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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성경 글귀

복음

작성자*김희칠 대건 안드레아|작성시간26.06.09|조회수20 목록 댓글 0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묵상

예수님께서는 행복 선언으로 인간의 부족함을 드러내신 뒤, 곧바로 신안인의 정체성을 한 번에 규정하십니다. 신앙인은 

가난해도, 부족해도 이미 "세상의 소금"(마태 5,13)이고 "세상의 빛"(5,140입니다. 이 말씀은 격려이면서 동신에 두려운

선언입니다. 소금과 빛은 스스로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다른 이를 향합니다. 소금은 녹아 사라지며 맛을

내고, 빛은 어둠을 밝혀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합니다.

소금은 고대 셰계에서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습니다. 정화하고, 조본하며, 제물과 함께 바쳤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소금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고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바로 이 '부자연스러움'을 통하여 경고합니다. 제자들이 행복 선언에서 드러난 삶의 방식, 곧 가난한, 얘

통함, 온유함, 의로움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소금이지만 소금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 쓸모없음은 도덕적 실패라기보다. 자기 본성과 정체성을 배반한 결과입니다. 

빛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등불을 켜서 함지 속에 두는 행위는 제맛을 잃은 소금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5,16)를 찬양하게 하려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서6장이 말하는 위선적인 드러냄(보이기 위한 자선,기도, 단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등경 위의 빛은 요한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끝내 숨겨지지 않아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소금과 빛이 되었으니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보다, '무엇을 위한 마음'을 지녀야 할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금이자 빛인, 자연스러운 오늘의 '나로서' 살아갑시다. 아멘. 

 

2026년 6월 9일 (화) 저녁 미사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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