육신 생명을 가진 인격, 가정과 그 단일성 및 지속성, 자녀 출산과 교육, 시민 사회와 그 법규 및 전문 분야, 노동과 휴식, 예술과 과학 기술의 발명, 빈곤과 풍부한 재화, 이 모든 것이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를 밝혀 주어야 하겠다. 마침내 물질 재화의 소유, 경제 성장과 정당한 분배, 평화와 전쟁, 모든 민족들의 형제적 공존 등 중대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시대적 요구에 적응시켜 설명할 것이니, 즉 현대 사람들이 몹시 고민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난관에 해답을 주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옹호하며 신도들에게도 같은 진리를 변호하고 전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한 교리를 가르침에 있어서 주교들은 교회가 신도 비신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어머니 같은 심정으로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특히 빈곤하고 허약한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펴 줄 것이니, 주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주교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목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주교들은 자기 양들 가운데서 봉사하며, 착한 목자로서 자기 양들을 알고 양들도 목자를 알도록 하고, 참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보살펴 줌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 권위에 순종하도록 되어야 하겠다. 자기 의무를 자각하고 사랑으로 일치하여 살며 활동하도록 할 것이다.
이런 의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교들이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알맞은 준비를 갖추고" "뽑힌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아 견디며," 시대적 요청에 적합하도록 자기 생활을 조절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홈에서)
그는 1538년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 태어났다. 살라만카에서 법률을 공부했고, 그 후에는 변호사 겸 살라만카 대학교의 법학 교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라나다의 종교 재판소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의 뜻과는 관계없이 1580년 페루의 리마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사실 그는 평신도였다. 이 때문에 그는 먼저 사제 서품을 받고 주교 축성식을 거쳐 1581년에 페루에 도착했다.
그는 착좌한 직후부터 인디언들의 권익 옹호 때문에 정부 당국과의 분쟁에 휘말렸고, 교구 내의 교회 규율 정립을 위해 피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으며, 가난한 이를 위해 교회의 따뜻한 손길을 뻗치는 등 사도적 열성에 불타, 전국적으로 신앙의 개혁을 단행하고자 수많은 공의회를 소집했었다. 교회의 권리를 꾸준히 용호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교회와 학교 및 병원들을 세웠다.
1591년에는 신세계 최초의 신학교를 세웠다. 본토 인디언들의 복지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일했다. 그는 인디언 언어로 설교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구 내의 각 지역을 거의 모두 방문하여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양떼들을 돌보았고 교육과 설교에서 매우 뛰어났다. 그는 교구 내의 방문을 마치고 페루로 돌아오던 길에 산타에서 160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1726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리마의 성녀 로사와 더불어 투리비오는 신대륙의 첫 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6년 동안 남아케리카의 페루에서 주님을 섬겼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한 그는 매우 뛰어난 학자로서 살라망카 대학의 법학 교수가 되었으며, 또한 그라나다에 있는 종교 재판소의 재판장이 되는 등 매우 쉽게 출세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들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만큼 명석한 법률가는 아니었다. 즉 스페인의 식민지인 페루에 있는 리마 대주교 자리가 비게 되자 투리비오가 그 자리를 맡을 적임자로 지명되었다. 그는 그 지역을 오염시키고 있던 추문에서 교회를 구제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성격과 거룩한 정신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신도에게 교회 직무 수여를 금하는 모든 교회법 조항을 열거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고 식민 정책으로 최악의 상태에 있는 페루로 파견되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원주민을 갖가지로 억압하는 죄를 범했다. 더욱이 성직자들의 타락은 악명 높아서 그는 우선 이 분야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광활한 대교구를 열심히 방문하였으며, 한 장소에서 이삼 일씩 머물며 때로는 잠자리나 음식도 없이 돌아다니면서도 언어를 공부했다. 그는 매일 아침 자기 지도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받고 진실한 열성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그가 견진 성사를 준 사람들 가운데에는 리마의 성녀 로사가 있고 아마도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도 그 중의 한사람일 것이다.
1590년 이후에는 또 다른 위대한 선교사인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신자들은 가난했지만 매우 민감해서 다른 사람들의 공적인 동정을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투리비오는 드러나지 않게 그들을 도와 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 축일:7월14일.게시판1677번. *리마의 성녀 로사 축일:8월23일.게시판1327번.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축일:11월3일.게시판1451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하느님은 굽어진 곡선을 곧게 쓰시는 분이시다. 종교 재판소의 어울리지않는 무대에서 빠져 나와 투리비오는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착한 목자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만큼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선물을 주셨다.
투리비오가 성직자들의 쇄신 운동을 시작했을 때 불의한 관리들이 있었던 만큼 자연히 많은 반대에 부딪혀 고생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습관화된 좋지 않은 생활 방식까지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하느님의 계명을 ’설명’하고자 애썼다. 이에 투리비오는 테르툴리아노의 말로 그들에게 대답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진리이다’라고 말씀하셨지 ’나는 관습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시간
1575년, 페루 리마의 주교가 사망하자 평신도였던 투리비오가 차기 주교로 지명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사제품을 받고 주교에 임명되어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리마의 성녀 로사의 견진성사를 집전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였던 성 투리비오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하느님께 낱낱이 아뢰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하루 24시간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같은 시간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같이 보인다. 시간이 손에 쥔 모래처럼 새 나가는 것 같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 일지를 적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시간별로 간단하게 메모를 해 보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하루의 일과를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점검해 본다. 나는 긴급하고 중요한 일에 관심을 쏟고 있는가? 내가 시간을 조절하는가 아니면 시간에 끌려가는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면 어떤 시간들을 줄여야 하나? 발전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루에 한 시간씩 더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지혜롭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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